표지 이야기

‘우울 필터 마스크’는 언제 배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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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신체적 위험은 막지만 거대한 정신적 우울은 무엇으로 막을수 있나

마스크 내려온다. 마스크 내려온다. 누가 라디오를 켜두었나. 호 생원, 범보다 마생원, 마스크가 힘이 센가. 이날치의 노래를 타고 하늘에서 흰 마스크가 눈처럼 내려온다. 세상이 고요로 덮인다. 첫눈이 내린다. 내일 아침이면 퀼트이불처럼 거대한 흰 마스크가 지구의 코와 입을 덮고 햇살에 반짝일 것이다. 바닥에 낮게 깔린 눈이 햇볕 닿은 곳부터 녹아내리듯, 사나운 역병의 시절도 녹아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룩이야 남겠지만 다시 일상의 봄날이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다. 초현실을 넘어 비현실 같다. 배신감이 크다. 21세기가 이렇게 시시하다니. 지구생태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 인간이 이렇게 허약하다니. 세계 일주도 모자라 우주관광객을 모집하며 과학적 진보를 자랑하던 인간이 이렇게 무력하다니. AI가 스스로 학습·진보하는 시대에 통제불가능한 팬데믹이라니. 르네상스 이전에 흑사병으로 독하게 겪은 과거사 아닌가. 전 세기 초입 스페인 독감으로 끝난 과거사여야 한다. 사스, 메르스 사태 동안 누적된 경험은 어디로 갔나. 인문학과 인간 중심 그렇게 외쳐대더니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장난에 세계가 멈추다니. 악몽이다.

SF 재난영화 같은 상황

사람들이 마스크 앞에 길게 줄 선 이미지는 어떤 초현실주의 그림보다 더 초현실적이다. 문득문득 이 상황이 SF 재난영화 같다. 영화가 끝나고 영사기가 꺼지고 엔딩 크레딧 자막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영화관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현실이라 믿기에는 너무 쉬르레알하다.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몰래카메라 아닐까. 규모가 좀 큰 ‘트루먼 쇼’입니다. 우주인의 지구침공을 대비한 실전 같은 재난 예방훈련 리허설입니다. 시작은 했는데 끝내는 매뉴얼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 길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피디가 이렇게 말해도 믿을 것 같다.

한개는 선물, 세개는 썸, 다섯개는 오늘부터 일일. 열개는 청혼. 웃기고 슬픈 농담이 돌아다닌다. 김중배의 마스크가 그렇게도 좋더냐. 가난한 이수일이 심순애에게 이렇게 외쳤다는 소문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마스크를 모르겠는가. 시인은 이렇게 사랑을 노래한다. 현대는 마스크의 시대이며, 모든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칸트가 외친다. 비판은 마스크로 대체된다. 마스크는 비뚤어져도 말은 바르게 하자. 새로운 속담이 탄생한다. 내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소시민 영웅 마 선생이 어떻게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 코로나 대군과 맞서 싸웠는지를 생생하게 그린 소설 ‘마스크대왕’이다. 이 낯설고 괴이한 시대는 두고두고 역사와 문학으로 재구성, 영화로 재현될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모두가 마스크로 입을 가린 이 시대적 장면을 환상이거나 SF라고 생각할 것이다.

타임슬립으로 21세기에 도착한 마 선생은 강박적 배타적 청결주의자이다. 시간의 웜홀을 통과할 때 지워졌을까. 화려한 과거의 기억이 없다. 마 생원이 활극에 마술에 오페라에 가면무도회에 탈춤에 한춤 양춤 못 추는 춤이 없는 한량이었다면, 21세기 마 선생은 고만고만한 비정규직 소시민으로 문학 작품에서 페르소나로 활동 중이다, 휴일 등산을 하거나, 미세먼지 방재에 봄 한철 바싹 일하던 마 선생 요즘 상종가다. 마 선생 근황이 모든 뉴스를 도배한다.

진시황이 못 구한 불로초가 다름 아닌 마스크였던가. 졸지에 지구를 구하는 영웅 역할을 떠맡아 어리둥절한 마 선생, 어서 백신과 치료제에게 영웅 지위를 넘겨주고 책으로 돌아가고 싶다. 마 선생 바람과 달리 역병과 맞서는 대체불가능한 예방재 지위가 일년 내내 공고하다. 마 선생은 잃어버린 것들의 물목이 그립다. 일상의 평화여. 일상의 아름다움이여. 입술과 가지런한 흰 이와 목젖이 보이도록 웃는 웃음이여. 전쟁의 반대, 평화의 동의어, 행복의 동의어, 일상이여. 마스크를 벗고 청결 강박 없이 악수할 수 있는 일상은 언제나 돌아올까. 일상의 재발견을 위한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잊고 있었던 역설을 떠올린다. 사소한 것이 위대하다. 전 지구적 역병 사태는 작은 것의 치명성을 일깨워준다. 치명적인 작은 것을 상대할 수 있는 힘도 모두의 작은 실천에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바이러스의 지구침공을 막는 영웅

바이러스의 지구침공을 막는 영웅, 마스크는 수동적 방어재이다. 공격적 무기나 도구가 아니다. 밖과 안의 최소한의 접촉을 허용하지만, 밖으로 나가 싸우는 대신 안으로 자신의 공간으로 후퇴해서 견디는 것이 사용 매뉴얼이다. 이 수동성의 아이러니가 인간문명의 패러다임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문명은 건드리는 것마다 폐허를 만들고 전쟁터로 만들었다. 밖으로 나가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형편없이 허약해진 인간문명의 내부에 구멍이 뚫렸다. 인간이 공갈빵처럼 지구를 운용하는 동안,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밖으로 연결된 외부지향적 인간관계에 시간을 바치는 소모적 구조가 형성되었다. 페스트가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로 방향을 트는 큰 이정표가 되었다면, 코로나는 인간 중심을 다른 생물과 공존하는 환경 중심으로 방향전환 하라는 지구의 준엄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폭주하던 방향을 버리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시점이다. 코로나 시대는 인류 미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던 방식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니컬한 바이러스라는 메타포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인간 내면의 결핍을 보수하라. 파멸과 몰락을 향한 질주를 제발 멈추라. 외부와의 관계 맺기 역시 잠시 멈추라. 제발 입 닫고 귀 열고 좀 들으라. 빠름빠름을 쫓아가는 동안 빠름의 위험은 간과되었다. 인간과 재화의 빠른 이동성의 동선을 타고 바이러스 역시 빠른 기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인류 모두의 입을 가리는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마 선생은 말없이 말한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 언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는 것이 금지될 수 있다. 언제라도 격리·봉쇄될 수 있다.

공포, 우울, 비대면, 거리의 시대정신 속에서 인간은 생존욕구를 가진 신체적 차원의 존재로 제한된다. 죽음을 물질화하는 과정이 심화되고 인간성은 소외된다. 고립감과 거리감이 갈수록 커진다. 현실의 관계는 증발하고 가상의 관계만 무성하다. 전방위적 공포감과 적대감이 커져간다. 마스크로 최소한의 신체적 위험은 필터링하지만, 거대한 정신적 우울은 무엇으로 필터링할 수 있을까. 대재앙과 맞선 마스크는 아픈 트라우마의 촉발제가 되거나, 보편적 공감대로 코로나의 객관적 상관물이 될 것이다. “살아서 만나요.” 이런 살벌한 인사는 하지 않기로 한다. 이번 생에 우리 다시 볼 수 있을까. 악수를 위해 내민 손이 공중에서 흔들린다. 가벼운 허깅을 위해 다가가던 어깨가 주춤 뒤로 물러난다.

최정란은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장미키스> <사슴목발애인> <입술거울> 등이 있다. 2016년 시산맥작품상, 2019년 최계락문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최정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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