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부정’ 교수 급여는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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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가습기 살균제 관련 왜곡 혐의 교수 직위 해제 상태서 급여 수령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점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발생한 폐질환이 옥시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밝혀달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12월 9일 서울 중구 위원회 회의실에서 ‘옥시RB와 김앤장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축소·은폐 의혹’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12월 9일 서울 중구 위원회 회의실에서 ‘옥시RB와 김앤장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축소·은폐 의혹’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서울대 수의학과 조모 교수가 2011년 9월 옥시와 쓴 계약서에 담긴 내용이다. 연구비만 2억5200만원이었다. 2011년 9월은 정부가 옥시가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 가능성을 인정한 직후다. 옥시는 제조·판매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대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일종의 ‘청부과학’이었다. 청부과학은 거액의 연구용역비를 받아 기업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과학자의 권위와 언어로 객관적인 것처럼 꾸미는 행위를 뜻한다.

연구 부정 결론에도 ‘징계’ 머뭇

조 교수는 국내 독성학 분야 권위자였다. 그는 국립독성과학원장, 한국독성학회장을 지냈다. 조 교수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든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독성학적 변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PHMG는 흡입 독성이 강한 인체 유해물질이다. 지난 12월 9일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조 교수와 옥시, 옥시의 자문을 맡은 대형로펌 김앤장은 수시로 실험결과를 공유하며 최종보고서 내용을 조율한 정황이 있다.

조 교수는 옥시에 불리한 실험결과를 누락하는 등 최종보고서를 왜곡한 혐의(수뢰 후 부정처사, 증거위조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교수의 연구윤리 위반 형사처벌을 두고 2016년 9월 1심 선고에서는 유죄, 2017년 4월 항소심 재판부는 일부 데이터 누락은 연구자의 재량이라는 취지로 연구조작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에 2년 8개월째 계류 중이다. 조 교수는 재판에서 “옥시와 김앤장의 사기에 당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2018년 12월, 서울대는 연구윤리 위반 결론을 내렸다. 자체 조사에 들어간 지 2년여 만이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법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실험 데이터가 조작되거나 잘못 기입된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는 “연구데이터를 임의로 변경·누락함으로써 연구자료를 조작한 행위는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한다. 연구데이터를 축소·왜곡 해석해 진실하지 않은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연구진실성 위반 정도가 매우 중대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주간경향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조모 교수 징계·급여 지급 추정치’를 보면, 조 교수는 2016년 5월 30일 징계의결 요구됐다. 조 교수는 이날 이후 서울대 학부·대학원 수업을 맡지 않았다. 현재까지 직위 해제된 상태다. 급여는 지급됐다. 서울대에 따르면 징계의결 요구 이후에는 공무원보수규정과 서울대학교 교원 보수규정에 근거해 직위 해제된 교수에게도 급여를 지급한다. 서울대가 추정한 직위 해제 자의 평균 급여는 2016년 7482만원, 2017년 4247만원, 2018년 4336만원이다.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4369만원, 4512만원이다. 조 교수는 1994년부터 서울대에 재직해 호봉이 높다. 조 교수와 같은 서울대 직위해제 교원이 지난 4년 6개월가량 받은 추정 평균급여액을 합치면 2억5000만원 수준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 ‘연구 부정’ 결론 이후로 시기를 좁혀도 약 9000만원의 급여가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

‘연구 부정’ 교수 급여는 받았다

서울대는 연구진실성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는 자체 조사결과가 있음에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대는 국회를 통해 “현재 대법원에서 사건 심리 중이어서 대법원 판결 때까지 징계위원회 심의가 보류된 상태”라고 했다. 향후 서울대에서 조 교수에게 해임처럼 중징계 처분을 내린 뒤에도 지급된 급여를 회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서울대 관계자는 “급여 회수 조항은 따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2016년 1월에서 올해 11월 사이 교원 징계 현황을 보면, 총 36건의 징계가 이뤄졌다. 대부분 의결요구일에서 징계처분 사이 2~3개월이 걸렸다. 의결요구일에서 징계처분일 사이 기간이 1년을 넘은 사례는 단 2건이었다.

이중에는 2019년 12월 4일 ‘연구부적절 및 연구부정행위(논문 표절)’로 해임된 서울대 국문과 A교수 사례가 포함됐다. 의결요구일(2018년 8월 28일)에서 징계처분(2019년 12월 4일)까지 1년 3개월여가 걸렸다. 서울대는 당시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연구 부정행위가 지속된 점을 고려해 해임 결정을 내렸다. 근거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 결론이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는 2018년 말 A교수의 연구물을 두고 “연구진실성 위반 정도가 상당히 중한 연구 부정 및 부적절 행위라고 본다”고 결론내렸다.

서울대, 데이터 조작 사실 밝혀내

조 교수의 연구 부정 판단은 1심 ‘유죄’→항소심 ‘무죄’→서울대 연구진실성위 ‘연구진실성 위반 정도 매우 중대’로 계속 뒤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 결정문에는 2심 재판부가 알지 못했던 연구 부정 사례가 추가됐다. 새로운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항소심 판단과 독립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일부 실험결과를 자의적으로 뺀 부분도 항소심 재판부와 달리 ‘연구자 재량’이 아닌 연구진실성 위반으로 봤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는 결정문에서 “실험동물의 개체별 표시와 노출 기간별 표시가 훼손돼 체중, 장기 무게 등 측정·기록 오류가 상당수 발생했다. 실험군의 체중 감소가 없는 것처럼 작성했고, 엑셀 기입 자료와 수기 원자료가 모두 없었지만 임의로 체중을 기재했다”며 “(실험군을 2주간 노출한) 실험보고서에는 8개 항목에 걸친 혈액검사 결과가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최종보고서에는 5개 항목으로 축소해 기재하는 등 실험결과가 조작된 정황이 나타났다”고 썼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는 의도적 조작인지 명확히 알 수 없더라도 연구 부정행위라고 판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했다. 또한 항소심 판단을 비판하면서 항소심의 법적 판단과 별개로 연구 부정행위가 명백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항소심 판결문에는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학문의 자유에 따라 시험결과를 해석·판단할 권한이 있고, 연구용역 의뢰인의 목적과 의사 등을 반영해 용역을 수행할 책임을 동시에 지닌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는 “항소심 판결의 타당성에 의문이 가고, 판결이 타당하다 해도 이는 형사범죄인 수뢰 후 부정처사죄의 요건인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 (중략) 독성실험의 원칙을 위반해 연구데이터를 조작하는 행위로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 결정문은 대법원에 제출됐다. 다만 대법원은 원심에 적용된 법률만 들여다보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결정문에 담긴 조작 데이터를 증거로 다루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 법원 “소나무 추출물이 애경 가습기 살균제 성분 증폭” 증거 채택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 권도현 기자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 권도현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한국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재판은 미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재미교포 B씨는 2014년 11월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애경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B씨의 어머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B씨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가습기 메이트 20여통을 한인 마트에서 구입했다. B씨 어머니의 방에서만 가습기 메이트를 넣은 가습기를 썼고, 2012년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다. 호흡기 질환이 없었던 B씨 어머니는 증상이 점점 심해졌고, 이듬해 2월 사망했다.

애경 측은 줄곧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소송 기각을 주장했지만,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상급법원은 재판을 개시했다. 재판부는 지난 8월 소송 전 증거수집절차(Discovery·디스커버리)를 마무리했다. 미국 민사재판은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서로 증거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이제는 배심원을 상대로 본 재판에서 다투는 절차가 남았다.

재판의 쟁점은 가습기 메이트의 인체 유해성이다. 가습기 메이트는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은 제조에 관여하고 판매와 유통을 맡은 가습기 살균제다. 가습기 메이트에는 한국 정부가 인정한 흡입 독성 물질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이 담겼다.

애경은 미 법정에서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애경 측은 “가습기 메이트를 미국에 수출하지 않았다”거나 “B씨 어머니가 가습기 메이트를 쓰지 않고 헷갈린 것 아니냐”고도 주장했다. B씨 측은 수입업자를 찾아 수입증명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구체적인 가습기 메이트 사용 정황도 찾아냈다.

새로운 증거도 재판 과정에서 나왔다. B씨 측은 소나무 추출물이 CMIT·MIT 증폭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 연구결과를 증거로 채택했다. 한국의 재판에서는 나오지 않은 증거다. 애경 측이 2011년 9월 23일 만든 내부문건 ‘가습기 메이트 안전성 보고’를 보면, 가습기 메이트에는 솔싹추출물(100ppm)이 들어 있다. B씨 측이 제출한 연구결과에는 소나무 추출물이 CMIT·MIT의 기도와 체내 확산을 증폭(Magnified)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량의 CMIT·MIT라도 솔싹추출물에 의해 인체 유행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애경 측에서 디스커버리 절차가 끝난 뒤 B씨에게 합의를 제안했다. 애경은 이전까지 한 번도 합의 시도를 하지 않았다. B씨는 애경의 합의 요청을 거절했다. B씨는 “미국에도 저 말고 다른 피해자 가족들이 많을 것이다. 합의하지 않고 미 법원에서 피해 인정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SK케미칼·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재판도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은 지난 12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 금고 5년을 구형했다. 선고는 내년 1월 12일 이뤄진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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