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도깨비 감투를 쓴 신문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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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 집 다락방에는 보물이 있다. 신문수 작가의 <도깨비 감투>가 그것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한국만화걸작선’이란 이름으로 복간한 4권짜리 박스세트 <도깨비 감투>를 나는 지금도 애지중지한다. 주인공 혁이와 진돗개 진돌이, 친구 절구와 돈식이, 도둑 악당들과 동네 사람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은 1970년대를 기억에서 순식간에 소환해낼 만큼 그 시절을 정겹게 그려내고 있다.

정재승 교수 제공

정재승 교수 제공

그땐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중앙’이 치열한 3파전 경쟁을 벌이던 때다. 친구들이 한방에 모여 각자 사온 잡지를 서로 돌려보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때는 만화책이 흔치 않아서였는지, 왜 그렇게 같은 만화를 보고 또 봤는지, 왜 같은 대목에서 매번 똑같이 까르르 웃었는지 모르겠다.

1974년 ‘어깨동무’ 64페이지 별책부록에 ‘도깨비 감투’가 연재되면서 ‘어깨동무’까지 덩달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투명인간의 모티브를 차용했으나, ‘238가지 귀신의 수염과 머리털로 만든 감투’라는 전통적인 발상, 그리고 착한 일을 할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설정은 온갖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쏟아냈다.

그때도 여전히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았고, 입시경쟁 또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영혼을 옥죄던 시절이었기에, 신문수 작가의 만화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건강한 웃음을 유발하며, 선과 정의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배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명랑만화의 진수라고나 할까?

‘소년중앙’에 연재했던 <로봇 찌빠>는 2020년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눈으로 들여다봐도 손색이 없다. 본래 미국에서 만들어졌으나 성능에 문제가 있어 한국에 오게 된 로봇 찌빠, 그리고 찌빠를 구조해 집으로 데려온 소년 팔팔이의 우정은 ‘인공지능과의 공생’이 화두인 현대사회에서 더욱 그 상상력이 빛을 발휘한다. 부족함이 많은 로봇 찌빠, 사고뭉치 로봇을 버릴 수도 없어 속앓이하는 팔팔이. 하지만 결국 로봇 찌빠가 업그레이드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과학자의 실수로 폭파되었다는 편지를 읽고 팔팔이가 통곡하는 대목에선 독자들도 함께 울었다. 어찌 이리 허망하게 끝난단 말인가! 내가 만약 인공지능을 휴머노이드 로봇에 탑재한다면, 나는 그 얼굴을 로봇 찌빠로 하고 싶다. 한 어린 소년을 과학자로 만들어 로봇과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싶게 만든 로봇 찌빠에 대한 오마주로 말이다.

신문수 선생은 원래 ‘왈가닥 부부’ 같은 성인만화로 만화 인생을 출발했기에, 나중에는 주간경향에 ‘신판 봉이 김선달’ 같은 성인만화로 돌아왔다. 특히 ‘주간만화’에 연재된 ‘옹녀전’을 친구들이 돌려가며 보는데, 나도 보고 싶었으나 보여달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만화 냄새 가득한 다락방에 누워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다. 신문수 선생이 ‘요철 발명왕’을 그린 윤승운 작가, ‘따개비’의 오원석 작가와 함께 종로5가 덕성빌딩 206호에서 밤새 만화를 그리던 모습을, 4평짜리 작업실은 좁고 열악했지만 그리는 마음만은 즐거웠으며, 마감에 쫓기며 피곤함에 지쳤겠지만, 만화를 보며 깔깔댈 어린 독자들을 떠올리며 보람을 느끼셨을 그 시절의 행복한 작업실 풍경을 말이다.

‘신문수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작품 활동해주세요. 당신은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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