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스파이 출신 작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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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소설의 대가인 영국 작가 존 르 카레가 12월 12일(현지시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실제 스파이 출신인 르 카레는 화려한 드라마를 걷어내는 대신 스파이의 실존적 고뇌를 담아낸 독특한 작품세계로 주목받았다. 25편의 소설을 썼고, 그중 다수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미국의 대표적인 판타지소설 작가 스티븐 킹은 “이 끔찍한 한 해가 문학계의 거인이자 인도주의의 상징인 존 르 카레를 빼앗아갔다”며 애도했다.

지난 2001년 2월 11일 제5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존 르 카레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01년 2월 11일 제5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존 르 카레 / 로이터연합뉴스

르 카레는 필명으로 본명은 데이비드 콘웰이다. 어린 시절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돌봄을 잘 받지 못했던 그는 비밀기관에서 일하는 남성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집을 자주 비우는 내용을 상상하며 스파이소설을 구상하곤 했다. 그는 빚에 쪼들리고 보험사기로 교도소까지 다녀온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종종 자취를 감춘 것은 첩보활동을 하느라 그랬다는 내용의 습작을 다섯 살 때 썼을 정도로 부친에 대한 불만을 창작에 대한 열의로 돌렸다.

르 카레는 스위스 베른대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한 뒤 처음에는 외무부에서 일했다. 독일 본 주재 영국대사관의 제2 서기관, 함부르크의 정치영사 일을 하던 중 해외첩보를 담당하는 MI6로 옮기면서 스파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1961년 요원 신분을 유지한 채 첫 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하는 은퇴한 스파이 캐릭터 조지 스마일리는 이후 다른 작품에도 줄곧 등장하게 된다.

스파이로서 르 카레의 경력은 영국과 구소련의 이중스파이였던 킴 필비 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필비가 구소련 첩보기관 KGB에 영국 스파이들의 신분을 노출했는데 이중 르 카레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시대 독일을 무대로 이중간첩을 소재로 한 세 번째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성공을 거두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르 카레는 한 인터뷰에서 독일 베를린에 파견돼 영국 스파이 역할을 한 경험이 일부 작품을 집필할 때 도움을 줬다고 털어놨다. 그가 스파이로 일했던 때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간 갈등이 극심했던 냉전 시기로 첩보활동 또한 가장 치열했던 시기였다.

르 카레는 화려한 드라마를 강조하는 대신 실제 스파이들이 겪는 윤리적 혼란과 고독감 등 실존적인 문제를 다뤄 다른 스파이소설 작가들과 차별화를 이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그는 배신과 비극으로 가득 찬 부패한 시스템에서 서방과 소련의 스파이를 도덕적으로 타협한 톱니바퀴로 그리며 스파이소설을 고급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일례로 르 카레는 자신의 스파이 생활에 막을 내리게 한 엘리트 스파이 킴 필비의 이중스파이 행각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에 영감을 받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속 캐릭터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박효재 산업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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