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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암호화폐는 어떻게 노인을 유혹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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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우리 개인정보를 빼내 장사를 하고 있어요. 휴대폰으로 인터넷 하다 보면 여러분이 관심 있는 물건 광고가 신기하게 막 뜨잖아요. 그거 다 우리 정보를 빼내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하나 물어볼게요. 네이버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마이크를 쥔 남성이 물었다. 몇몇 노인이 “좋아요”라고 답하자 곳곳에서 “좋은 거예요”라며 맞장구쳤다. 그러자 남성은 “우리 정보를 빼서 장사하는데 뭐가 좋아요”라며 “네이버는 나쁜 거예요”라고 정정했다.

/ pixabay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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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오후 2시. 선릉역 5번 출구 인근 빌딩 지하 1층 사무실에서 열린 ‘다단계 암호화폐(코인)’ 설명회에서 오간 대화다. 이곳에선 오전과 오후, 하루 두차례 투자설명회가 열린다. 설명회 참석자의 주요 연령대는 60~70대로 한 타임에 30명가량 노인이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참석자 비중도 적지 않다. 이날 설명회 주최 측은 “오늘은 청주에서 많이들 왔다고 들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원정 참석자를 독려했다. 코로나19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양한 수법, 진화하는 다단계 코인

코인업체는 왜 설명회에서 네이버를 언급했을까. 사람들은 왜 무명의 코인에 선뜻 지갑을 열까. 코인업체가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다단계 영업의 핵심은 자체 제작한 웹 브라우저다. 업체는 해당 브라우저가 블록체인을 결합한 웹 3.0에 특화된 브라우저로 해킹 우려가 없고, 이용자의 개인정보 수집 차단 기능이 내재돼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업체가 강조하는 기능은 ‘광고 차단’이다. 업체가 만든 브라우저로 유튜브를 보면 광고가 나오지 않는다. 광고 없이 유튜브를 보기 위해 유튜브 프리미어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유튜브 이용률이 높은 노인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광고 차단 기능 하나만으로도 해당 브라우저를 ‘혁신’으로 인식한다. 투자설명회에서 휴대폰을 들고 브라우저 시연부터 하는 이유다. 업체 관계자는 “자동 광고 차단으로 데이터 소비량이 줄기 때문에 데이터 요금도 절약된다”고 설명했다.

웹 브라우저로 모은 관심은 자연스럽게 코인으로 옮긴다. 연결 고리는 마이닝(채굴)이다. 회원 가입을 한 뒤 웹 브라우저를 켜면 이용 시간 동안 사용자의 휴대폰으로 코인을 채굴한다. 해당 웹 브라우저를 통해 뉴스를 검색하고 음악을 들으면 코인이 쌓인다는 것이다. 설명회에서 직접 웹 브라우저에 접속한 뒤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코인 누적 수치를 보여준다. 코인 채굴 모니터링은 설명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참석자 호응이 높기 때문이다. 이날 시연 휴대폰의 웹 브라우저 접속시간은 6일 23시간, 코인 채굴량은 178개라고 했다. 업체 관계자는 “휴대폰으로 유튜브만 봐도 회사에서 코인을 준다”며 “코인은 11월 30일 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인데 상장하는 순간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혁신’ 브라우저와 연동된 코인 투자에 흥미가 생긴 참석자들은 마음이 급해진다. 상장 전 가격이 오르기 전에 더 많은 코인을 확보해야 하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사용해도 채굴량은 미미하다. 이때 업체가 손쉽게 코인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채굴 패키지’를 구매해 코인을 확보할 수 있는 유료회원제다. 300달러(약 32만원)부터 5만달러(약 5400만원)에 달하는 유료 패키지를 택해 코인을 구매하면 된다. 업체 측은 “내년 1월 1일부터는 유료회원을 더 이상 받지 않을 것”이라며 패키지 구매를 재촉한다.

유료회원은 코인 사업의 주체가 된다. 유료회원 추천으로 다른 사람이 유료회원이 되면 회사로부터 추천 수당을 받는다. 패키지 구매 금액의 10%다.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이다. 다단계를 통해 해당 업체는 3개월 만에 무료회원 10만명·유료회원 1만6000명(업체 측 추산)을 모았다. “10만명이 1명씩만 모아 와도 20만명인데, 보상을 주니까 더 많은 사람이 가입한다고 봐야 한다. 만약 무료회원을 1억명 모았다고 하면 1억명이 다 자동으로 코인을 갖게 되는 거다. 코인량이 늘면 자연스럽게 거래량도 늘어날 테고 그럼 코인가격은 얼마나 오를지 생각해보라” 업체 측의 설명이다.

코인업체의 주요 타깃은 노인층이다. 이 때문에 업체는 암호화폐에 취약한 노인을 겨냥해 맞춤형 전략을 짠다. 오프라인 거래소 개설도 노인층을 위한 전략이다. 주로 강남 역삼역과 선릉역 주변에 본점을 두고 지역에 소규모 지점을 여는데, 거래소는 설명회 장소와 도보 10분 거리 이내로 한다. 설명회가 끝난 뒤 바로 코인을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일러스트 김상민기자

일러스트 김상민기자

이날 설명회에서 만난 김선숙씨(가명·강남구 역삼동)는 “몇년 전 비트코인이 막 오를 때 코인은 잘 모르고 투자는 하고 싶어서 아는 사람한테 300만원 주고 코인 사달라고 맡겼는데 그 후로 ‘그냥 다 없어졌다’고 하고는 연락이 끊겼다”며 “여기는 거래소에서 내가 직접 투자할 수 있어서 돈을 넣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모라고 부르는 노인과 함께 거래소로 들어갔다.

김씨가 투자를 결정한 코인은 투자가치가 있을까. 코인 ‘1개당 1만원’은 업체 측이 설명회에서 제시한 가격이다. 유튜브에도 ‘1원에서 1만원이 될 코인’이라는 내용의 홍보영상이 올라와 있다. 광고 차단 기능을 갖춘 ‘혁신’ 브라우저를 토대로 회원수를 늘린 뒤 메신저와 게임 등 향후 사업 영역을 넓히면 코인의 가치가 뛰어오를 것이라고 설명한다. 웹 브라우저의 성공에 따라 코인의 가치도 결정된다.

그들만의 거래소 상장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이 브라우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블록체인 보안 전문기업 웁살라 시큐리티의 김형우 대표는 “특별하다고 볼 수 없는 평이한 수준의 브라우저”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이미 업계에서 구현 가능한 기술이어서 진보적인 브라우저라고 보기 어렵다”며 “코인도 별도의 가치를 평가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살펴봐야 할 부분은 브라우저가 아니라 다단계 방식으로 자금을 끌어모으는 유사수신 행태”라고 덧붙였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의 견해도 다르지 않다. 류 소장은 “기존에 유사한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이 많기 때문에 혁신 브라우저는 아니다. 수익 창출 모델이 부실해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코인이 거래소에 상장된다고 해도 코인업체의 설명처럼 ‘대박’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단계 코인업체들이 성공의 상징처럼 강조하는 거래소 상장은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행위다. 이미 많은 스캠 코인(투자자를 속여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발행하는 사기 코인)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한 뒤 사라졌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개설과 폐업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열고 닫을 수 있다. ‘한탕’을 목적으로 코인을 상장한 뒤 출금을 막고 폐업하는 거래소도 부지기수다. 정부가 파악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만 59개(2020년 8월 기준)로 집계에 빠진 소규모 거래소와 추적이 불가능한 해외 거래소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불어난다. 마이너 거래소를 통한 코인 상장은 사실상 발행업체나 특정세력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옵션에 불과하다. 류 소장은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사설 거래소가 아무런 검증 없이 등록시켜주는 것도 상장이라고 한다”며 “그런데도 코인업체들은 상장만 하면 코인의 가치가 검증되는 것처럼 과대광고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시국에도 매일 열리는 다단계 코인 투자 설명회 / 반기웅 기자

코로나19 확산 시국에도 매일 열리는 다단계 코인 투자 설명회 / 반기웅 기자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명진씨(가명)는 거래소 상장을 믿고 다단계 코인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케이스다. 이씨는 지난 9월 C코인에 1000만원가량을 투자했다. C코인은 B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으로 이른바 ‘해바라기’ 방식(상위추천인이 하위추천인으로부터 수당을 받는 다단계 방식을 이르는 은어) 다단계 코인이다. 추천을 통해 지인이 코인을 구매하면 수당을 받는다. 추천 수당은 매주 화요일 12시 코인 가격을 기준으로 지급하는데 이 역시 코인으로 지급한다. 한때 5만원대 형성됐던 코인가격은 폭락을 거듭하더니 100원까지 떨어졌다. 거래도 끊겼다. 이씨는 “거래소 상장 코인이라고 해서 샀는데 무섭게 떨어지더니 이제는 거래소에서 출금까지 막아놨다”며 “왜 출금이 안 되냐고 항의했더니 손실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2017년 비트코인 폭등 이후 국내 다단계 코인 사기는 코인 발행, 채굴기 판매, 코인 펀드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왔다. 사기 행각이 늘면서 투자금을 모으는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전보다 세련된 기술로 코인을 포장하는 한편 정부를 내세워 투자자의 마음을 산다.

지난해 ‘자식까지 배당이 상속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투자자를 모집한 S거래소와 S코인은 광고 팸플릿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로고를 새겨넣고 ‘정부 공식 인증’ 업체임을 홍보했다. 과기부가 정식 인가해준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KBIPA)로부터 인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S코인의 온라인 홍보 팸플릿에 올라온 협회의 공식 인증서에는 ‘S코인을 인증했고 향후 기술업무와 마케팅 업무를 지원한다’고 명시돼 있다. 과기부가 정식 인가한 블록체인 관련 협회는 모두 9곳으로 KBIPA도 이중 하나다. 과기부 관계자는 “협회의 사업 취지와 목적을 심사해 인가 여부를 결정한다”며 “사업 목적에 암호화폐 인증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인·정부·협회 동원해 사기 행각

일부 코인업체들은 투자 과정에서 계약서와 함께 법무법인의 의견서를 제공한다. 법률 검토를 통해 불법 소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투자를 권한다. 하지만 의견서는 불법 여부와 무관하다. 한서희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의견서는 발행한 토큰이 어떤 성질인가를 검토하는 것이지 적법성을 살펴보는 게 아니다”라며 “대부분 의견서는 ‘해당 토큰은 증권형(금융투자상품)이 아닌 비증권형 토큰이다’라는 사실을 명시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과 연예인을 초청해 대규모로 벌이는 블록체인 행사도 다단계 코인업체가 즐겨쓰는 방법이다. 행사는 국회의원의 의례적인 축하 연설과 댄스팀의 공연으로 구성된다. 코인업체 CEO 등 관계자들이 블록체인과 4차산업혁명, 디지털 뉴딜 등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강연 내용은 ‘늦기 전에 코인에 투자’하고 ‘더 많은 사람을 추천해 수당을 타라’는 것이다. 경기도 안산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이민국씨(가명·59)는 지인의 말을 믿고 S코인에 360만원을 넣었다가 모두 잃었다. 이씨는 “호텔 행사니 뭐니 했던 것들도 알고 보니 다 투자금으로 했던 것”이라며 “번듯한 강남 사무실에 고급 행사까지 하니까 괜찮은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코인은 400원이 붙어서 올라왔다고 하는데 그것도 다른 사기를 막으려고 만든 코인이다. 한마디로 실체가 없는 코인”이라고 덧붙였다.

다단계 코인 사기 피해는 좀처럼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왜일까. 코인 다단계 참여자들은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가해자다. 사업 초기 누군가를 추천해 배당금을 받은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 신고를 꺼린다. 다단계 코인이 ‘사기’라는 사실이 수사기관을 통해 ‘입증’될 경우 코인 가치가 폭락할 것을 우려해 돈을 잃고도 공론화하지 않는다. 사설 온라인 카페인 불법금융추방운동본부(더 스캠)에 사기 피해 사례로 올라온 코인과 P2P상품 수만 230개에 달한다. 더 스캠 측은 “코인 여러개를 만들어서 돌려막기하는 게 최근 코인 사기 흐름이다. 가짜 코인 만들어서 채굴 사기 치다가 들통나면 거래소를 만들어서 거래소 코인을 만들어 다시 사기를 치는데 나중에 사기인 것을 알아도 피해자들은 고소를 안 한다. 피해 상담도 당사자가 아니라 자녀나 가족들이 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다단계 코인 사기 등 암호화폐 관련 유사수신 행위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유사수신혐의업체 186곳(2019년 기준) 가운데 암호화폐 관련 업체(92개)가 절반에 달한다. 지난 9월에는 ‘불법 가상통화 투자설명회’에 유의할 것을 공식적으로 당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직접 코인 다단계 업체를 관리하거나 단속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암호화폐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엉터리 같은 암호화폐라도 선제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미지든 숫자든 일단 거래 대상이 생기고 거래가 이뤄지면 규제가 어렵다. 비트코인이든 허접한 코인든 감독하는 입장에서 보면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캐릭터 이미지를 사고팔면 수익이 생긴다는 사기 P2P 문제가 터졌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가치 없는 이미지라도 일단 매매 실체가 있으면 감독이 어렵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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