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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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참여정부는 취재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부 중앙지와 방송이 독점하고 있는 기자실을 폐지하고 합동 브리핑실을 만들어 개방하겠다는 것이 주내용이었습니다. 취재 때는 사무실에 무작정 들이닥치지 말고 사전에 조율해달라는 내용도 더해졌습니다. 취지는 언론개혁이었습니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언론의 힘을 빼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편집실에서]어떤 기시감

언론의 반발은 엄청났습니다. ‘언론 대못질’, ‘언론탄압’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정부에 맞섰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취재환경개선 투쟁특별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싸웠습니다. 언론은 “기자실이 폐쇄되면 정보공개를 할 창구가 사라지고, 공무원 접촉이 줄어들면 사안을 은폐·축소하기 쉬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감과 반감, 시대착오적 패배의식에 바탕을 둔 사적인 복수라고도 했습니다. ‘언론개혁’은 사라지고, ‘기자실 폐쇄’만 남았습니다.

참여정부에 심정적으로 지지를 보냈던 진보성향의 젊은 기자들도 많이 돌아섰습니다. 이런 식의 거친 개혁에는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진보진영도 갈라졌습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기자실 폐쇄조치에 명백히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도 “방안을 취소하고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보의 분열과 중도의 이탈 속에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10%대까지 추락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보면 때때로 참여정부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나온 길이 희한하게 닮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폭등한 것이 그렇고, 주요 정책마다 주류집단과 충돌하면서 파열음을 내는 것이 그렇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에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넣으면 이 또한 묘하게 비슷해집니다.

과도하게 강한 검찰의 힘을 빼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자는 것이 검찰개혁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힘이 빠지면 정권이 부정부패를 축소·은폐하기 쉬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검찰개혁이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사적 복수가 아니냐는 얘기도 들립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결로 구도가 바뀌면서 ‘검찰개혁’은 사라지고 ‘추미애와 윤석열’만 남았습니다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과정에서는 검찰개혁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던 일부 검찰들도 돌아섰습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진보도 갈라지고 있습니다. 진보의 분열과 중도의 이탈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폭락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이후 10년이 지났습니다. 언론의 힘은 그때만 못합니다. 10년 뒤 검찰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언론개혁에 나섰던 참여정부는 정권을 잃었습니다. 검찰개혁에 나선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될까요. 투키디데스는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는 “역사는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을까요?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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