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내가 살 곳’ 택할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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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사실 알면서도 시설 못 떠나는 사람들에게 ‘탈시설’도 알려줘야

어디에서 살 것인가. 이 질문을 비장애인들에게 던졌을 때 그들이 떠올릴 수 있는 대답은 다양하다. 아파트를 선호할 수도, 단독주택을 선호할 수도 있다. 대도시보다는 한적한 전원생활을 꿈꾼다 말할 수도 있다.

지난 3월 17일 서울 금천구청 앞에서 서울장애인차별연대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루디아의집 시설폐쇄 이행 및 거주인 전원 탈시설지원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3월 17일 서울 금천구청 앞에서 서울장애인차별연대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루디아의집 시설폐쇄 이행 및 거주인 전원 탈시설지원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문제 시설 폐쇄 반대나선 장애인 부모들

그렇다면 장애인들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 ‘탈시설(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독립적으로 거주하며 필요한 복지·치료 서비스 등을 제공받는 것)’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장애인들에게는 정해진 답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보호자가 보살필 여력이 되는 장애인은 보호자와 함께 살아가고, 그렇지 않은 장애인은 집단 거주시설이나 폐쇄병동 등에 수용된 채 평생을 살아갔다. 장애인들에게 선택이라는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2007년 10월 1일 경기도 가평에 ‘루디아의집’이라는 중증장애인 집단 거주시설이 들어섰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선한목자재단 산하 시설로, 이들은 설립정신으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가정에서 돌보기 힘들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소외감을 갖는 중증장애인을 모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섬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7년 뒤인 2014년 루디아의집은 보조금 횡령 및 장애인 학대(움직일 수 없도록 제압복을 착용시킨 혐의)로 1차 행정명령을 받았다. 관련자들은 벌금형의 형사처벌을 받았다. 3년 뒤 2017년 장애인을 감금하고, 불법 의료행위를 하는 등의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져 시설장 교체 등 2차 행정명령을 받았다.

시설 종사자들이 장애인들을 이름 대신 욕설로 부르고, 대변을 자주 본다는 이유로 식사량을 강제로 줄이고, 때리거나 밀쳐 쓰러뜨리는 등의 학대 사실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2020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였다.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아 대변이 엉덩이에 범벅이 되고, 피부발진이 생겨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종사자들은 하체를 전혀 쓸 수 없는 지체장애인 혼자 화장실에 가도록 해 뼈가 부러진 사실이 있어도 쉬쉬했다. 인권위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서울시에 시설장 폐쇄 및 법인취소를 권고했다.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다. 누구보다 분노하고 아파해야 할 장애인의 부모들이 ‘루디아의집’ 폐쇄를 반대하고 나섰다. ‘가평 루디아의집 정상화 촉구를 위한 보호자연대’는 지난 3월 서울시와 금천구에 행정처분 유보를 요구했다. 루디아의집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기로 했고, 재발방지 대책도 세워 다시는 이 같은 형태의 장애인 학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시설 운영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홍성보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팀장의 말이다.

지난 7월 13일 경기도 가평군 루디아의집에서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무연고 장애인 이전작업 과정에서 경찰과 공무원, 시설관계자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 / 서울시 제공

지난 7월 13일 경기도 가평군 루디아의집에서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무연고 장애인 이전작업 과정에서 경찰과 공무원, 시설관계자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 / 서울시 제공

“3월부터 보호자분들과 공식적으로 3번의 면담과 비공식적인 전화 연락·면담을 해왔습니다. 부모들은 한결같이 ‘루디아의집은 우리 아이가 이런 상태인데도 받아줬다. 다른 시설은 상담조차 거부했는데, 여기서 나가면 갈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학대는 벌어질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설에서조차 거부하는 장애인. 도전적 행동(발달장애인이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거나 해를 가하는 행동)이 강한 발달장애인이나 스스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들은 시설에서조차 배척당하는 경우가 많다. 돌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루디아의집에 거주하며 학대를 당한 사람들은 뇌병변, 지체장애, 발달장애 1급이거나 ‘장애 정도 중증’ 판정을 받은 최중증장애인이었다. 애초에 ‘내가 살 곳’에 대한 선택지가 없는 장애인들에게 루디아의집은 비록 수차례 학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살게 해줘서 감사한 곳’이 돼 있었다.

장애인 시설에서조차 배척당해왔던 그들에게 시설폐쇄명령은 ‘폭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는 이들이 갖고 있는 불신을 지우는 작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지자체가 행정적으로 해줄 수 있는 노력은 최대한 지원하되,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장애인 지원주택’

관(官) 주도의 행정조치에서 벗어나 민관 합동 TF를 구성했다. 서울시로서는 첫 시도였다. 긴급분리가 필요한 주요 피해자 7명을 우선 다른 장애인 거주시설로 옮겼다. 4월부터 금천구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기관 소속 29명으로 구성한 ‘루디아의집 이용인 지원 특별조사단’을 구성, 이용인과 조사단원을 일 대 일로 매칭해 지속적인 상담을 진행했다. 금천구가 5월 29일 시설폐쇄처분을 내렸지만 9월 중순까지 35명의 장애인이 이주를 거부하며 루디아의집에 머물렀다.

“9월쯤인가, 루디아의집 이용자 한 분을 이주하고 있는데 보호자연대에서 대표격으로 활동하던 한 아버지가 시청 당직실로 찾아와 ‘당신을 만나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청으로 돌아가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리니 이곳으로 오시면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찾아오신 아버지가 이렇게 묻더군요. ‘진짜 시설 폐쇄할 겁니까?’ 저는 ‘네’라고 했습니다. ‘보조금 지급도 중단되는 것이고요?’ 또 ‘네’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후부터 보호자들 사이에서도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홍성보 팀장)

이들에게는 시설 이전 외의 선택지도 생겼다. 이들이 처음 장애인 거주시설에 생활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장애인 지원주택’으로 갈 수도 있었다. 2일 기준 루디아의집에 있던 60명의 장애인 중 12명이 ‘탈시설’을 택했다. 다른 거주시설로 옮긴 장애인 48명 중 4명 역시 내년 3월 중 ‘탈시설’을 할 예정이다. 장애인 지원주택이란 장애인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개인 또는 2~3인 거주 형태로 제공되는 독립된 주택을 말한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추진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전환’ 이후 1차 탈시설화 작업으로 2017년 말까지 604명의 시설거주 장애인이 ‘탈시설’을 택했다. 2018년 2차 탈시설화 추진으로 올해 3월 기준 196명의 시설 장애인이 독립했다. 서울시는 오는 2022년까지 800명의 장애인을 ‘탈시설’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0월에는 강동구 고덕 강일지구에 들어서는 신축 아파트에 장애인 지원주택 74호를 공급하는 등 장애인 지원주택 다양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탈시설’만이 장애인 거주시설 내 학대를 막는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여전히 시설 내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학대를 받으면서도,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시설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 탈시설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닐까.

<류인하 전국사회부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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