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교민들 금융피해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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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의 불완전판매” 주장하며 대책 호소

인도네시아 국영 생명보험사 ‘지와스라야(Jiwasraya)’가 유동성 위기로 지급불능 상황에 들어간 이후 이 회사의 저축성 보험상품에 가입한 한국인들이 2년 넘게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은 현지 은행 등 7개 은행과 함께 지와스라야의 보험상품 판매를 대행한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이 상품의 위험성을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면서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하나은행 측은 일부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면서도 현지 법상 구제의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지와스라야-KEB하나은행 보험 피해자들이 지난 9월 11일 자카르타 KEB하나은행 본점을 방문해 지와스라야 지급 불능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 피해자 모임 제공

지와스라야-KEB하나은행 보험 피해자들이 지난 9월 11일 자카르타 KEB하나은행 본점을 방문해 지와스라야 지급 불능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 피해자 모임 제공

지와스라야는 2016년부터 하나은행 인니법인 등 은행을 통해 연 6∼9% 고이율의 저축성보험 ‘제이에스 프로텍시(JS Proteksi)’를 판매했는데 유동성 위기로 2018년 10월 6일 원금과 이자의 지급 정지를 선언했다. 상품에 가입한 1만7721명 중 한국인 계약자는 474명으로, 보험금의 규모는 5720억루피아(약 445억원)이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생활자금, 전세자금, 은퇴자금 등의 목적으로 모은 돈이 묶이면서 피해자들은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품 위험성 불거진 후에도 판매”

피해자들은 인도네시아 대통령, 재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에 자금 반환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인도네시아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하나은행 인니법인 역시 적극적인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국인 피해자 다수는 하나은행 현지법인 직원들이 이 상품을 판매하면서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데포지토·Deposito)’으로 소개하는 등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어로 된 설명서에는 “예금자 보호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지만, 실제 직원들의 구두 설명에는 빠졌다는 것이다.

3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다 올해 귀국한 A씨(31)는 “하나은행 영업 직원이 회사 사무실에 찾아와 권유했는데 원금 손실 위험성이나 보험사와 관련됐다는 내용은 설명해주지 않았고, 만기 시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일반적인 예금상품이라고 설명했다”면서 “보통 은행예금을 가리키는 용어가 ‘데포지토’였기 때문에 보험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거주하는 교민 B씨(34)는 하나은행에 넣은 2년 만기 예금을 재연장하려 할 때 하나은행 직원에게서 이 상품을 권유받았다. 그는 “만기로 재연장 의사를 밝힌 터라 보험상품이라는 걸 의심하지 못했다”면서 “투자상품이라면 위험성을 알릴 의무가 있는데 같은 예금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믿었던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B씨는 전세금을 포함해 7년간 인도네시아에서 모은 16억5000루피아(약 1억2800만원)를 돌려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2018년 4월부터 지와스라야의 유동성 위기가 현지에서 불거진 후에도 하나은행 인니법인이 적극적인 판매를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2018년 10월 이후 지와스라야의 지급불능 선언으로 판매를 중단하기 직전까지 가입한 사람만 50명을 넘는다. A씨는 “하나은행의 주장처럼 보험사를 대행해서 판매하는 역할이라고 해도 해당 보험사가 명백히 유동성 위기에 있는데도 계속 판매한 것은 책임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하나은행 인니법인 등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사건을 대리하는 방요한 변호사(법률사무소 유익)는 “인도네시아 변호사가 ‘미스리딩(오독)’을 주장하는 걸 보면 ‘데포지토’를 예금으로 보는 시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판매를 할 때도 위험고지보다 기존 예금상품과 금리를 비교하면서 고율이고, 안전하다는 걸 강조했다”고 밝혔다.

허유경 소비자시민모임 변호사는 “실제 원리금이 보장되지 않은 상품인데도 사실상 원리금이 보장되는 것처럼 판매할 경우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면서 “다만 법적으로 현지법인과 하나은행은 별도의 법인격을 갖고 있어서 현지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도 하나은행 본사의 책임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인니 구제방안 나오면 대응”

피해자들은 하나은행이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지고 피해자의 보험증권을 인수해 원금과 이자를 선지급한 후 지와스라야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법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달리 방카슈랑스 상품을 대부분 상품소개(리퍼럴)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어 상품 설명의 의무와 법적인 지급의무는 보험회사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측은 “일부 판매 과정에서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당연히 지겠지만 인도네시아 현지법과 현지 감독규정상 법적인 근거 없이 피해 고객과의 임의 합의금 지급이나 손실 보상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인 고객에게만 보상할 경우 소비자 보호에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한 인도네시아 법에 어긋난다며 난색을 표했다.

선지급 후 구상권 청구 방안이 막히면서 인니법인이 원금에 해당하는 금액의 무이자 대출 방안도 냈지만, 인도네시아 금융법에 따라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 측은 “대안으로 법적 제약이 없는 저금리 대출도 가능하지만, 정상화 방안 발표 후 현지 금융당국과 협의가 필요하다”면서 “지와스라야 보험사 자산을 담보로 한 은행대출 재원으로 조기 지급하는 제안에는 지와스라야의 실소유주인 국영기업부의 회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의 주장처럼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원(OJK)이 피해자에 대한 임의 보상을 허락하지 않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 모임도 우리 금융당국도 OJK의 공식적인 입장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레터를 보내진 않았지만, 실제 인도네시아 법이나 감독 당국이 그러한 입장인지 우리도 살펴볼 계획”이라면서 “다만 지점과 달리 현지법인은 현지 감독 당국의 관할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달 중 지와스라야의 구조조정과 상환 일정을 공개할 계획이다. 새로운 국영 보험사를 만들면서 지와스라야 부채를 이전하는 방식인데 부채의 일부를 ‘헤어컷(탕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5년 무이자 상환, 헤어컷 이후 5년 상환, 선지급을 원할 경우 헤어컷 이후 잔여 금액 5년 상환 등이 거론된다.

국영 보험사의 파산과 지급불능은 국내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구제금융 당시에도 보험사가 망하면 공적자금으로 증권을 인수해 소비자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 감독 당국은 사모펀드나 지난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처럼 금융사가 불완전판매를 할 경우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도네시아에 우리 방식을 요구할 순 없다”면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와스라야 사태의 해결방안을 확정하면 그 이후 우리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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