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감사위원 분리선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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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일가 전횡 막기 위해 필요” vs “해외 투기자본 개입할 우려”

총수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방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재계에서는 해외 투기자본이 추천한 감사위원이 회사의 중요한 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그동안 거수기 역할에 그쳤던 이사회를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분리선출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설령 해외 투기자본이 추천한 감사위원이 선임되더라도 경영권을 흔드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에서 열린 LG화학 주주총회에서 총회 성립을 선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에서 열린 LG화학 주주총회에서 총회 성립을 선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분리선출’이다. 지금까지도 상장회사의 감사위원을 선임하거나 해임할 때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과 합해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총수일가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뽑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의결권을 제한한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3% 룰’ 왜?

그러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는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뽑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 ‘일괄선출’ 방식으로 감사위원을 뽑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이사를 먼저 선출한 뒤, 뽑힌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다시 선출하는 것을 말한다. 감사위원 후보군인 이사를 선출할 때는 의결권 제한이 없어 결국 가장 표를 많이 보유한 최대주주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후보를 사전에 제외할 수 있는 구조다. 이마저도 감사위원을 뽑을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3%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이 같은 한계로 인해 ‘3% 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규모 상장회사에서 지배주주가 지지하지 않거나 소액주주가 지지하는 감사위원이 실제로 선임된 예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는 기업이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감시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6년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대 규모의 분식회계를 감행했지만, 감사위원회는 거수기 역할만 했다.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가 일어났던 2010~2016년 3월까지의 271건의 이사회 안건을 살펴본 결과, 가결된 안건은 269건이었다. 나머지 2건도 ‘유보’로 이후 이사회에 재상정돼 가결됐다. 한 해 매출이 12조~14조원가량인 회사에서 매출의 3분의 1이 넘는 손실이 은폐됐음에도 내부자인 감사위원들은 몰랐다고 항변했다. 이총희 회계사는 “이 정도 규모의 손실을 몰랐다는 것은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의 총체적 무능과 감사위원과 외부감사인 기능의 마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불리한 합병비율이었지만 감사위원회가 합병결의 주주총회에서 합병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19대와 20대 국회에서도 추진됐지만,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반대 측에서 내세운 대표적인 근거는 경영권 위협이었다. 해외 투기자본이 자기 측 감사위원을 내세워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에 사외이사를 추천한 사례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19년 당시, 현대차 주총에서 엘리엇은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수소전지 부문 경쟁사라 할 수 있는 발라드파워시스템사 회장 등 3인을 추천했다. 이 안건은 사외이사 선임단계에서 부결돼 결국 감사위원에 뽑히지 못했다.

분리선출된 금융사는 선임 시도 없어

미국의 행동주의 투자자 아이칸 펀드 측이 비밀유지 서약을 거부한 사례도 경영권 위협의 예로 거론된다. 2006년 당시, 스틸파트너스는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과 연합해 KT&G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KT&G 사외이사인 워런 리히텐슈타인 스틸파트너스 대표는 KT&G에 회계장부 열람을 요구했다. KT&G 경영진은 비밀유지 서약이 우선돼야 한다고 맞섰고, 결국 서약서가 제출된 뒤 회계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이 같은 사례가 경영권 위협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외국계 펀드가 회사에 주주제안을 하고 회사 측과 표 대결을 벌이는 상황에서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이 주주제안 안건에 동의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단순히 회사의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지 외국계 펀드가 연합했다고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했다. 엘리엇이 사외이사를 추천한 안건도 외국인 주주 47.9% 중 17.7%가량만 찬성했다.

해외에서도 방식은 다르지만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고기영 전 법무부 차관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일본은 3% 룰 제한을 받지는 않지만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 전원을 다 분리선출하며 독일은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를 따로 둬서 감독이사회를 통해 경영을 감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도 이사회 구성원 중 최소 한명은 소수주주가 추천한 후보 중에서 선임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오히려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은 헤지펀드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매년 100명 이상에 달하지만, 기업의 핵심기술 유출 문제가 불거진 적은 없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이 지난해 선임한 사외이사를 보면 전·현직 경영인 비율이 30%에 달했다. 국내의 경우에는 감사위원 진입 자체도 힘들다. 2016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이미 감사위원 한명 이상 분리선임을 도입하도록 했지만, 외국인 투자자 보유비중이 평균 65%를 넘는 국내 금융지주사에서 감사위원 선임 시도는 없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모든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적대세력이 선임한 사외이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됐더라도 회사가 선임한 나머지 2~3명의 감사위원으로부터의 견제를 받게 된다”며 “감사와 회사 측과의 소통은 일 대 일로 이뤄지지 않고 관련자들이 모두 투명하게 공유하기 때문에 특정 감사위원 1인이 개별적으로 회사의 기밀을 유출하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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