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왜 ‘크립토 우표’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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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기아에 맞서 싸우며 분쟁지역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WFP는 식량 배급 등에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기구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게 ‘블록체인’이다.

유엔이 지난 11월 24일 발행한 ‘크립토 우표’. 우표 오른쪽의 은박을 긁으면 ‘QR코드’와 ‘암호화된 주소’가 나타난다.

유엔이 지난 11월 24일 발행한 ‘크립토 우표’. 우표 오른쪽의 은박을 긁으면 ‘QR코드’와 ‘암호화된 주소’가 나타난다.

시리아 내전 이후 난민 상당수가 난민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요르단 북부의 아즈락, 자타리 캠프다. WFP는 캠프 난민 1인당 한달에 23디나르(약 3만6000원)를 지원한다. 난민들은 이 돈으로 난민촌 내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입한다. WFP는 난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주진 않는다. 난민들의 은행계좌로 지원금을 송금하지도 않는다. 단지 마트의 외상장부에 난민 한 사람당 23디나르씩 달 수 있도록 했다.

마트는 장부 기록을 토대로 물품 대금을 매달 WFP에 청구한다. 마트 주인이 직접 노트에 적고, 보관하는 방식의 외상장부는 아니다. 거짓으로 기록하고 더 많은 대금을 WFP에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는 사라지지만 난민들의 모든 거래마다 은행 수수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WFP는 마트 주인도, 은행도 아닌 블록체인이 만든 장부를 사용한다.

블록체인 자체가 일종의 ‘전자장부’다. 블록체인에서는 모든 거래내역이 블록체인 내 모든 참여자에게 전달된다. 또 거래 기록들을 ‘블록’으로 만들어 암호화한 뒤 각각의 블록을 ‘체인’처럼 연결한다. 블록 하나가 위조되면, 해당 블록은 다른 블록들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거짓 장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연결된 테트리스 조각 중에서 길쭉한 조각(블록)을 ‘ㄱ’ 자 모양으로 바꿀 경우, 사방의 다른 조각들과 연결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블록체인 장부는 위조 가능성이 없어 믿을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17년부터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난민들의 대규모 이동을 예측하는 ‘프로젝트 젯슨(Project Jetson)’을 진행 중이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 대규모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로 왔지만, 유엔이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대비하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난민을 이동하게 만드는 몇가지 요인과 지표가 있다면 난민 규모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소말리아 농부들은 국경을 넘기 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염소를 팔아치운다. UNHCR의 인터뷰에서 한 난민은 “염소는 굉장히 섬세한 동물이라서 중도에 죽어버려요. 그래서 피란 가기 전에 모두 팔아치우는 거죠”라고 했다. 피란을 가기 위해 염소를 내놓는 농부가 많으면 염소 가격이 폭락한다. 염소 가격은 소말리아 난민 규모를 예측하는 지표다. 프로젝트 젯슨에서 AI는 이런 변수들을 이용해 난민 규모를 예측한다.

이런 유엔이 지난달 블록체인을 이용한 ‘크립토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 오른쪽의 은박을 긁으면 숫자와 알파벳으로 이뤄진 ‘암호화된 주소’가 나오는 이상한 형태의 우표다. 해당 주소는 블록체인 내에서 우표의 거래내역, 진위 여부 등을 확인할 때 사용된다. 크립토 우표에는 ‘빈곤퇴치’, ‘양질의 교육’, ‘성평등’, ‘기후행동’ 등 유엔이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천명한 ‘17가지 목표’가 담겼다. 유엔은 크립토 우표 발행 이유에 대해 “‘2030년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위해 AI, 바이오테크놀로지, 블록체인, 로보틱스 같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유엔이 지지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는 블록체인과 AI 등을 활용한 서비스를 도입하는 우정사업본부 같은 한국의 공공기관에게 방향을 제시해준다. ‘기술은 약자를 위해 쓰여야 한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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