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자살생존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자살생존자’ 취재를 하는 내내 그가 생각났습니다. 자살생존자는 자살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뿐 아니라 동료, 지인, 유명인사의 죽음에 영향을 받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28명이 한 사람의 자살에 영향을 받습니다.

[취재 후]“우리 모두는 자살생존자”

2015년 5월의 주말, 친구를 만나러 막 집을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하루에도 문자메시지를 수십개씩 받는지라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비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클릭했습니다. “[비보] 포스코 사내 하청지회 양우권 EG 분회장님이 오늘 오전 자살하셨습니다.”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조금 정신을 차린 다음,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대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실감이 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양우권씨는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몇 년 동안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와 연락하는 몇 안 되는 기자였습니다. 제가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곧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자동메시지였습니다.

자살생존자는 남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저도 자살생존자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나 동료, 지인을 자살로 잃은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OECD 국가 중 자살사망률 1위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자살생존자를 3년간 추적 연구한 송인한 연세대 교수는 “우리 모두는 자살생존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제가 만난 자살생존자들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서 ‘내가 그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죄책감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인에 대한 원망,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 등. 그리고 이런 무거운 감정은 자살생존자를 자살로 이르게도 합니다.

그래서 자살생존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자살을 줄이는 일과도 연결됩니다. 많은 자살생존자가 자신의 트라우마, 감정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치유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조차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15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말만 반복할 게 아니라 자살생존자에 관심을 가지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입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