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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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집 없는 사람, 돈 없는 사람. 지방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20억원쯤 하는 서울 아파트에 살면서 주식 10억원 정도는 갖고 있어야 기삿거리가 되는 것일까요?

[편집실에서]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포털사이트 대문에 주식양도세 기사가 걸렸습니다. 종목당 10억원 이상 주식을 들고 있는 큰손 투자자에게나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신문 1면에는 종합부동산세가 장식합니다. 시가 12억원(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보유한 집주인이 관심이 있을 만한 뉴스입니다. 물론 그분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요. 하지만 당장 내일 밥 굶을 사람들은 아닙니다. 거리로 내쫓길 분들은 더욱 아닙니다. 세금을 낼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적게 내고 싶은 분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주목한 것 같아 읽어보았더니 결국은 강자의 시각을 담은 경우도 많습니다. 무주택 청년들 월세 걱정해주는 줄 알았더니 다주택자 세금 깎아주라는 얘기입니다. 존폐기로에 몰린 지방대학 고민해주는 줄 알았더니 본심은 수도권 대학 살리기입니다.

언젠가 언론인들 모임에서 “고통의 크기는 같다”고 말한 기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연간 수백만원의 보유세 를 내는 수십억원대 집주인과 연간 수백만원의 월세를 내는 집 없는 세입자가 느끼는 고통이 똑같다는 얘기였던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하긴 “지방경제가 엉망이어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고 하니 “지방 가보니 차도 없고 여유로워서 좋더라”라고 말한 라디오 진행자도 있었습니다.

언론은 어쩌다가 약자에게서 멀어졌을까요? 우선 기자선발 과정의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자가 되려면 나름 좋다는 인서울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서울에 거주하는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살 일도 없는 지방과 만나볼 일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공감할 기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얘깁니다.

‘능력주의’에 빠진 사회 분위기도 일조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성취한 것에 대한 보상은 정당하다는 능력주의는 약자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진 불공평한 경쟁의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능력주의를 “공정하다는 착각”이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기자들이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면에서 ‘찜통버스’가 사라지고 ‘주차난’이 채워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사라졌던 버스를 이슈화시킨 것은 노회찬 의원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신문에도 종부세 세금폭탄을 맞게 됐다는, 50~60억짜리 2주택을 갖고 있는 강남 집부자가 등장했습니다. 뉴욕 맨해튼의 고가 주택 재산세를 걱정해줬다는 미국 언론을 본 적이 없습니다. 기자들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 소리를 듣는 시대입니다. ‘기더기(기자와 구더기의 합성어)’라는 조롱까지 나왔습니다.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자초한 측면이 더 큽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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