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바로대출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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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운영, 주민들은 책 볼 기회가 늘어나고 서점은 매출 늘어나

“바로대출 책 받으러 왔는데요.”

서울 관악구에 있는 드림서점에는 사람들이 책을 대출하러 찾아온다. 새책을 파는 서점인데도 매일 10명 이상의 손님은 대출이 목적이다. 지난 11월 24일 만난 최현석씨도 그중 한명이다. 최씨는 이날 아이가 읽을 신간 동화책 3권을 받았다. 모두 새책이었지만 돈은 내지 않았다. 도서관 회원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출은 완료됐다. 서점에 들어와 책을 받아가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를 아십니까?

이날 최씨가 이용한 제도는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다. 경기도 용인시도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지만 서울에는 관악구가 유일하다. 제도의 특징은 주민이 읽고 싶은 신간도서를 가까운 동네서점에서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점으로 반납한 책은 구내 11개 도서관 중 한곳이 구입해 다음 대출에 사용한다. 대상은 관악구민으로 제한된다.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관악구통합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고 총 7곳의 동네서점 중 책을 받기 편한 곳을 지정하면 된다. 1~2일 정도의 심사를 거쳐 승인이 되면 지정한 동네서점에서 책을 대출할 수 있다. 전체 과정은 보통 3~4일 만에 완료된다. 다만 출간된 지 3년이 지났거나 관악구 내 도서관 세 군데 이상에서 소장 중인 책은 신청할 수 없다. 중복 구매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다. 또 수험서나 5만원 이상 고가 도서도 공공도서관 운영원칙과 맞지 않아 신청이 불가능하다.

책 대출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

지난해 6월 시작된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독서기회를 확대하자는 목표로 추진됐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수요가 급증했다. 2019년 3933명이었던 이용자가 올해 10월 기준 1만616명으로 증가하며 1년 만에 2배 넘게 상승한 것이다. 대출 권수의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2019년에는 5653권이 대출됐고, 올해는 1만8547권이 대출됐다. 3배가 넘는 성장이다.

제도에 참여한 서점 대표들이 느끼는 성장세는 통계수치보다 극적이다. 관악구에서 2대에 걸쳐 대천서점을 운영하는 구본용씨는 “동네서점 바로대출제가 없었다면 벌써 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구씨는 “한달에 30권도 팔리지 않던 책이 바로대출로 300권 가까이 나간다”며 “48년째 서점을 운영했지만 바로대출제 때문에 서점 위치를 처음 알게 된 분도 많다”고 했다.

드림서점 대표 성병찬씨가 선반에 쌓인 책들을 바라보고 있다.

드림서점 대표 성병찬씨가 선반에 쌓인 책들을 바라보고 있다.

드림서점을 운영 중인 성병찬씨의 만족감은 선반에 높게 쌓인 책에서 드러난다. 모두 동네서점 바로대출에 이용된 책들이다. 흐뭇하게 책들을 바라보던 성씨는 “이 책들은 공공도서관 중 한곳에 납품될 예정”이라며 “매달 서점 임대료를 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보 효과도 있다. 책을 대출해주며 동네서점도 알린다는 것이다. 좋은책서점을 운영 중인 이정원씨는 “바로대출제 때문에 서점을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 늘었다”며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해졌다”고 했다. 이씨는 “특히 대형서점만 방문해본 아이들에게 동네서점을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매출증대와 홍보는 예상된 것이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도 있다. 1988년 문을 연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그날이 오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날이 오면은 대학가에 얼마 남지 않은 전문서점이다. 서점 안에는 <러시아 혁명사>, <프랑스 철학>, <헤겔> 등 대형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든 도서들로 가득하다. 과거에는 서울대 학생들의 단골 서점이자 토론을 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서점 간판은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직접 쓴 글씨로 제작됐다.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직접 쓴 글씨로 제작된 '그날이 오면' 간판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직접 쓴 글씨로 제작된 '그날이 오면' 간판

그날이 오면 대표 김동운씨

그날이 오면 대표 김동운씨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들의 관심은 실용서나 수험서로 옮겨갔다. 그날이 오면도 심각한 운영난을 겪었다. 1993년부터 서점을 운영하는 김동운씨는 “원래 큰 길가에 서점이 있었는데 운영이 어려워 3년 전 골목으로 옮기게 됐다”며 “바로대출제를 통해 발생한 수익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바로대출로 예약되는 책들은 대부분 그날이 오면이 취급하지 않는 책들이다. 하지만 김씨는 출판사를 수소문해 최대한 빨리 이 책들을 구한다. 주민들이 제도를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전문서점도 계속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씨는 “책을 대출하러 왔다가 인문·사회과학 책들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며 “여러모로 고마운 제도”라고 말했다.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를 아십니까?

도서정책은 독자 중심으로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를 반기는 것은 이용자 역시 마찬가지다. 관악구에 사는 김혜진씨는 “소설책을 읽는 것이 취미인데 매번 1만5000원쯤 하는 책을 사기가 부담스러워 바로대출을 이용한다”고 했다. 또 “인기 있는 신간을 도서관에서 대출하려면 최소 1~2개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바로대출을 신청하면 3~4일 안에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이주은씨는 “아이들 책은 금방 읽기도 하고, 빨리 지겨워해서 바로대출을 이용한다”며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직접 고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만족감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다른 지역은 이걸 안 하나요?”, “지인들에게 꼭 추천합니다”, “중간에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등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관악구도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1인당 2권씩 대출 가능했던 제한을 5권으로 늘렸고, 대출 기간 역시 1주에서 2주로 확대했다. 도서구입 예산에서 ‘동네서점 바로대출제’에 배정되는 규모도 늘렸다. 수요가 발생하는 곳에 예산을 집중한 것이다. 관악구 관계자는 “앞으로 서점 2곳 정도를 더 참여시켜 주민들이 보다 가까운 서점에서 책을 빌릴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는 구청이 소비자들의 수요를 잘 파악한 것”이라며 “굉장히 창의적인 제도”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책은 공유경제의 대표적 사례인데 매번 책을 사게 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책에 관한 정책은 독자 중심으로 생각할 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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