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몽니’가 일깨워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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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트럼프의 ‘몽니’가 일깨워주는 것

기사를 기획하고 살짝 걱정이 됐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유효선거인단 270명을 달성하면서 ‘사실상 승리’가 확정된 시간은 미국 동부기준 현지시간으로 11월 6일 금요일 초저녁입니다. 한국은 토요일 오전이었죠. 주간지 기획으로선 애매한 시간대이긴 합니다. 기사 취재가 진행될 일주일 사이에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미국 대선 당일(11월 4일) 낮까지 나오던 예측은 트럼프의 압승이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맞췄던 모 인터넷매체는 이날 낮 발 빠르게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기사까지 써서 출고했습니다. 결국은 다 틀렸지요.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기사 마감 시점을 넘어서 현재까지 트위터를 통해 주야장천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권은 시작 때부터 자기 취임식에 온 사람들이 버락 오바마 취임식 때보다 많았다고 주장하며 대안적 진실(post truth)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엄밀히 말해 대안적 진실이라는 표현은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인 캘리언 콘웨이가 언론비서관 숀 스파이서가 내놓은 “지하철 이용자 수도 많았고”, “사람이 적어 보이는 것은 잔디를 보호하려고 바닥에 흰 천을 깔아서 그런 것” 등 해명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사를 출고해 경향신문 인터넷판에 실리던 주말, 미국에서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다행히도 내전 수준까지 간 건 아니지만, 여전히 조마조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백악관에는 트럼프라는 ‘폭탄’이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 과정에서 배워야 할 반면교사는 없는 걸까요. 인류 역사에서 정답인 정치제도는 없지만,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가장 검증된 제도가 대의민주주의 제도입니다. 연방국가라서 복잡하게 만들어진 선거제도이기 때문에 그게 미국의 민의(民意)를 정확히 대변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남습니다만 트럼프의 몽니가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있습니다. 이번처럼 경쟁의 한 당사자가 룰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 그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고장이 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 결과가 ‘바이든의 승리’가 아니라 ‘트럼프의 패배’였다는 점이 역시 앞으로도 이 이슈를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하나라도 더 ‘잡음들’ 속에서 사실을 건져내는 것이 사초(史草)로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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