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폭스뉴스,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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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폭스를 결딴낼 생각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잘 아는 익명의 소식통은 지난 12일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에 이렇게 말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의 불화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폭스뉴스는 그동안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백악관과 폭스의 회전문 인사가 구설에 오를 정도였다. 한데 대선 직전 둘 사이에서 삐거덕거리는 신호가 포착되더니 대선 이후엔 아예 적대적 관계로 변했다는 분석마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지만 약 7300만표를 얻은, 2024년 차기 대선을 노리는 정치인이다. 폭스뉴스는 미 케이블 방송사 중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대형 미디어이다. 둘은 흔들리는 공생관계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폭스뉴스 건물 / AFP연합뉴스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폭스뉴스 건물 / AFP연합뉴스

“폭스가 변했다” 트럼프의 속내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7일 폭스뉴스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지원에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세 연설을 생중계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트위터에 “2016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폭스뉴스”라고 썼다. 그는 이날 백악관 기자들에게 “로저 에일스가 있었다면 폭스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에일스 폭스뉴스 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선거캠프 고문을 맡았던 인물로, 그해 성추문 의혹으로 폭스를 떠났다.

결정타는 대선 당일 폭스뉴스가 미 주요 언론사 중 가장 먼저 경합주인 애리조나주에서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예측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라며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폭스는 지난 9일 ‘선거 사기’를 주장하는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의 기자회견 생중계를 끊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폭스 공격은 점점 노골화했다. 그는 지난 12일 트위터에 “폭스뉴스는 무엇이 그들을 성공하게 했는지 잊어버렸다. 그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잊은 것”이라고 썼다. 이어 15일 폭스뉴스에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피터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이 출연하자 “이게 폭스뉴스 주간 시청률이 망한 이유다.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OANN)와 뉴스맥스처럼 아주 위대한 대안들이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월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폭스뉴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잊었다. 2016년 대선과 2020년 대선의 차이는 폭스뉴스다!”라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월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폭스뉴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잊었다. 2016년 대선과 2020년 대선의 차이는 폭스뉴스다!”라고 썼다.

이는 지지자들에겐 ‘폭스를 버리고 OANN과 뉴스맥스로 떠나라’는 신호로 읽혔다. OANN과 뉴스맥스는 음모론을 거리낌 없이 퍼뜨리는 극우 매체다. 실제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이탈이 있었다. 뉴스맥스의 지난여름 약 2만5000명이었던 일일 평균 시청자 수가 대선 이후 70만~80만명 수준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맥스의 메인 앵커인 그레그 켈리의 쇼는 시청자가 10만명가량이었지만, 대선 이후 100만명 수준으로 늘었다. 영국 가디언은 “폭스가 존망의 기로에 있다”고 했고, CNN은 “폭스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쟁에 직면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 패배하면 케이블 채널 사업에 손을 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악시오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를 혼내주기 위해 현재 폭스뉴스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폭스네이션의 시청자들을 빼앗아오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폭스네이션의 월 구독료는 5.99달러(약 6600원)이다. 미 공영방송 NPR도 지난 14일 “트럼프의 다음 적은 폭스인가”라는 분석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 후 미디어 벤처기업을 세우거나, 현재 폭스의 라이벌 매체와 팀을 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월 1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폭스뉴스 대신 극우 매체인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OANN)와 뉴스맥스를 보라고 추천했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월 1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폭스뉴스 대신 극우 매체인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OANN)와 뉴스맥스를 보라고 추천했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폭스뉴스의 선택은

트럼프 지지층 시청자 이탈에 폭스 내부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NPR은 전했다. 닐슨미디어리서치의 지난달 27일 집계에 따르면 폭스뉴스의 황금시간대 평균 시청자 수는 490만명으로, 미국 케이블 방송 40년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미국 케이블 방송 인기 프로그램 5개 중 4개가 친트럼프 성향 폭스뉴스 앵커의 프로그램이었다. “폭스 시청률이 망가졌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틀렸지만, 폭스의 인기를 견인한 당사자가 트럼프 대통령인 것만은 분명하다.

관심은 폭스뉴스 등을 소유한 머독가(家)의 선택이다. 호주 출신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아들인 라클란 머독 폭스코퍼레이션 최고경영자는 지난 12일 연례 주주총회에서 “폭스는 항상 경쟁과 함께 번성해왔다”고 말했다. 폭스는 40년 넘게 미국 케이블 방송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형성했는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엔 ‘반정부 매체’로서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대통령은 스쳐갈 뿐이다. 루퍼트 머독은 늘 그 자리에 있다”고 했다. 머독가의 한 측근은 “머독 일가는 패자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머독가가 소유한 또 다른 매체인 뉴욕포스트는 대선 직전 바이든 당선자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의혹을 보도했으나, 바이든 당선자의 승리가 확정된 지난 7일엔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복하라는 메시지를 냈다. <폭스 포퓰리즘>의 저자인 리스 펙 뉴욕시립대 조교수는 “뉴욕포스트를 보면 머독가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면서 “머독가가 보기엔 바이든은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지 않는 중도 민주당원”이라고 했다.

머독가가 트럼프 대통령과 완전히 거리를 둘지는 미지수다. 인디애나주 드퍼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인 제프리 맥콜은 지난 7일 AFP통신에 “폭스는 항상 두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사기’ 주장을 밀어주는 숀 해니티처럼 비평가다운 스타 앵커가 있는 반면 첫 대선 TV후보 토론 사회자였던 크리스 월리스 앵커처럼 저널리즘 원칙에 철두철미한 언론인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NPR은 폭스뉴스가 트럼프 대통령을 일부 앵커의 쇼에 출연시키면서 바이든 시대의 저격수로 이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향미 국제부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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