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공립대학 대폭 늘려 대학 평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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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K-방역에 비해 방역 취약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이른바 선진국의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미국,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대한 막연한 환상, 동경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교육’ 영역만큼은 우리가 유럽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들이 아직 많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대학들은 대체로 평준화되어 있지만 학문적 성과에서 여전히 국제적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보통 대학 간에 서열이 없다고 하면 평준화, 그것도 ‘하향 평준화’가 떠오른다. 그만큼 대학의 가치도 동반 하락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럽의 대학들처럼 분야별 특성화가 부각되어 서로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가운데 저마다 국제적 명성을 유지하는 경우, ‘서열’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대학 딜레마, 등록금 올려 말아?

한국에서는 취업 등 삶 전반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기 때문에 특정한 대학에 들어가고자 무한경쟁이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학생들이 개성과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꿈을 이루고자 대학에 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유럽의 대학들은 평준화되어 있으면서도 대학의 교육 여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이 2000년을 전후해 발표한 ‘리스본 전략’과 ‘볼로냐 프로세스’ 이후 고등교육, 특히 연구 차원에서의 수월성 및 글로벌 차원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막대한 예산을 고등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독일만 보더라도 ‘독일연구재단(DFG)’이 중심이 되어 우수대학 육성정책을 시행하면서 2013~2017년까지 27억유로(약 3조5000억원)를 지원했다. 대학들은 지원 시 제출한 특성화 계획서에 따라 해당 분야에서 국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질적으로 우수성, 세계적 명성을 확보한 대학들에 끊임없이 전 세계로부터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이 지원을 10년 이상 받는 뮌헨 공대(TUM)의 경우,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특성화 비전으로 강조하며 ‘기업가 양성 대학’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대학은 4만명 재학생 중 외국인 학생 비율이 30%에 달한다.

한국의 상황, 특히 현재 대학이 처한 상황은 유럽과 비교하면 너무나 큰 격차를 보여준다. 교육부가 제공한 ‘2019년도 대학교 평균등록금 현황’에 따르면 2019년 한국 4년제 대학 연간 등록금은 평균 약 644만원이라고 한다. 가장 비싼 학교는 900만원이며 20위 대학까지 평균 8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학생들은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그도 저도 안 되면 휴학하거나 군대에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등록금을 응당 낮춰야 하는 것이 정답이겠으나, 2009년 ‘반값 등록금’ 논란 이후 등록금이 동결된 이래 10년이 지난 현재 한국 대학의 재정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악화일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전국의 사립 4년제 일반대와 전문대 전체의 재정적자 규모는 3808억원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대학 입장에서는 등록금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수년 내 지방 사립대부터 줄줄이 문을 닫게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학은 등록금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국가의 시각 전환, 통 큰 투자 이루어져야

한국 대학들이 처해 있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답은 국가의 근본적인 시각 전환, 통 큰 투자다. 등록금도 없고, 서열도 없는 유럽의 경우 국립대 비율이 독일 95%, 이탈리아 93%, 프랑스 86%이다.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학 등록금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한국 돈으로 수십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민간 자본, 학생들 개인의 등록금에 의존해 운영되는 사립대 위주의 한국의 경우와 많이 다른 상황이다.

결론은 우리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공립대학 체제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재의 대학 시스템이 뿌리내리고 있는 근본적인 원칙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재정적 차원에서 우리보다 월등히 부국이어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그들의 우선순위가 달라서이다.

2000년을 전후해 유럽 대학들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무한대의 탈추격적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나가고 있다. 독일의 우수대학 육성정책만 보더라도 지원액수가 점점 상승해가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투자한 금액이 총 46억유로(6조원)였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물량 공세의 차원만 보더라도 독일 정부가 고등교육의 수월성 제고를 위해 얼마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유럽 대학들의 예로부터 우리가 어떤 시사점을 얻을 것인가? 자녀를 진정 사랑하는 부모라면 금쪽같은 자녀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고, 잠재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그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에 국가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이 바로 그러한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귀한 성장 세대를 무한경쟁의 수레바퀴로 몰아넣는 고도의 압박 전략이 아니라 무조건 신뢰하며 아낌없이 지원하는 전략이야말로 청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될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메디치 가문의 예술, 학문에 대한 무조건에 가까운 전폭적인 투자가 그 시대를 천재들의 시대로 만들었던 일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최재정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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