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후, 2020년에 되돌아보는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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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어질지는 몰랐습니다. 한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듣겠거니, 했는데 어머니의 말씀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결국 막차 시간 직전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습니다.

[취재 후]50년 후, 2020년에 되돌아보는 전태일

예상 못 했던 저녁식사 대접도 받았습니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뜨고 콩자반, 마른 오징어채볶음, 깍두기 같은 반찬을 곁들인 소박한 집밥이었습니다. 이소선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의 동생 태삼씨 그리고 저까지 셋이서 밥을 먹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때까지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1학년 시절, 신입생 예비학회에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평전>이었습니다. 지금은 모 보수 매체에서 데스크를 맡고 있는 동기가 “전태일은 자신을 희생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은 게으름을 피우다가 노동자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을 용감히(!) 꺼내놓았다가 같이 세미나에 참석한 다른 동기들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학벌은 자신의 힘으로 달성했다는 일종의 능력주의적 환상이 깃든 순진한 발언이겠지요.

제가 대학 신입생일 때가 1989년이니 벌써 3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만, ‘노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그 뒤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분명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원에 들어갈 즈음인 1995~1996년 무렵에 민주노총이 결성됐고, 2010년대에도 최규석 작가의 <송곳>과 같은 작품이 비정규직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합니다. 지난해 경향신문 1면 기획이 생각납니다. 노동자 산재문제를 다루는 기획이었습니다.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표제로 배경에 깔았던 산재사망 노동자의 이름들, 그들은 여전히 그냥 잊힌 사람들입니다. 여·야 모두 동의한다고 하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위시한 전태일 3법이 연내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만, 그 이후에도 ‘잊힌 산재사고 사망자’는 있을 겁니다.

5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전태일을 생각합니다. 전태일의 삶을 미화하거나 영웅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외쳤던 그의 말이 남긴 울림을 곱씹어 봅니다. 참, 인터뷰 후 이소선 어머니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입니다만 1년에 두어 차례 마석 모란공원 묘지를 갑니다. 다음번 방문 때는 한번 찾아뵈려 합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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