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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불신 빌미는 사전투표와 전자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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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는 야권으로부터 의혹의 대상… 개표 디지털 조작 가능성 제기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과 4·15부정선거진실규명국민연대, 선거무효소송 변호인단은 총선이 끝난 후 63:36의 사전득표비율 등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63:36이라는 사전득표율은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사전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후보자 간 득표율이 63%:36%로 일치한다는 의혹이었다. 이 의혹은 유튜브를 통해 확산됐다.

21대 총선일인 4월 15일 개표 사무원들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21대 총선일인 4월 15일 개표 사무원들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월 28일 사전투표 및 개표 공개시연회를 개최해 의혹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선관위는 소수점 이하가 모두 다르다는 점, 전체 지역구 253개 중 17개 지역구(6.7%)에서만 63:36의 비율이 나타난다는 점, 63:36이 나온 해당 지역구도 두 정당 외 모든 후보자를 포함하여 계산할 경우 결과가 모두 달라진다는 점, 67:32의 비율도 17개 지역구에서 나타나고 61:38의 비율도 14개 지역구에서 나타난다는 점, 2017년 실시한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의 사전투표 시도별 득표 비율은 서울 73:26, 인천 71:28, 경기 72:27로 비슷하게 나타났다는 점을 해명 근거로 제시했다. 선관위는 “의혹을 제기하는 63:36의 비율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수치라고 할 수 없으며 이를 부정선거의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발표했다.

여야 의원 사전투표 개정안 추진

부정투표 의혹은 주로 사전투표에 집중됐다. 사전투표 득표가 일정한 비율로 나타난다든지, 사전투표 관리함 관리가 부실해 바꿔치기가 가능하다든지, 사전투표용지에 2차원 바코드(QR코드)를 사용한 것은 위반이라는 등의 의혹이다. 사전투표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처음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선거 때마다 낮아지던 투표율도 사전투표제 덕분에 올라갔다.

하지만 사전투표는 야권으로부터 늘 부정선거 의혹의 대상이 됐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투표를 꼬투리 잡아 의혹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올해 총선에서는 4월 10~11일 이틀간 실시된 사전투표에서 투표율이 26.69%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대구는 23.56%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4월 15일 선거일에는 대구지역의 전체 투표율이 67.0%에 이르렀다. 전국 평균인 66.2%를 넘어선 것이다. 사전투표 때 부정선거가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야권의 텃밭인 이 지역에서 사전투표율이 낮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전투표 규정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사전투표일을 이틀에서 하루로 줄이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7월 20일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현행법은 선거일 전 5일부터 2일 동안 사전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사전투표는 유권자가 후보자를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개연성이 있으며, 사전투표일에 투표하고 선거일은 공휴일로 생각하고 다른 일정으로 보내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개정 취지를 적어놓았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조폐공사에 투표용지 인쇄를 의뢰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10월 16일 대표 발의했다. 구 의원은 개정안 취지에서 투표용지의 위조 및 변조 우려를 제기하면서 “사전투표소에서 한국조폐공사에 의뢰하여 투표용지를 작성하도록 함으로써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범여권에서는 사전투표를 확대하는 방향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인재근 민주당 의원은 사전투표소 설치를 확대하는 개정안을,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사전투표의 시간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4·15 총선 개표 조작 의혹을 주장해온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의정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4·15 총선 개표 조작 의혹을 주장해온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의정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해당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에 제출됐지만 아직 법안 소위에는 상정되지 않았다. 법안심사2소위(행정 외의 관련 법안을 심사)의 민주당 간사인 이해식 의원은 “야권 일부에서 선거에서 패배한 후 부정선거 의혹을 물고 늘어지면서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사전투표에 많이 참여한다고 하면, 사전투표율 상승으로 오히려 선거일 투표에서 야권 성향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올라가게 돼 있다”면서 “때문에 사전투표의 선거 유불리를 따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사전투표 기회를 늘려 유권자들의 주권을 더 많이 반영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사전투표소를 늘리면서도 부정선거에 대한 터무니없는 의혹이 더 이상 제기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 “전자개표기 아닌 투표지 분류기”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개표 방식 역시 사전투표와 마찬가지로 선거부정 의혹 때마다 제기됐다. 4월 총선이 끝난 후 서울대 트루스포럼은 대자보를 통해 전자장치를 이용한 선거 부정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디지털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4·15총선 선거무효소송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6월 유튜브 개인방송 <신의한수>에 출연해 “표 바꿔치기 등 옛날 방식이 아니라 정교한 디지털 조작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민 전 의원은 지난 10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내년 보궐선거 국민의힘 출마 예상자들에게 “사전투표와 QR코드, 전자개표기로 무장된 민주당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면서 “당신들의 실력이나 인기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부정선거이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전자개표 방식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관위는 전자개표기가 아닌 투표지 분류기이며, 이를 통한 개표결과 조작이 이뤄질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선거 과정의 디지털 불신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디지털 방식이 아닌 수동적 방식으로 선거를 하거나 개표를 하더라도 선거 부정의 의혹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면서 “의혹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계속돼 왔고 다만 선거에 진 쪽에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지난 10월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한 민 전 의원의 주장이 다시 부각됐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11월 10일 SNS에 글을 올려 “미국 대선마저 부정선거라며 국익에 해를 끼치고 있다”면서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을 국제 망신시키는 민경욱 전 의원을 즉각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선관위는 “투·개표 시연을 통해 정확한 정보가 전달돼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준한 교수는 “미국 대선이나 한국의 선거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내 편만 옳고 상대방은 속이고 있다는 정치적 불신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면서 “국회에서 법률로 정한 선거나 개표 방식을 선거 후 패배했다고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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