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비닐하우스 ‘황당한 보상’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보상금 ‘내 돈이 아니다’ 찾아가지 않고 비닐하우스 소유주는 몇년 지나서 사실 알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진행하는 과천지식정보타운 보상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400평(약 1,322㎡) 비닐하우스를 두고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내 돈이 아니다’라며 찾아가지 않고, 비닐하우스 소유주는 몇년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비닐하우스는 철거됐다. 당사자들의 주장에 소장, 판결문, 조정문 참고해 사건을 정리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조감도 / 경기도시공사 제공

과천지식정보타운 조감도 / 경기도시공사 제공

사건의 시작,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2015년 5월, 과천지식정보타운과 관련해 문정동 일대 실태조사가 이뤄졌다. 인근 사무실에 있던 허형철씨는 길을 가다가 공사 직원들을 만났다. 허형철씨에 따르면 공사 직원 중 한명이 그에게 이름을 물었고, 그는 허형철이라 답했다. 허형철씨는 “공사 직원이 내 이름을 받아쓰는 걸 봤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대화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몇달 뒤, 허형철씨는 자신이 비닐하우스 소유주로 지정된 사실을 알게 됐다. 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허형철씨에게 보상금을 받아가라, 지장물을 철거하겠다, 이의가 있으면 신청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다수 보냈다. 다만 이름이 허형철이 아닌 ‘허영철’로 잘못 기재돼 있었다. 실태조사 당일, 공사 직원이 주민등록증을 확인하지 않은 탓이다. 이는 공사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공익사업법 제14조에 따르면 공사는 조서를 작성해 서명 또는 날인하고 소유자와 관계인의 서명 또는 날인을 받아야 한다. 허형철씨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의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이에 대해 공사 관계자는 “허형철씨가 비닐하우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공사는 허형철씨의 서명을 받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허형철씨에 따르면 그는 공사 직원에게 구두로 “나는 비닐하우스 주인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그는 “나는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 갑자기 비닐하우스 소유주가 되고 내 앞으로 (잘못된 이름 ‘허영철’)로 보상금이 나왔다. 내 돈이 아닌데 내가 돈을 왜 찾아가냐. 내 비닐하우스가 아닌데 내가 어떻게 철거를 하냐”고 말했다.

공사 입장은 다르다. 공사 관계자는 “관련한 공문을 우편, 등기, 내용증명 등으로 보냈다.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점까지도 비닐하우스 소유주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엉뚱한 사람에게 걸린 소송

아무도 돈을 찾아가지 않자, 공사는 보상금을 법원에 공탁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허영철’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보상금을 지불(공탁)했음에도 토지를 사용한 것에 대한 비용을 내라는 내용이다. 공사의 소장에도 허형철씨 이름은 ‘허영철’로 나와 있다. 허형철씨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그는 비닐하우스 소유주가 아니기에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당할 이유가 없다.

비닐하우스 소유주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것도 이 시점이다. 그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비닐하우스 소유주는 허형철이 아니라 나”라고 증언했다. 공사도 이를 인정했다. 당시 공사 측 변호인 의견서를 보면 “소송 중에 확인된 사실에 의하면 현재 토지를 점유하는 사람은 허형철이 아니라 OOO인바, 소송을 유지할 실익이 없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들이 ‘알박기’일까?

결국 해당 재판은 조정(화해)으로 끝났다. 이들은 “소유주가 밝혀졌으니 공사가 실태조사를 하고 보상금을 책정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재판 중에 비닐하우스 소유주를 비롯한 마을주민들이 공사 직원 황모씨를 만나기도 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재판에서 비닐하우스 소유주를 확인한 공사는 소유주를 상대로 다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1심 재판부는 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공익사업법은 손실보상이 누락되어도 원활한 공익사업을 위해 일단 땅·지장물(비닐하우스)을 넘겨주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사의 실태조사의 옳고 그름은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비닐하우스 소유주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나는 수용될 의지가 있었는데 공사의 허술한 실태조사로 인해 몇년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보상은커녕 갑자기 토지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1억이 넘는 돈만 물어주게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0일 해당 비닐하우스는 모두 철거됐다. 세금내역에 따르면 그는 2004년부터 해당 토지에서 생화·분화 소매업을 하고 있다.

현재 허형철씨와 비닐하우스 소유주는 공익사업법 위반으로 형사고소를 당한 상황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공모해 비닐하우스 소유권자가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비닐하우스 주변에 펜스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염소를 사육하는 방법으로 지장물을 공사에게 인도하지 아니한” 혐의다. 이른바 ‘알박기’처럼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알박기는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곳에서 매각을 거부하고 버티는 것을 말한다.

허형철씨는 “내가 돈이 목적이었으면 공사의 실수든 아니든 보상금을 찾아갔을 것”이라며 “소송에 걸리고, 형사고소를 당하고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 비닐하우스 주인과 내가 뭘 공모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 소유주 역시 알박기가 아니라 공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탓에 시간이 흐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건을 대리하는 손승주 변호사(법률사무소 드림)는 “공익사업법에 따르면 손실보상을 못 받아도 일단 넘겨주고 나중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당사자들이 소송에서 이기기 어렵다”라며 “공사가 기초조사의 증거로 제시하는 건 실태조사 당일의 사진이 전부다. 이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공익사업법상의 조서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사 관계자는 “공사가 보상을 안 해 주려고 소송을 진행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허형철씨와 비닐하우스 소유주가 2018년 재판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지금 와서 조사를 다시 해달라는 건, 공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공탁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되어있었다면, 정정 공탁을 요청했으면 해결될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