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스트롱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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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트롱맨스 도터(The Strongman’s Daughter)’

2012년 12월 <타임> 아시아판이 박근혜 대통령을 표지모델로 내세우면서 붙인 제목입니다. ‘스트롱맨’이라는 단어에 대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고 해석하자 <타임>은 인터넷판 기사의 제목을 아예 ‘독재자의 딸(The Dictator’s Daughter)’로 바꿔 버렸습니다.

[편집실에서]굿바이 스트롱맨

2010년대는 ‘스트롱맨’이 득세했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등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 정점은 2016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온건파가 사라져버린 국제무대. 기존의 정치문법을 무시하는 스트롱맨의 등장은 하나의 새로운 국제질서 패러다임처럼 보였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힘과 힘이 맞부딪쳤고 험한 말들이 오갔습니다. 국제협력은 위태로워졌고, 고립주의는 강해졌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정적에 대한 탄압과 인권침해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스트롱맨끼리는 통하는 것도 있어서 화끈한 이벤트들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두 차례 만났던 북미정상회담은 스트롱맨 시대에나 가능한 이벤트였습니다.

스트롱맨의 득세를 우연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소득불평등과 지역격차, 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는 엘리트 정치권에 대한 혐오,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할 강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겹친 ‘필연’이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미국의 2020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했습니다. 11월 5일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무효 소송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대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은 스트롱맨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롱맨 시대가 끝났다고 단언하기는 이릅니다. 스트롱맨을 불러왔던 문제의식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소득불평등, 지역격차, 청년실업 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욕구를 읽지 못하고, 세대교체에 실패한다면 야만의 시대는 언제고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끝내 주식에 양도세를 매기는 기준을 ‘종목당 10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재산세도 감면해 주기로 했습니다. 자산 관련 세금을 깎아준 만큼 빈부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불평등지수인 피케티지수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아프게 들어야 합니다. 이번 조치들이 행여 스트롱맨이 부활할 기회를 준 것은 아닐까요? 아니길 바랍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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