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진보감수성을 가진 새 인류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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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후 10명의 초선의원을 인터뷰하는 기획을 했습니다. 여당과 야당을 골고루 섞어서 기획해야 하는데, 당시 정의당은 장혜영 의원을 인터뷰했습니다. 장혜영 의원 인터뷰도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흥미로웠던 인물은 류호정 의원이었습니다. 그가 정의당 1번 비례가 되면서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개원 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원피스 차림 등원이나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 발언 하나하나가 온라인에서 잘근잘근 씹혔습니다. 기사에도 언급했지만, 정의당이 과거 노동의제를 버리고 페미니즘 이슈로 ‘테라포밍’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관종’ 류호정 의원이 메갈당 또는 ‘즈엉이당’으로 변한 정의당의 현실태를 상징하는 인물쯤으로 이야기되었습니다.

[취재 후]전혀 다른 진보감수성을 가진 새 인류의 출현

매일 매일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에 정작 당사자가 받고 있을 고통과 압박은 상상하기 힘들 노릇입니다. 그런데 류 의원은 달랐습니다. 류 의원실이 운영하고 있는 기자 텔레그램방을 통해 매일 공유되는 류 의원의 생각과 행적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다르다는 건, ‘꿋꿋함을 넘어 자신에게 쏟아진 부정적 관심의 에너지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여유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마침내 홈런. 국회 출입 시스템의 보안을 무력화시켰던 삼성 임직원들 행태 폭로.

국감 후 또래 지인들의 모임 자리에서도 그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류호정, 어떻게 봐야 해?” 묻는 말에 이미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기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지난주 취재 때 들었던 안병진 경희대 교수의 말입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인류의 출현.’ 안 교수가 장혜영·류호정 등 정의당 20~30대 초선의원을 두고 내린 평가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진보의제나 가치관은 86세대의 그것과 전혀 다른 내용과 사고방식일 수 있다는 지적이지요. 그럴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생각해보면 기자에게는 엊그제 일처럼 기억되고 있는 87년 6월항쟁이 이들에게는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사건일 것일 테니까요. 이들에게 민주화운동의 ‘추억’은 기자가 20~30대 시절 6·25전쟁의 참상이나 해방 후 보릿고개 기억을 이야기하던 어르신들 말씀과 비슷한 감상을 주지 않을까요.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꼰대’가 되었어. 내 주장을 하는 것보다 젊은 친구들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 앞으로 점점 더 필요한 덕목이 되겠지.” 기자란 직업엔 더더욱 중요한 자질이겠지요. 분발하겠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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