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점수 경쟁에 매인 교육, 정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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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열 문제의 끝판왕은 학교 성적과 직업 능력을 동일시하는 노동시장에서의 채용차별과 임금격차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53.5%의 기업이 ‘학벌이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입시경쟁과 사교육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학서열 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꿈일까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시민과 전문가 207인과 함께 대안을 찾는 ‘대학서열 해소 열린포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포럼의 연장선으로 대학서열 해소의 길을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8회에 걸쳐 대학서열 해소 방법, 입시개혁, 대학의 참여 등을 촘촘히 살펴봅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얼마 전 외국에 체류했던 지현씨(44·가명)와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민호(가명)가 귀국했다. 머물렀던 나라에서는 사교육이 없다시피 했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충실히,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눈 오는 겨울에는 해지는 줄도 모르고 스키와 스케이트를 탔다. 민호는 한국에 돌아와 곧잘 적응했다. 친구들과 관계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3:3 농구는 해본 적이 없다. 학원 스케줄이 서로 달라 한 번에 모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민호와 친구들은 아쉬운 마음이지만 이 상황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지현씨는 학교 수업에서 아이가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름 인기 있다는 학원을 찾았다. “아직도 중2, 중3 수학 선행이 안 됐어요?” 콧대 높은 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끌끌 혀 차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이미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고 있는 옆집 엄마에게 하소연하니 “사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걸 잘 알지만, 선행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뭐라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다 하는 거라며.

사교육이 늘어나는 진짜 이유

아이의 적성과 흥미, 부족한 공부를 채우기 위한 상식적 범주의 사교육이 아니라 학교에서 요구하는 이상의 선행학습을 강요하는 사교육에 왜 우리는 이르게 되는 것일까? ‘사교육 의식조사’라고 사교육을 왜 하는지, 얼마나 하는지 교육부와 통계청이 국민을 대상으로 물어보는 조사가 있었다. 그 조사에서 사교육 증가의 원인으로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항목이 ‘취업 등에 있어 출신대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위는 ‘특목고, 대학 등 주요 입시에서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 3위는 대학 서열화 구조가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학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사교육 증가의 배경에는 서열 높은 대학에 진학해야 조금이라도 취업이 수월하다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조사는 2013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왜 조사를 중단했는지 여전히 물음표다. 2019년까지도 학생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32만1000원으로, 전년보다 3만원(+10.4%)이나 올라 2007년 사교육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액을 기록하고, 연도별 증가폭도 역대 최고였는데도 말이다.

공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 시대, 감염의 위협에서도 인생을 결정할 대입을 위해 고3이 제일 먼저 전일 등교를 했으니 우리나라에서 입시의 위세가 어떤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입이 인생을 결정하는 한방이 되다 보니 학교교육은 다양한 수업내용과 형식으로 변주되기 어렵다. 아이들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더욱이 서열 높은 학교에 진학한 학생이 되어야만 가치를 인정받아 학교의 자랑이 되어 교문 앞 현수막에 이름이 걸리는 현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에서부터 아이들은 성적으로 줄 세우기와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내면화한다. 아이들의 적성은 매우 다양하고 그 다양함이 이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원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잠재력 계발과 진로 개척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채 사회로 나오게 된다.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해도 입시 결과에 따라 서열화된 대학 체제 내에서 고통은 계속된다. SKY, 서성한중경외시, 인서울, 수도권대, 거점국립대, 지방사립대 등으로 촘촘하게 나뉘고 노력에 따른 차별은 온당하다고 인식한다. 지방에 태어나 공부하고 집과 가까운 학교를 선택했을 뿐인데 ‘지잡대’라며 폄훼되기도 한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거점국립대 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부산대조차 2020학년도 모집인원(4509명) 대비 합격 포기 인원(3397명)이 75.3%에 달했다.

대학서열과 직무능력은 비례하지 않아

대학서열 문제의 끝판왕은 학교 성적과 직업 능력을 동일시하는 노동시장에서의 채용차별과 임금격차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316개사를 대상으로 ‘학벌이 채용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53.5%의 기업이 ‘학벌이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올해 설립 이래 최초로 종합감사를 받은 연세대·고려대 의료원은 신입사원 채용에서 지속적으로 ‘수능 배치표에 따라 출신대학 등급제를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대학서열 중심의 채용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문재인 정부가 직무능력 중심 블라인드 채용을 아무리 장려해도 여전히 대다수 기업은 출신학교 기재란을 활용하고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 채용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한양대 산학협력단이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의뢰를 받아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이후 성과를 분석해보니,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 비율은 4.8%포인트 감소했고, 비수도권 대학 출신자 비율은 4.7%포인트 증가했다. 이렇듯 출신대학 서열과 직무능력은 비례관계가 아닌데도 기업의 체질 개선은 매우 더딘 것이 현실이다.

기획력, 소통능력, 문제 해결 능력 같은 직무능력은 국·영·수 등 지식 중심의 학업능력과는 범주가 다르다.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어도 졸업자들의 직무능력은 동일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고용정책기본법은 채용 시 학력과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 국가인권위 또한 출신학교 차별 채용에 대해 불합리하니 개선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피라미드같이 공고한 대학의 서열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우리에게, 독일의 사례를 들며 평등한 대학교육을 역설한 김누리 교수의 강연은 반향을 불렀다. 독일교육의 한계와 비판적 시선에 앞서 국민이 열광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성찰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여당이 지역균형 발전의 화두를 던지며 서울대 폐지냐 아니냐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국사회를 지탱했던 동시에 그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아온 학벌 사회와 대학서열 해소 문제는 현 대학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와 국민적 합의 없이는 쉽사리 극복될 수 없다. 또한 이 서열 구조를 흔들지 않고는 입시 문제와 학교교육, 사교육 문제 해결은 난망하다.

잠들어 있는 초등학생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서열화라는 익숙하고 당연한 질서는 옛것으로 남겨두고, 성적으로 줄 세우기가 아닌 개인의 잠재력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역동적인 사회로의 변화가 하루빨리 시작되길 기대해본다.

<김은종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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