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모성애는 여성의 본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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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풀이가 돼 있습니다. 처음 이 풀이를 봤을 때 ‘본능적’이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모성애는 정말 본능적일까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나 출산을 하고 아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사실 모성애보다는,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생명체를 마주했을 때의 긴장감과 설렘이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주변으로부터 이제 엄마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즉 모성애가 느껴지느냐는 질문을 실제 받았는데, 대답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모성애라는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모성애라는 행동이 왜 일어날까요? 동물생태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바탕으로 모성애를 연구해 왔고, 뇌과학자들은 호르몬과 신체의 변화를 통해 모성애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북극곰은 한겨울 굴속에서 새끼를 낳습니다. 어미는 새끼를 낳고 이듬해 봄까지 굴 밖으로 한발짝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미는 음식도 못 먹은 채 젖을 먹이며 새끼를 키워낸다고 합니다. 이듬해 봄이 되면 어미 북극곰은 몸이 비쩍 마른 상태로 굴 밖으로 나옵니다. 배고픈 북극곰 어미는 굴에서 나오자마자 새끼의 배설물을 먹습니다. 다른 포식자들이 새끼 북극곰의 배설물 냄새를 맡고 잡아먹으러 오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동물들이 새끼를 지키려는 행동연구는 인간인 여성에게도 모성행동이 생물학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곤 합니다.

동물의 본능적 모성 행동

뇌과학자들은 엄마의 호르몬 변화를 근거로 모성이 본능이라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출산 전후 도파민과 옥시토신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이것이 새끼에게 사랑을 주는 모성애의 실체로 거론됩니다. 도파민은 기분이 좋아지도록 만드는 ‘쾌락 호르몬’으로 체내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면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식을 바라보거나 자식을 안아줄 때도 체내 도파민 분비량이 증가합니다. 자식을 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의 생화학적 실체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어미 쥐는 출산 뒤 뇌의 도파민 수치가 높아집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보면 엄마의 뇌에서 도파민 수치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옥시토신 호르몬은 자궁수축 호르몬으로 출산 시 자궁을 수축시켜 아이가 엄마의 몸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필수 호르몬입니다. 출산 후에는 뇌하수체 전엽에서 모유 분비를 촉진하는 작용을 합니다. 옥시토신은 모유 수유를 하거나 배우자와의 신체적 접촉 시 분비량이 늘어납니다.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데 아이와 함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로 옥시토신이 자주 언급됩니다. 또한 옥시토신은 감정을 관할하는 뇌 부위의 활동이 줄어들어 겁이나 불안,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과감한 결정과 실행, 겁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로 옥시토신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사회화의 결과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바댕테르는 책 <만들어진 모성>에서 모성애라는 개념이 18세기 말에 들어서 생긴 매우 근대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8세기 프랑스는 갓 태어난 아기를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진 유모에게 위탁해 4~5년간 키우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모성애가 엄마의 본능이기만 하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어집니다.

18세기 말이 되어 아이를 경제적 가치, 즉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지 않고 건실한 노동자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 엄마의 역할이 필요해졌고, 모성애라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했다고 주장합니다. 루소가 <에밀>이라는 책을 낸 것도 이즈음인데, 엄마의 자식교육이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모성애가 생물학적인 본능이라는 점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도 모두 저마다의 근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모성애라는 개념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성애는 한 사회 내의 젠더의식과 맞물려 그 의미가 과도하게 해석되고, 결과적으로 엄마들을 옥죄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성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

한국사회에서는 쉽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규정지어집니다. 이는 모성애가 여성의 본능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모성애를 갖고 있는 여성이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다양하다는 인식인데,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이렇게 과도하게 해석된 모성애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여성의 경우, 모성애도 없냐는 식의 비난을 받는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워킹맘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엄마 없이 자란 아이는 티가 난다”든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력감을 느낀 경우가 많습니다.

모성애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3세 신화’의 경우에도 한국에 도입되면서 왜곡됐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3세 신화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보육시설에 맡기지 말고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게 좋다는 개념입니다. 이 신화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51년 영국 정신의학자 존 볼비가 발표한 논문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볼비는 보육원 등에 맡겨진 유아들의 심신발달이 늦은 이유를 분석한 세계보건기구(WHO) 위탁 연구 보고서에서 “모성적인 양육결핍이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개념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도입되면서 아이가 세 살까지는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3세 신화’로 굳어졌습니다. 아이가 가족이나 보육대상과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해야 한다는 뜻의 연구가 한국에 들어와서 엄마는 아이가 세 살이 되기 전까진 회사에 다니지 말고, 아이와 함께해야 한다는 쪽으로 왜곡된 셈입니다. 오히려 다양한 연구에서 엄마가 일하는 상황이 아이의 학습능력과 문제행동간 관련성이 없다는 증거를 내놓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강요한 모성애의 틀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성애 코르셋’은 엄마에게는 엄마됨의 어려움이나, 고통, 불행, 자괴감과 후회는 드러내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치부해버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모성애가 있는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데, 엄마가 왜 그래”라는 비난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성애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다 보면, 엄마로서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부조리극’을 겪으면서도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야 하는 이 상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목정민 과학잡지 ‘에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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