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시대, 우체국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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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 <로컬의 진화> 같은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신간이 늘고 있다. 유튜브에선 시골에 집 짓고 사는 방송 피디의 일상이 담긴 채널 ‘오느른’이 인기를 끈다. ‘로컬이 대세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친구가 내게 말했다. “나도 서울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살 생각이야. 굳이 도시에서 아등바등하며 살 필요가 없겠더라….” 그는 코로나19 이후 회사로 출근하는 일은 거의 없고 대신 집에서 컴퓨터로 일을 처리한다고 했다.

전북 부안우체국 조병준 집배원이 지난 2017년 외딴집에 홀로 살고 있는 박성근 할아버지 집을 찾아 건강상태를 살핀 뒤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박용근 기자

전북 부안우체국 조병준 집배원이 지난 2017년 외딴집에 홀로 살고 있는 박성근 할아버지 집을 찾아 건강상태를 살핀 뒤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박용근 기자

유튜브 채널 ‘오느른’을 운영하는 만 서른 살의 여성 피디는 지난 3월 “마당 가득한 봄 분위기에 반해” 4500만원짜리 폐가를 사고, 시골 생활을 유튜브 영상으로 전한다. 이웃 할아버지로부터 개복숭아를 얻어먹기도 하고, “늙으면 아픈 데만 생기고 사람이 쓸모가 없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그렇지 않아요”라며 위로해주기도 한다. 텃밭 농사를 시작하자 지나가는 동네 할머니가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유튜브 독자들은 ‘여사님 잔소리 ㅋㅋㅋ 정겹습니다’ 같은 댓글을 달았다. 나 역시 코로나19 이후 사람과의 관계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동네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졌다. 재난지원금을 받는 집 근처 카페에선 50대 사장과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고 토스트도 얻어먹는다. 한편으론 이런 삶의 방식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코로나19 이후 ‘로컬’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전부터 ‘로컬리티’를 구축해온 지역들이 있다. 로컬리티는 ‘지역이 가진 고유 특성’을 뜻하는 말이지만, 마을 만들기 활동가들 사이에선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마련하고, 그 관계를 기반으로 정치·사회·경제·문화 활동을 하는 것’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교육·육아’을 중심으로 모인 서울의 성미산 공동체, ‘유기농업’과 ‘협동조합’이 발달한 충남 홍성 홍동면, ‘로컬푸드’로 유명한 전북 완주 등이 ‘로컬리티’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들이다. 이들 지역에선 주민들이 때론 팽팽하게, 때론 느슨하게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간다. 노래방이 없다며 툴툴대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협동조합 노래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빵집이 없는 곳에선 뜻이 맞는 주민들이 함께 협동조합 빵집을 만든다. 귀촌한 청년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농사법을 배우고,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홍보하고 팔아주기도 한다. 로컬리티가 구축된 지역에선 주민들의 작은 재주가 소중히 쓰인다. ‘돈’도 마을 안에서 순환한다.

우체국은 ‘로컬리티’를 유지하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앞서 언급한 충남 홍성 홍동면, 전북 완주의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이들은 농민이며, 농민들은 직거래를 통해 농산물을 판매한다. 소규모 신선 농산물 택배가 가능한 우체국 택배는 이들에게 소중한 존재다. 집배원들은 거동이 불편한 마을 어르신을 위해 의약품이나 생필품을 사서 전해주기도 하고, 공과금을 대신 납부해 주기도 한다. 충남 아산우체국은 취약 계층으로 분류된 지역의 다문화 가정을 다니며 생활에 불편이 없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지역의 ‘푸드뱅크’와 함께 매월 취약 가정에 식료품을 전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의 마을 공동체는 위기의 순간에 더 빛을 발한다. 특히 노인, 아이, 여성 등 약자의 삶을 지탱한다. 그 기반에 우체국이 있다. 하지만 지역의 수많은 우체국이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정사업본부가 우편 사업으로 인한 적자를 개선하겠다며 폐국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로컬의 시대’에 우체국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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