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골목-젊은이 도시로 탈바꿈한 일번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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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은 극락이란 뜻의 불교 용어이다. 관악산 남쪽 기슭 안양천을 끼고 자리 잡은 땅이다. 이 땅에 안양이란 이름이 붙은 유래는 관악산이 흘러내린 삼성산에 안양사란 절이 있어 그 이름을 따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조대왕이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과 지명이 얽혀 연유했다는 설도 있다.

안양일번가는 안양 최고의 번화가이다.

안양일번가는 안양 최고의 번화가이다.

예전 안양을 대표하던 명소는 1930년대에 만든 안양유원지였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막아 지은 수영장은 지금으로 말하면 놀이공원쯤의 휴양시설이었다. 그 주변의 딸기밭과 포도밭도 안양의 명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평촌 신시가지가 생기면서 안양은 더 크고 넓어졌다. 안양을 관통해서 경부선과 전철 1호선이 지나고, 평촌에는 지하철 4호선이 지난다.

안양역을 나와 길을 건너면 안양에서 가장 번화했다는 안양일번가 골목길이 펼쳐진다. 골목은 높은 건물들을 끼고 네모반듯하게 잘 그어졌다. 일번가 골목을 걸으면 안양이 젊은 도시로 느껴진다. 온통 젊은 취향의 옷가게와 주점, 식당과 카페가 일번가를 채우고 있다. 길을 걷는 젊은이도 많고 가게마다 손님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휴대폰 가게는 새로 나온 제품 입간판을 줄줄이 세우고 각종 혜택을 선전하며 오가는 이들을 이끈다. 안양일번가는 안양의 명소이기도 하고 상권의 중심이다.

안양을 대표하는 명소였던 안양유원지

안양에는 모두 다섯개의 대학교가 있다. 학생 대부분은 안양역을 통해 통학하니 자연 일번가 골목은 늘 그들의 차지가 된다. 유행은 어디보다 빨라 식당 메뉴부터 술집 안주며 파는 옷가지까지 새로운 것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골목이 됐다. 자주 눈에 띄는 음식점은 중국식 훠궈와 마라탕 그리고 마라상궈를 내세운 가게들이 골목 어귀마다 빠지지 않고 있다. 중국 유학생들이 늘어서인지 혹은 매운 중국 음식이 유행하기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겉보기엔 번영을 그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골목 곳곳에 코로나 사태가 남긴 불황의 생채기는 남아 있다. 빈 가게에 임대 표지를 크게 붙인 곳이 자주 보인다. 유흥가 뒷길에 빼놓지 않고 들어선 여관들도 단기임대 혹은 월세방 안내판을 내걸고 있다. 여관이 고시원과 호객 경쟁을 하는 모습도 이채롭다.

안양역과 안양중앙시장 일대는 지하상가로 연결돼 있다.

안양역과 안양중앙시장 일대는 지하상가로 연결돼 있다.

안양역은 일대가 거대한 상업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에는 백화점이 들어서 있고, 역과 연결된 지하상가는 길고 광대하다. 지하상가는 일번가를 둘러싸고 길게 지하도시를 이루고 있다. 백화점보다 더 많은 옷가게가 있고, 가방이며 잡화뿐 아니라 건강식품과 먹을거리까지 시장에서 팔리는 거의 모든 것이 펼쳐져 있다.

일번가에서 안양로를 건너가면 안양의 오래된 골목길이 보인다. 단층 주택부터 최근에 지은 필로티 구조물의 빌라들과 그 사이를 메꾸는 다양한 연립주택들이 이어져 있다. 아주 오래된 수제구두점 안에선 재봉틀로 재단한 가죽을 깁는 구두공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세월의 관록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몸짓과 가게 분위기다.

미용실 연륜 있는 주인아주머니가 이웃과 나누는 이야기는 골목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화분을 누가 한쪽으로 예쁘게 정리해줬나 싶었더니 아저씨였네”, “거치적거려서 쓰러질 것 같더라.” 허물없이 이런저런 사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길 가던 할머니는 화분을 들여다보다가 말을 보탠다. “똑같은 화분인데 내건 꽃이 안 핀다. 요령이 따로 있나 보다”고 하자 “그 아이는 자주 들여다보고 공들이면 앵돌아진다. 물도 주지 말고 내버려 두면 꽃이 피는 심통 맞은 놈이다”라고 일러준다. 긴 시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어렵고 아쉬운 일을 지켜본 사이의 친밀함이 골목 안 사람들 사이로 흘렀다.

황태 껍질 부각이 명물로 인기가 높다.

황태 껍질 부각이 명물로 인기가 높다.

시장·주택가·공원이 어우러진 곳

가게 앞엔 나이 든 이 서넛이 앉아 대낮부터 막걸릿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얼굴 불콰한 사내가 누군가를 향해 “어디 가?” 하고 외친다. 일행 중 하나가 “아, 집에 가겠지. 집이 어딘지 몰라서 묻나” 하고 타박했다. 듣자니 술 먹는 남편이 부르자 아내는 얼굴을 돌려 외면한 것이다. “하고많은 날 술 마시면 그렇게 무시당하는 거야” 하는 말에 “그게 아니고 누구랑 같이 가니까 그런 거겠지”라며 입맛을 다셨다. 막걸리 한병을 더 가져다 놓던 가게 주인은 “이 골목 남정네들은 모두 한량 났다. 나라도 모른 척하겠네”라며 불을 지른다.

안양일번가는 젊은이의 유행에 민감한 가게들로 가득하다.

안양일번가는 젊은이의 유행에 민감한 가게들로 가득하다.

1960년대쯤 지은 것 같은 시멘트 기와집과 새로 지은 연립주택 사이로 텃밭이 있다. 도시에선 보기 힘든 주택가의 텃밭이 새롭다. 호박 넝쿨이 흙바닥이 보이지 않게 빼곡히 퍼져 있고, 누렇게 익어가는 커다란 애호박이 수확 철이 됐음을 알린다. 고춧잎은 누렇게 변해버렸고, 사이사이 붉게 익은 가을 고추가 눈에 띈다. 호박을 따던 노인은 “여긴 예전에 자리를 잡은 곳이라 집터들이 널찍하다. 농사짓던 습관대로 빈 땅만 있으면 가지가지 심어 먹는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이곳은 밭이었고, 집들이 들어선 것은 60년대부터였다고 설명했다.

안양중앙시장은 안양 일대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다.

안양중앙시장은 안양 일대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다.

주택 사이에 넓게 자리 잡은 고물상엔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다. 노인 한명이 수레에 박스며 빈 병 따위를 싣고 들어가자 고물상 주인이 웃으며 반색했다. 노인은 “노느니 하는 일이다” 했다. 이 골목이 편해서 그냥 사는 데까지 살다가 뒷일은 자식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가 세상을 뜨면 노인과 함께 세월을 보냈던 집은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이 골목 안 집들은 대체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운명을 달리한다.

길가로 난 어떤 주택은 잘 꾸며 개인공방이 됐다. 물건도 만들어 팔고 또 사람들에게 그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단다. 군데군데 문을 연 백반집도 있고 수건 따위 판촉물을 파는 가게도 있다. 새로 지은 건물엔 잘 꾸민 동네 카페도 보인다. 동네 사진관도 있고 배달 맛집 중국집도 여럿 자릴 잡고 있다. 골목은 다양한 표정을 지녔다.

조용한 주택가를 곁에 두고 인근에서 제일 큰 안양중앙시장이 있다. 예전엔 주택가 골목에서 시장 골목으로 바로 이어졌다는데 지금은 전통시장 정비사업으로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다. 안양뿐 아니라 안산·군포 등지에서도 이곳 시장을 보러 다닐 정도로 크고 번창하던 시장은 전통시장이 겪는 다 같은 운명처럼 한풀 꺾인 모습이다. 그런데도 시장 곳곳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 묻어 있다.

중앙시장의 명물이 뭐냐고 묻자 상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부각과 튀각이 유명하다”고 했다. 북어 껍질을 튀긴 부각은 미용에도 좋고 술안주나 군것질로도 좋다고 한다. 시장 안 구역 하나는 아예 김밥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저것을 넣은 굵은 김밥이 푸짐해 보인다. 그중 유독 줄을 길게 선 김밥집 한곳이 있다. 우엉과 홍당무채 그리고 굵게 썬 단무지 등 익숙한 보통 김밥인데도 사람들이 몰려 있다. 기본이라는 채소 김밥 한줄에 2000원. 싼 가격에 빠지지 않는 맛이 손님을 불러들이는 모양이다. 3명이 번갈아 가면서 눈코 뜰 새 없이 김밥을 말아도 손님을 감당하기에 버거워 보인다.

안양동 골목엔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가지 표정을 가졌다.

안양동 골목엔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가지 표정을 가졌다.

김밥집 옆으로 시장 안 깊은 곳에 약국이 있는데, 이곳에도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시장을 둘러 큰 길가에 대형약국들 여럿이 있었으나 유독 이곳엔 바깥까지 긴 줄이 있었다. 줄을 선 이에게 웬일이냐 묻자 “이곳이 비타민을 싸게 판다. 인터넷에 비타민 성지라고 검색이 된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다”고 했다. 그도 대전에서 여기까지 왔단다. 일반 대형약국보다 절반 가까이 싼 가격이란다. 소문에는 이곳 주인이 절대적인 가격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한 종류 약 구매에 억대를 투자했다고 한다. 약국 앞 긴 줄을 보니 자본주의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편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땅

부지런히 어묵을 만들고 기름에 튀겨내는 수제 어묵집도 줄줄이 있고, 어물전도 붐볐다. 과일가게에 진열된 사과는 알이 굵고 먹음직스럽다. 과일가게 주인은 “요즘 나오는 물건들은 맛이 들었는데, 예년보다 비싸다. 올해는 가격이 세다”고 했다. 노점에서 손님들은 박하사탕이며 계피사탕, 호박젤리 따위를 무게로 달아 한봉지씩 사가고 있다. 노인은 “나이가 들면 입이 쓰다. 여기가 싸서 나올 때마다 사간다”고 했다.

이곳 시장의 명물이라는 순대 곱창 골목이 길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게마다 솥을 내걸어 짙은 국물을 끓이고 있고, 도마 위엔 모락모락 김 나는 머리 고기며 갖가지 내장과 순대를 썰어내고 있다. 순댓국은 건더기와 양념을 따로 담아 국물과 함께 포장해서 팔기도 한다. 순댓국집 주인은 “요즘엔 이대로 사가서 집에서 끓여 먹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포장 손님들이 늘었다”고 했다. 2인분을 사가면 서너 명도 너끈히 먹을 수 있고 가격도 싸서 더 낫다는 것이다. 시장 안 해장국과 설렁탕을 파는 가게들도 2인분 이상의 포장 메뉴를 내놓고 있었다. 따져보니 1인분 남짓한 가격에 2인분을 싸서 주니 팬데믹 시대의 식당 이용법이 아닐까 싶다.

안양중앙시장 골목을 나와 북쪽을 보면 삼덕공원이 있다. 제지공장이 있던 자리라는데 2000년대 초 공장을 옮기면서 터를 내놓아 공원으로 꾸민 곳이란다. 안양엔 공장이 있던 자리가 공원이나 박물관으로 변한 곳이 종종 있다. 사연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거나 참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안양 구도시의 중심지인 안양역 인근 골목길을 걷다 보면 변화란 서서히 번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칼로 물 베듯 혁명의 시간을 보내지 않더라도 세상은 반드시 변해간다. 한 세대가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잘 지킨 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면 또 그들의 시간을 만들어 모습을 바꾸어갈 것이다. 한 구역을 지우개로 지우듯 들어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뜯어고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안양동 일대의 골목길에 남아 있다. 그 골목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변해가는 모습이 더 나은 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양은 극락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의 뜻 그대로 편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땅인 듯싶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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