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위험’ 한반도 평화경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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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동아시아 패러독스 확대… 결과는 모두의 피해로

위험① 팬데믹과 위험사회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전대미문의 위기인 코로나19 사태를 일찌감치 예언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U. Beck)의 말이다. 벡은 현대 사회가 지식과 기술의 발달로 인류역사에 유례없는 진보를 이루었지만, 새로운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팬데믹을 포함해 구소련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재난사건과 기후변화 등은 현대의 위험을 대표한다. 현대 위험의 특징은 위험의 평준화, 즉 누구도 위험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분단 이후 56년 만에 운행이 재개됐던 남북화물열차가 2018년 4월 개성공단 화물자재를 싣고 남측통문을 지나 북한 판문역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분단 이후 56년 만에 운행이 재개됐던 남북화물열차가 2018년 4월 개성공단 화물자재를 싣고 남측통문을 지나 북한 판문역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현대 인류는 경계와 국경을 초월하는 지구촌 사회에 살고 있으며, 상호 긴밀한 의존관계에 있다. 현대 문명에서 도시의 발달은 필연적이지만, 이로 인해 팬데믹과 같은 위험이 급속히 확산하는 것 또한 불가피해졌다. 우리는 이미 위험의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Risk Society)에 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한 국가의 방역만으로 종식되지 않는다. 발병 초기에 상호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국제 협력체제를 구축했다면 상황전개의 추이는 달라졌을 수 있다. 고립주의를 택한 많은 국가가 어려움에 직면한 반면 한국은 개방적이고 투명한 전략으로 K-방역에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인류 공동의 현대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초국경적 협력과 인류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와 탈냉전의 과정을 경유하며 유럽은 통합의 신질서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유럽은 냉전기인 70년대 초반 데탕트를 기반으로 헬싱키프로세스를 진전시켜 안보협력을 확대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 안보협력체제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출범시켰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사실상 안보적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은 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시발점으로 협력을 확대해 공동의회와 공동화폐를 사용하는 유럽연합(EU)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위험② 남북 분단체제와 동아시아 패러독스 한반도·동아시아는 유럽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장기지속형이며, 한·중·일은 긴장과 협력의 이중구조, 즉 동아시아 패러독스에 직면해 있다. 수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에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지난 9월 서해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우리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다. 긴밀한 경제적 의존관계로 한국과 사실상 일일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사드와 강제징용공 문제로 일방적인 보복 조치를 가해왔다. 결과는 모두의 피해로 돌아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인 북한의 국방비 비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한국도 평균보다 2배 이상의 천문학적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200여만에 달하는 남북한 청년들은 청춘을 유보하고 형제끼리 총구를 겨누고 있다. 중국은 팽창주의 군사전략을 가속화하고 일본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향하고 있다. 동아시아 패러독스의 현실이다. 한반도 분단체제와 동아시아 패러독스는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으며, 역내 모든 이들의 생활세계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구조적 위험요인이다.

시민들이 9월 2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청와대 서훈 안보실장이 북의 통지문 내용을 전달하는 방송을 보고 있다. / 우철훈 기자

시민들이 9월 2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청와대 서훈 안보실장이 북의 통지문 내용을 전달하는 방송을 보고 있다. / 우철훈 기자

새로운 길. 한반도·동아시아 평화경제로 가야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는 세계 3대 경제권이면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가 서구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며, 그 중심에 한·중·일의 동아시아가 자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분단체제와 동아시아 패러독스의 해소를 위한 노력을 본격화해야 한다. 남북 분단체제는 북한의 총체적인 인간안보(Human Security) 위기의 근본적 이유다. 세계 10위권의 한국경제는 분단경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는 대륙이면서도 섬보다 열악한 교통·물류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동아시아 패러독스로 한·중·일 간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각국 국민 간 정서적 거리감이 재생산되면서 유럽과 같은 협력적 신질서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동아시아 평화경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안중근 선생은 이미 오래전에 그 방향성을 제시했다. 안중근 선생은 반일을 넘어 동양평화를 꿈꾸는 세계 평화주의자였다. 안중근 선생의 동양평화론은 어느 일방의 우위에 의해 강요된 폭력적 수동질서가 아니라 능동적 평화질서를 추구했으며, 핵심은 한·중·일의 협력과 공존·공영이었다. 안중근 선생은 한·중·일 공동의 평화도시, 공동은행 및 화폐 그리고 공동 군대를 구상했다. 유럽의 EU가 탄생하기 무려 85년 전에 말이다.

이제 미완으로 끝난 안중근 선생의 동양평화론의 나머지 페이지를 채워야 할 때다. 코로나19는 제조업의 중요성과 국민경제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 대만 그리고 독일 등 코로나19의 방역에 성공적인 국가 모두 제조업 강국이며, 이는 코로나19 방역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공급망(GVC)이 붕괴하면서 국민경제의 규모와 건강성의 중요성이 확인됐다. 개성공단 사업은 사실상 100% 제조업이며, 남북 경협의 미래도 핵심은 제조업이다. 남북 경제공동체가 형성될 경우 한반도는 제조업의 경쟁력을 갖춘 인구 8000만 규모의 거대 국민경제를 형성하게 된다. 북한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관광산업과 경제개발구 정책은 우리의 협력 없이는 성공을 기약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반도 평화경제가 남북 공동번영의 미래인 이유이다.

남북 경제공동체가 형성될 경우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해양 경제권을 단절시킨 물리적 장벽이 제거됨으로써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교통·물류체계는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서울-베이징 간 일일 육상 교통망 시대가 열리고, 유럽과 태평양은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통해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도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를 포함해 원자력 재난과 기후변화 등 현대 위험과 남북 분단체제 및 동아시아 패러독스는 남북과 동아시아 각국이 처한 공동의 위험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경과 경계를 초월하는 협력과 공동의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무기력하게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것을 바라보며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고민하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콜럼버스의 달걀을 깰 때다. 공동체로서 한반도·동아시아를 재인식하고, 평화경제에서 답을 찾자.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처한 공동의 위험을 극복하고 평화·번영의 협력적 신질서를 형성하는 지름길이다.

조한범은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남북관계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거쳤다. 현 고려대 사회학과 겸임교수면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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