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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아파트, 올해 상속·증여가 매매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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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정전이 발생했다.  | 연합뉴스

2018년 8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정전이 발생했다.  | 연합뉴스

부동산 시장은 높은 관심 만큼, 시비(是非)를 따지는 일도 잦다. 정부와 민간기관의 주택 가격 통계,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 논란은 예사다. 부동산 정책이 몇 번 나왔는지 논쟁이 붙기도 한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감정원의 집값 통계 신뢰성이 논란이 됐다.

<주간경향>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한국도시연구소>가 작성한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의 소유 현황 실태분석> 보고서를 입수했다. 연구소와 박 의원실은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4242세대), 이른바 ‘마래푸’(마포래미안푸르지오)로 불리는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아파트(3855세대),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아파트 5단지(840세대), 서울 용산구 한가람아파트(2036세대) 등기부등본을 전수 분석했다. 정확한 데이터로 서울 아파트 시장을 분석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아파트 소유권이 조합이나 서울시에 있는 사례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등기부등본을 뗀 기준 일자는 2020년 8월31일이다.

박 의원실과 연구소는 등기등본에서 확인 가능한 상속·증여를 비롯한 소유권 이전 사유, 소유자의 실거주 비율, 소유자의 거주 지역, 소유주의 연령, 실소유주의 아파트 보유기간 등을 분석했다.

은마아파트 소유권 이전 원인 추이.  | 한국도시연구소·박홍근 의원실 제공

은마아파트 소유권 이전 원인 추이.  | 한국도시연구소·박홍근 의원실 제공

■증여·상속이 매매 역전

분석 대상인 4개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상속·증여의 증가였다. 올해 소유권 이전 사유 중 상속·증여가 매매를 앞지른 아파트 단지도 나왔다.

보고서 분석 결과를 보면, 은마아파트는 올해 8월까지 상속·증여으로 소유권 이전이 된 사례가 81건(55.1%) 나왔다. 반면 매매는 65건(44.2%)에 그쳤다. 1999년 이후 은마아파트의 소유권 이전 사유 중 매매가 상속·증여보다 적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올 한해 상속·증여가 증가한 현상은 다른 아파트에서도 나타났다. 상계주공에서는 상속·증여가 16건(26.7%) 이뤄졌다. 매매(44건·73.3%)보다는 작지만 보고서의 분석 시점인 1999년 이후 상속·증여가 가장 많은 비율로 일어났다. 상계주공은 2018년(21.2%)과 2019년(10%)에도 증여·상속 비중이 높았다. 한가람아파트의 상속·증여 비율(28.3%·15건)도 분석 시작 시점인 2001년 이후 가장 높다. 한가람아파트 또한 2018년(17.4%)과 2019년(11.3%)에도 상속·증여 비율이 높았다.

20~30대의 소유권 이전 사유에서도 상속·증여 비율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올해 20~30대의 소유권 이전 사유를 보면 은마아파트의 20~30대 상속·증여 비율(75.4%)은 매매(24.6%)보다 3배 가량 높았다. 한가람아파트의 20~30대 소유권 이전 사유 중 상속·증여 비율(52.2%)도 매매 비율(47.8%)을 앞질렀다. 마포래미안아파트과 상계주공의 20~30대 증여 비율도 각각 26.3%와 28.6%로 높았다. 상계주공에서는 2018년에도 20~30대가 상속·증여로 아파트를 소유한 사례(37.9%)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상속·증여의 증가는 최근 한국감정원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지난 8월 아파트 거래 1만2277건 중 증여는 2768건이었다. 전체 거래의 22.5%였다. 은마아파트가 있는 서울 강남구(43.9%)나 서초구(42.5%), 송파구(45.1%)의 증여 비중이 높았다. ‘강남 3구’로 불리며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곳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가 매매에 나섰을 때 지불해야 하는 각종 비용 부담이 커지자 증여나 상속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 교수는 “다주택자의 매물은 나오지 않고 가격은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세부담 회피를 위한 배우자 증여도 있겠지만, 부모에서 자식 사이 자산 세습도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속·증여의 심화는 자산불평등 악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정 교수가 지난 6월 발표한 논문 <상속·증여가 가구의 순자산분포에 미친 효과>를 보면 “상속·증여가 자산축적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상속·증여의 확대가 가구 기준으로 자산불평등을 지수화한 지니계수로 치면 0.07~0.08 정도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지니계수는 소득불평등이나 자산불평등을 측정할 때 쓰이는 지표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함을 의미한다.

박 의원은 “매매 대신 증여를 택하는 주택 보유자들이 늘어나는 데 따른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해보인다. 증여 과정에서 편법은 없었는지 면밀히 조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박홍근 의원실 제공

한국도시연구소·박홍근 의원실 제공

■‘마래푸’에는 누가 사나

최근 수도권 주택 시장에서 떠오른 신조어는 ‘패닉 바잉’(Panic buying)이었다. 패닉 바잉은 집값이 급격히 오르자 구매에 뛰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패닉 바잉의 주체는 주로 30대로 꼽힌다. 실제로 30대는 서울 시내 주요 아파트를 얼마나 소유하고 있을까.

분석 대상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상 소유주의 연령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분석 대상 아파트 소유주의 평균 나이는 45.6세였다. 40대 소유주 비중이 33.4%로 가장 높고 30대(28.3%) 50대(22.1%) 순이다.

마포래미안아파트와(30%)와 한가람아파트(35.6%)는 30대 소유주 비중이 높았다. 마포래미안아파트는 여의도, 광화문 등 주요 직장가와 가까워 30~40대 직장인들의 선호 대상이다. 은마아파트(40.5%)와 상계주공아파트(28.9%)는 40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정 교수는 “마포래미안아파트의 경우 초기에는 30대가 대출로 집을 살 수 있는 정도였지만 현재는 가격이 많이 올라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사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고서의 실거래가 분석 결과를 보면, 마포래미안아파트는 112㎡(34평)기준으로 2015년 7억4677만원에서 올해 15억7514만원까지 가격이 두 배 넘게 뛰었다. 한가람아파트 또한 109㎡(33평) 기준으로 2015년 8억5426만원에서 올해 16억1234만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주요 아파트 단지 소유주의 실거주 비율은 어땠을까. 분석 대상 아파트 단지 소유주의 평균 실거주 비율은 32%였다. 이중 마포래미안아파트의 실거주 비율이 38.2%로 가장 높았다. 은마아파트(31.4%), 한가람아파트(29.9%), 상계주공(12.64%) 순으로 실거주 비율이 높았다. 상계주공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실거주 비율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실거주 비율을 연도별로 보면 은마아파트는 1999년 58.6%에서 올해 31.4%까지 감소했다. 한가람아파트의 실거주비율이 2003년 33.1%에서 올해 29.9%로 소폭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가가구비율과도 변화와도 유사하다. 한가람아파트가 있는 서울 용산구의 자가가구비율은 1995년 36.5%에서 2015년 34%로 소폭 줄어들었다. 반면 서울 강남구의 자가가구비율은 1995년 48.3%에서 34.1%로 감소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은마아파트를 비롯해 강남권 아파트는 실거주 목적이 아닌 보유분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거주하지 않는 소유주들의 실제 거주지역을 보면, 대부분 소유한 아파트 주변에서 살았다. 은마아파트 소유주들은 서울 강남구(33.8%), 송파구(7.2%), 서초구(7.1%), 성남시(5.5%) 순으로 많이 거주했다. 마포래미안아파트 소유주들은 서울 마포구(22%), 서대문구(4.6%), 영등포구(4.1%)에 주로 살았다. 한가람아파트 실소유주들은 서울 용산구(35.3%), 서초구(5.6%), 강남구(4.4%) 순으로 거주자가 많았다. 광역시·도로 나눠보면 분석 대상인 4개 아파트단지 소유주들의 70%는 서울에 거주했다. 인천, 경기까지 포함하면 86.4%가 수도권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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