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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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 살아요?”

‘아차’ 싶습니다. 안 물어야 할 것을 또 물었습니다. 이놈의 관성. 아니나 다를까 살짝 주저하는 게 상대의 미간에서 읽힙니다. 사실 그가 어디에 사는지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닙니다. 사는 곳은 대화를 잇기에 좋은 주제일 뿐입니다. 행여 나랑 같은 동네에 살거나 내가 살았던 동네에 산다면 살갑게 느껴져서 대화할 거리가 많아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편집실에서]어디에 사십니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어디 사느냐’는 자의든 타의든 자산조사가 됩니다. 강남, 마포, 일산, 김포 등 거주지는 그 차제로 상대의 자산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자가냐, 전세냐”까지 알게 된다면 자산조사는 다 끝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상대로서는 밝히고 싶지 않은 가장 중요한 사생활이 공개되는 셈입니다. 자산의 70~80%가 부동산인 이 나라에 사는 비극입니다.

부동산에 관한 한 누군가에는 천국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인 나라가 됐습니다. 2008년 정점을 찍었던 집값은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한동안 정체됐습니다. 2014년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빚내서 집 사기’ 정책을 내놨을 때만 해도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질지는 몰랐습니다. 현 정부에서 더 부풀어 오른 집값은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를 10억원 언저리까지 밀어올려 버렸습니다.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의 처지는 하늘과 땅이 됐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산의 격차는 세 배, 네 배로 벌어집니다. 업무 능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집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과도한 집값 차이는 소득에 대한 가치관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노동을 하지 않고 얻은 소득, 즉 불로소득이 정당해집니다. 어차피 일해서는 살 수 없는 집, 투기든 투자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소득이 불로소득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집을 보러가고 대출을 하고 구매선택을 하는 행위가 모두 육체적·정신적 노동이라는 겁니다. 이 논리가 맞는다면 로또도, 경마도 더 이상 불로소득이 아닙니다. 로또를 판매하는 매장에 가서 48개의 번호 중 6개를 찍는 것도 실은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와중에 서울 어느 부자 구는 수억 아파트의 재산세를 감면해주겠다고 합니다. 정부는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겨도 5000만원까지는 걷지 않겠다고 공헌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 번 근로소득에 ‘따박따박’ 떼가는 세금을 생각해 보면 이래저래 일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너도나도 ‘자기계발’은 포기하고 ‘자본계발’에 나섭니다. 20·30이 주식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세계에서도 개미들이 돈 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가즈아’를 외쳤다 바닥 아래 지하까지 떨어진 가상통화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본계발로도 돈을 벌지 못하게 될 때 사람들은 “이놈의 나라 차라리 망해 버려라”고 외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요. 더구나 그들이 청년이라면 말입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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