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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식량 ‘식용 곤충 시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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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아프리카 등 20억명 식용… 벨기에 곤충 잼·곤충버거 등장

유튜브 검색창에 ‘insect food(곤충 음식)’라는 글자를 입력하면 등장하는 영상들 대부분은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검색 결과의 상단에 배치된 한 영상에선 산속으로 추정되는 곳을 두리번거리는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발아래 한 지점을 고르더니 작은 삽과 손으로 좁은 굴을 부지런히 판다. 그러더니 성인 엄지만 한 물체를 한 번에 대여섯개씩 땅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정체는 풍뎅이다. 이 남성이 10여분 만에 채집한 풍뎅이는 100여마리에 이른다.

곤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 / 경향신문 자료 사진

곤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 / 경향신문 자료 사진

남성은 꿈틀대는 풍뎅이들을 세숫대야에 쏟아부어 깨끗한 물로 헹군 뒤 소금으로 보이는 흰색 가루를 골고루 뿌린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풍뎅이를 담더니 곧바로 요리를 시작한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얼마간 구워진 풍뎅이들을 남성은 접시에 옮겨 입과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식사를 시작한다. 얼굴에선 벌레를 먹는다는 당혹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곤충 먹방’에는 ‘Strange food(이상한 음식)’라는 해시태그가 붙어 있다. 유튜브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이들과 문화적 양식을 공유하는 국가의 국민에게 곤충은 먹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들은 단백질을 땅속이 아니라 정육점이나 음식점에서 얻기 때문이다. 식용이 가능한 곤충이 1900여종에 이르고 곤충을 먹는 세계 인구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20억명에 달하는 현실은 남의 나라 얘기이기만 하다.

최근 들어 소처럼 기존에 기르던 가축을 중심으로 한 단백질 공급 체계가 큰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00~2050년 사이에 세계 축산물 수요는 2억2900만t에서 4억6500만t으로 두 배나 껑충 뛸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수요를 뒷받침하려면 엄청난 양의 사료가 필요하다. FAO에 따르면 소의 체중 1㎏을 유지하기 위해선 10㎏, 사정이 조금 나은 돼지고기는 5㎏의 사료가 요구된다.

사료 적게 드는 ‘식용 곤충’

곤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 / 경향신문 자료 사진

곤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 / 경향신문 자료 사진

사료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건 이들이 인간처럼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항온동물이어서다. 한겨울에 자동차 내부를 일정한 수준으로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연료를 소모하며 히터를 켜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소나 돼지의 몸에서 일어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식용 곤충이다. 귀뚜라미 1㎏ 분량을 얻기 위해선 사료 1.7㎏이면 충분하다. 소의 6분의 1이다. 사료가 덜 드는 건 곤충이 체온을 언제나 따뜻하게 유지할 필요가 없는 냉혈동물이어서다. 게다가 곤충은 먹을 수 있는 부위도 많다. 귀뚜라미는 비교적 소화하기 쉬운 부분이 몸 전체의 80%에 이르지만, 닭과 돼지는 55%, 소는 40%에 그친다.

아직 전 세계 식품 시장에서 곤충은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은 대상이기 때문에 단위당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실정이다. 하지만 단백질 공급원 가운데 곤충 비중이 높은 일부 개발도상국의 제한된 시장에선 곤충 사육이 적은 자본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식용 곤충 사육은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상대적으로 적게 길러도 될 여건을 마련해 준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2014년 기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자료를 보면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의 24%는 농업 등으로 토지를 이용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농업 부문 온실가스의 3분의 2는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배출되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소고기 200㎏을 얻으려면 이산화탄소를 24㎏ 배출해야 하지만 식용 곤충을 같은 분량 생산할 때는 이산화탄소가 0.7㎏밖에 나오지 않았다. 닭고기(5.7㎏)나 돼지고기(4.1㎏), 두부(3.1㎏)에 비해서도 적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다. 가축 가운데 소와 양 같은 반추 동물은 소화 과정에서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강한 메탄을 방출한다. 현재 지구에 있는 소와 양은 20억마리에 이른다. 식용 곤충을 확대할 수 있다면 가축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소고기 버금가는 ‘영양 덩어리’

정말 곤충을 먹어도 우리 몸은 가축의 고기를 먹을 때처럼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있을까. 미국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유충기에 ‘밀웜(mealworm)’으로 불리며 식용으로 쓰이는 갈색거저리는 1㎏당 열량이 2056kcal인데, 단백질 공급원의 대명사 격인 소고기는 2820kcal이다. 갈색거저리가 소고기에 비해서 크게 뒤지지 않는 영양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곤충에는 미네랄도 많다. 특히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되는 철분 함량은 대부분 소고기와 비슷하거나 높다. 송충이처럼 생긴 식용 곤충인 ‘모파인’의 철분 함량은 100g당 최대 77㎎이지만 소고기는 6㎎에 그친다. 성장 지체와 면역체계 저하 등을 막기 위해 꼭 섭취해야 할 아연 역시 식용 곤충을 통해 소고기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곤충은 징그럽고 더럽다’는 정서적 반감을 줄일 열쇠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눈에 띄는 건 유럽에서 최초로 식용 곤충을 법적으로 허용한 벨기에의 움직임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달 펴낸 현지 현황 자료를 보면 벨기에 식품안전청은 2014년 귀뚜라미와 메뚜기, 밀웜, 나방 등 10여가지 곤충을 식용으로 승인했다. 같은 해에 벨기에 내 슈퍼마켓에서 곤충 잼이 출시됐고, 브뤼셀 자유대에선 구내식당에 곤충버거까지 등장했다.

현재도 관련 기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곤충을 가공해 가루로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밀웜 분말과 자연 재료로 만든 파스타, 귀뚜라미 분말과 견과류를 혼합한 에너지바 등이 선보였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장수풍뎅이 유충과 쌍별귀뚜라미 등 총 9종을 식용 곤충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곤충을 혐오식품으로 보는 인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예 공학적 처리를 통해 곤충에서 단백질만 골라 추출하는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렇게 하면 가공성을 높일 수 있는데다 곤충의 외형이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국내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최윤상 한국식품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대체 단백질의 한 종류로 식용 곤충이 각광받고 있다”며 “소나 돼지는 구제역 등 다양한 질병에 걸릴 수 있지만 곤충은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산업부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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