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정보 고의로 누설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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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비공개 상임위 내용 흘러나와… 천안함 피격 때와 여야 입장 정반대

“국회 국방위원회의 비공개 회의로 모든 사안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으로 알았다.”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이 10월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이 10월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국방위)은 10월 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 사건과 관련해 9월 24일 국방위 비공개 회의에서 국방부는 사건의 전말을 야당 국방위원에게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공개 회의 이후 야당발 정보들이 하나둘씩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홍 의원은 “군의 SI(특수 정보 Special Intelligence) 첩보가 있다는 사실과 우리 군이 어디까지 북한의 통신을 듣고 있다는 것을 몰라야 하는데, 실시간 노출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SI 첩보 유출의 통로가 된 국회

국회는 늘 군의 SI 첩보가 흘러나오는 통로가 됐다. 국회 정보위원회나 국방위에서 비공개로 제공된 정보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10월 7일 국방부 국감이 열리자마자, SI 첩보 공개가 논란이 됐다.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SI 첩보는 노출돼선 안 된다”면서 “앞으로 북한에 대한 정보 수집이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의 정보 유출 주장에 즉각 반발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이 고의적으로 국가정보를 누설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군이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라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월 4일 “SI에 따르면 북한 상부에서 ‘762(구경 7.62㎜ 소총)로 사살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전에 주 원내대표는 ‘연유를 바르고 태우라’라는 내용도 언급했다. 이 발언에 대해 민주당은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10월 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비공개를 전제로 한 국방부 보고 내용이냐”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주 원내대표는 “국방부나 청와대가 이래서는 참 안 되는데 자기들이 다 발설해놓고 지금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인터뷰에서 ‘연유’는 “전해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여권 일부에서는 검찰 내부의 사실이 야당에 흘러들어간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군 내부에서 야당 의원실로 정보가 흘러들어갔다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낸 것이다.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공무원의 형이 10월 6일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 국방부 종합민원실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공무원의 형이 10월 6일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 국방부 종합민원실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SI 첩보가 공개되면 북한에서는 암호체계를 바꿔버리게 되고, 최소 몇 개월 정도는 감청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북한이 비화 무전체계를 바꾸거나, 음어를 바꿔버리면 새로운 감청 정보를 얻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여당(한나라당)의 한 관계자였던 A씨는 “음어의 경우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음어를 노출하는 순간, 북한이 음어 체계를 바꿔버리게 되고 우리 군이 애를 먹게 돼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당시에는 야당인 민주당이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면서 민감한 군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면서 “천안함 사건과 이번 민간인 사살 사건을 비교하면 여야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여야가 공수만 바뀌었을 뿐 군사 정보를 정쟁에 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원내의 한 관계자인 B씨는 “이미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총격 사실을 발표하는 순간 북한에서는 우리가 감청한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면서 “762라는 용어 하나만으로 북한이 암호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느슨한 군사기밀보호법 적용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감한 정보의 공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새로운 야당인 자유한국당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비난의 화살을 받았던 민주당은 공세를 야당에 넘기는 식이다. 이상돈 전 의원은 “국가안보 관련 정보라면 여야가 의심을 하더라도 절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면서 “감청했느냐, 내놓으라 하는 식의 요구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특이하게도 의원 면책특권이 있는데, 이는 독재 정부 시절 야당 의원들의 무기였다”면서 “이 무기를 안보에 대한 정보 공개에 사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야 간 정쟁이 된 안보 관련 정보 유출이 군사기밀보호법에 대한 느슨한 적용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전 의원은 “미국 같은 경우 이런 발언을 공개하면 실정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을 받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감청 정보 공개가 알권리를 강조한 나머지, 처벌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서로 자신의 당에 유리한 발언만 하게 되면서 여야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미국에서는 안보 관련 기밀의 공개에 대해서는 처벌이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민간인의 친형은 10월 6일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감청기록 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감청기록 공개 논란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알권리와 국가안보상 기밀 보호라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의 충돌을 가져오고 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알권리라는 것은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하는 원칙이 아니다”라면서 “보호해야 할 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보호해야 할 정보를 보호하는 것도 국민의 알권리 중 하나”라면서 “알아야 할 것을 알리고 보호해야 하는 것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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