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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 싹 잘라버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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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호 교수, ‘지역화폐 무용론’ 거침없이 비판

지역화폐는 논쟁하기 불편한 주제다. 학계에서도 ‘지역화폐 유효성’에 대한 견해가 엇갈린다. 연구기관 보고서마다 결론이 분분하다. 정치권에서는 더욱 첨예한 주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 보고서로 촉발된 지역화폐 논쟁은 이제 중앙 정치 이슈가 됐다.

사진/ 김창길 기자

사진/ 김창길 기자

경제학자들은 지역화폐에 대한 의견 개진을 꺼린다. 섣불리 의견을 피력했다가 지지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지역화폐 논쟁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양준호 교수(인천대 경제학과)는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지역화폐 무용론’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지역화폐에 대한 정부와 여당 내부의 온도차는 차기 대권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양 교수는 지역화폐가 ‘경제민주화와 지역 순환형 경제로의 전환을 가져올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역화폐에 대한 실증적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9월 25일 인천대학교 양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조세연의 지역화폐 보고서를 어떻게 봤나.

“엉터리 보고서다. 표본부터 부적절하다. 전체 지역화폐 60%가 2019년 이후에 생겨나 정착했다. 조세연 보고서에서 활용하는 통계는 2018년 이전까지다. 조선시대 통계를 갖고 해방 이후 한국경제 분석을 하고 있는 꼴이다. 앞서 여러 차례 지적했듯 연구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을 겨냥해 내놓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보고서라고 하는데.

“조세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조세연의 보고서는 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결과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게으른’ 보고서다. 지역화폐는 발품을 팔아야 분석할 수 있다. 지역화폐 발행 지역의 중소상공인 매출 증가분과 부가가치세 통계를 업종별로 세분해서 분석해야 한다. 현장 인터뷰와 설문조사도 필수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고 자료를 얻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조세연은 안이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전 통계자료만으로 지역화폐를 분석했다. 통계 사용의 오류다. 그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섣불리 내놨다.”

-지역화폐 효용성 논란은 전부터 있었다. 무용론이 대세 아닌가.

“누가 지역화폐를 반대할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소형 유통업체 매출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반면 대형 유통업체 매출은 떨어진다. 유통시장을 독점한 유통 재벌은 당연히 지역화폐를 반대한다. 중앙 정부도 지역화폐가 달갑지 않다. 지역경제 활성화로 지방 정부에 힘이 생기면 지방 분권이 가속화된다. 이렇게 되면 중앙 정부 입지가 축소된다. 화폐 발행권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지역화폐가 정착하면 한국은행의 독점력은 약화된다. 화폐권력을 각 지역에 덜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지역본부가 지역화폐 관련해 다면적인 분석 보고서를 내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힘을 보탠다. 그들의 학문적 토대는 기존 시스템에 있다.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에게 지역화폐는 사이비다.”

-지역화폐 논쟁이 정치 이슈로 번졌다. 정부 여당에서도 이견이 나온다.

“지역화폐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가 불투명하다. ‘우리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으로 지역화폐를 택했다’고 천명하면 혼선이 덜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역화폐는 ‘이재명 정책’으로 각인돼 있다. 지역화폐가 성공하면 그대로 이 지사의 치적이 된다. 당장 차기 대권주자들은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다. 겉으로는 지역화폐를 옹호하고 있지만 친문과 비문 사이, 대권후보자 개인 간 온도차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든 정부든 선뜻 ‘지역화폐로 간다’라고 확실하게 말 못 한다. 게다가 기획재정부도 계속 반대하고 있지 않나. 청와대에서도 지역화폐를 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화폐 효과를 확신하나.

“중앙 정부와 대기업의 전략적 지원 없이 지역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학자로서 확신한다. 지역화폐 효과는 소비촉진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그치지 않는다.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 예컨대 지난해 하반기에는 인천 서구지역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부문에서 고용이 3.86% 늘었다. 도소매 및 음식 숙박업에서도 8% 이상 증가했다. 경기도 시흥에서도 지역화폐 도입 이후 같은 업종에서 고용증대 효과가 나타났다. 이제껏 나온 어떤 지역경제 정책보다 고용증대 효과가 탁월하다.”

-모든 지자체가 우리 지역 살리겠다고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결국 제로섬(zero sum) 아닌가.

“일본 내 지역화폐가 200개가 넘는다. 그러면 200개 지역 발전이 멈춰야 하는데, 연구를 해봤더니 아니었다. 지역화폐를 하고 있는 지역 모두가 자립적 발전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생력을 갖춘 지역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지역적으로 가까운 시흥과 부천, 인천이 동시에 한다고 해서 제로섬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완결성을 갖춘 여러 개의 지역이 나온다는 얘기다. 지역화폐의 힘이다.”

-지역화폐에 언제까지나 세금을 지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인센티브가 끊기면 사용량도 급감할 것으로 보이는데.

“고민하는 부분이다. 지금 ‘한국형 지역화폐’는 엄밀히 말하면 이벤트성 상품권에 불과하다. 사업 예산은 세금으로 충당하고 발행과 운영, 관리까지 지자체가 주도한다.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시민이 직접 기획하고 관리하는 시민주도형 화폐로 거듭나야 지속가능하다. 지역 내 소비 촉진을 유도하는 쿠폰이 아니라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대안 화폐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은 과도기다. 한국은 지역화폐 토양이 전무하기 때문에 지자체가 주도해 세금을 들여 토대를 만들고 씨를 뿌렸다. 지금은 싹이 나는 과정에 있다. 시민사회가 주도해서 여기까지 왔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 이제 막 지역화폐에 싹이 났다. 초기여서 불완전하고 단점도 있다. 그렇다고 싹을 잘라버려야 하나. 끊임없이 토론하고 보완해서 끌고 가야 한다. 지역화폐를 살려둬야 진화할 것 아닌가. 언젠가는 세금 지원 없이 지역공동체 안에서 할인율을 확보하고. 캐시백 자금을 충당하는 대안화폐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로컬(Local)화폐에 그치지 않고, 시티즌(Citizen)화폐로 가야 한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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