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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신고자들은 잘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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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 ‘이후’에도 여전히 고단한 삶… “시간을 되돌려도 신고를 할 것 같다”

“평범한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 부패·공익신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안내 문구다. 공익신고는 세상을 바꾼다. 그리고 공익신고는 공익신고자의 삶도 바꾼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을 고발한 A씨. 용산장애인복지관을 고발한 김호세아 사회복지사, 나눔의집의 김대월 학예실장을 만나 ‘공익제보 이후’ 이야기를 들었다.

김대월 학예실장이 나눔의집 입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흉상 뒤에 서 있다. / 김기남 기자

김대월 학예실장이 나눔의집 입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흉상 뒤에 서 있다. / 김기남 기자

추석을 하루 앞둔 9월 29일, A씨가 피켓을 들고 양 회장의 집을 찾았다. “불법음란물 유포를 중단하고 공익신고자 부당해고 철회하라.” 지난 7월에는 법무법인 LKB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왜 하필 양진호입니까. 왜 하필 LKB입니까.” 양 회장은 항소심을 앞두고 LKB 법무법인을 선임했다. LKB 법무법인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변호를 맡은 이른바 ‘핫한’ 법무법인이다.

직원들의 공익신고 이후, 나눔의 집에는 늘 긴장감이 감돈다. 오랫동안 일한 일본인 직원을 두고 신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계시는 곳에 일본인 직원이 웬 말이냐”라는 현수막이 걸리는가 하면 폭행 사건도 벌어진다.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 5일, 김대월 학예실장은 ‘나눔의집 운영 정상화를 위한 추진위원회’ 관계자에게 뺨을 맞았다. 다른 직원은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현재 입원 중이다.

“모른 척할 수 없어서.” 공익신고에 나선 배경에 대해 셋의 대답은 똑같다. 용산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던 김호세아 복지사에게는 ‘종이 한장’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그의 책상에 종이 한장이 올려져 있었다. 복지관에서 주최하는 축제 후원금이 성공회재단으로 흘러간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알아본 결과 사실에 가까워 보였다. 증거를 모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제보 이유는 “모른 척할 수 없어서”

김대월 학예실장에게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기가 됐다. 나눔의집에서 할머니들은 행복하지 않아 보였다. 언론에 보도되거나 ‘높은’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면 외출이 제한됐다. 그 많은 후원금 중 할머니에게 쓰이는 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직원들이 사비로 무언가를 선물하려 하면 “버릇 나빠진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는 이런 상황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신고에 앞서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다. 2019년 1월 나눔의집 직원들은 이사회에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내부 감사 결과는 ‘법인과 시설 회계에 문제없다’였다. 다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지방자치단체다. 외부에 알리면 무언가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광주시는 나눔의집에 지시사항과 350만원 과태료를 처분했지만, 운영방식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A씨도 마찬가지다. 위디스크·파일노리 직원들은 음란물 유포에 대해 수차례 양 회장에게 보고했다. 특히 불법촬영물이 문제였다. 그럴 때마다 양 회장은 “홍보되고 좋겠네”라는 식으로 답했다. 직원들의 보고가 반복되자 양 회장은 불법촬영물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직원의 10%를 해고하겠다고 했다. 불법촬영물에서 나오는 수익이 사라진다는 이유였다. 내부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어 보였다.

김호세아 사회복지사가 자신이 공익신고를 했던 용산장애인복지과 입간판 앞에 서 있다. 김호세아 복지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김호세아 사회복지사가 자신이 공익신고를 했던 용산장애인복지과 입간판 앞에 서 있다. 김호세아 복지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이들의 제보·신고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양 회장은 특수강간, 대학교수 감금 폭행, 직원 상습폭행, 동물보호법 위반,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1심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다. 배임·횡령, 조세포탈, 음란물 유포 등과 관련한 혐의는 아직 1심이 진행 중인데, 관련 선고가 나면 양 회장의 형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호세아 복지사의 신고로 성공회재단이 2013~2019년까지 회계기록에 없는 후원금 5021만원을 재단으로 송금한 사실이 밝혀졌다. 용산구는 성공회재단에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했다. 김호세아 복지사는 용산구에 성공회재단의 위탁운영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5월 복지관 운영주체가 바뀌었다.

나눔의집 이사진도 대대적으로 교체됐다. 민관합동조사단이 꾸려졌고, 조사결과 직원들의 제보 내용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났다. 88억원의 후원금 중 2억원만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했다는 사실은 큰 이슈가 됐다. 이 외에도 이전 사무국장과 소장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섯 분이 계시던 나눔의집에는 거동이 불편한 세 분만 계신다. 인지능력이 좋은 두 분은 동국대학교 병원에 입원 중이다. 할머니와 내부고발 직원들을 분리한 것이다. 또 새로운 운영진은 “할머니가 섬망증상이 있다. 할머니가 하는 말은 다 무효”라고 하면서도, 할머니 통장을 관리하겠다는 서명을 받다가 직원들과 갈등을 빚었다.

대기발령과 직장 내 괴롭힘 못 견뎌

위디스크·파일노리 상황도 비슷하다. 해당 사이트에는 여전히 불법촬영물이 유통된다. 양 회장은 지난해 100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사실상 회사를 운영하는 양 회장의 배우자는 100억원 가까운 현금을 ‘대여금’ 명목으로 인출했다. 양 회장은 감옥에 있지만, 그의 편에 섰던 직원들은 하나둘 출감하고 있다. A씨는 “양진호는 아직도 건재하다”고 말했다.

타격을 크게 받은 건 오히려 공익신고자다. A씨는 신분이 드러난 뒤 법무팀 이사에서 직위해제됐다. 이후 대기발령 상태로 있다가 지금은 해고자 신분이다. 직위해제 직후 권익위에 보호조치를 요청했고, 권익위의 행정지도가 있었으나 회사는 이행하지 않는다. 권익위의 이행강제금 부과에 회사는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벌써 2020년도 끝나가는데 언제 해결이 될지 막막하다.”

김호세아 복지사는 제 발로 회사를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다. 상사는 업무 관련 결재를 해주지 않았고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았다. 사직서를 제출하니 그제야 업무 결재를 해줬다. 공익신고를 안 했어도 이랬을까? 하지만 괴롭힘이 공익신고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건 어려웠다. 김호세아 복지사는 권익위에 보호신청을 했다가 중간에 포기했다.

김대월 학예실장은 걸린 고소·고발만 10건에 이른다. 여성 운영진과 어깨가 부딪힌 일은 ‘강제추행’, 업무를 위해 서류를 가져간 것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공익신고 직원들은 할머니를 만날 수 없다는 내용의 벽보를 뗀 것은 ‘재물손괴죄’가 됐다. “공익신고 이후 김대월 개인의 삶은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아니 꿈에서도 나눔의집이 나온다.”

권익위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셋 모두 권익위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먼저 신속성이다. 불이익과 관련해 신고자가 보호조치를 신청하면 > 화해 권고 > 권익위 결정 > 확정 > 이행강제금의 순서로 진행된다. 피신고자가 순순히 권익위 결정을 받아들인다 해도 몇 달이 걸린다. 중간에 행정소송이라도 하면 시간은 훨씬 길어진다.

마지막 단계인 강제이행금도 신고자를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 “몇백억원 규모 회사에 3000만원 강제금이 어떤 효력이 있을까요? 그사이에 신고자는 생활이 무너집니다. ”(A씨) “나눔의집에 강제금을 부과하면 어디서 돈이 나갈까요? 운영진 개인이 아니라 결국 후원금이에요.”(김대월 학예실장)

공익신고 보호 범위 넓어져야

A씨가 2018년 11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A씨가 2018년 11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권익위 조치를 두려워하는 기업은 없다. 심지어 정부 부처도 권익위 결정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권익위 결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조치를 행한 이는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 부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사건이 권익위 단계를 벗어나면 온전히 신고자 몫이 된다. 문제는 그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 형사정책연구원의 ‘공익신고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2015) 따르면 사건 발생부터 종료 시까지 걸린 시간에 대해 19명 중 7명이 각 12년, 10년, 8년, 7년, 5년 등 5년 이상 소요됐다고 답했다. 1년 미만이라고 답한 신고자는 1명이었다. A씨는 “당사자가 포기하면 다 끝이다. 하지만 이 기간을 견디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공익신고자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 햇수로 10년째. 법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신고 건수는 급증했다. 2011년 292건이던 건수는 지난해 4807건으로 15배 이상 증가했다. 법률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공익신고 범위도 애초 169개 법률에서 현재 284개로 확대됐다. 오는 11월 20일부터는 총 467개 법률로 확대된 개정안이 시행된다.

신고자들은 늘어나는 공익신고만큼 보호의 범위도 넓어지고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공익신고 기관 확대 ▲보상금과 포상금 확대 ▲신고자 보호조치 절차 간소화 ▲고소·고발과 관련한 보호 등이다. 이지문 이사장은 “공익신고 건수는 늘어나는 데 반해 권익위가 가진 힘이 너무 적다”며 “조사권이나 강제이행 등 실질적인 권한을 주고 국가인권위처럼 독립적인 기구로 나아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신고자 세 명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시간을 되돌리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셋 모두 “그래도 신고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저를 두고 회사에서 이사까지 했으면서 무슨 정의로운 척 제보를 하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부자가 제보를 안 하면 누가 제보를 하나? 내부고발이 공익에 도움이 된다면 지지해주고 보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대월 학예실장은 “나눔의집 사건은 연구자 양심으로는 허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파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은 버렸지만, 이전보다는 나은 나눔의집을 만드는 것까지는 해야겠다”고 말했다. 김호세아 복지사도 “윤리적인 선택을 하는 게 맞다. 다만 좀 더 계획적으로 해야 했다. 권익위에 신고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권익위 신고는 시작이더라”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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