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홈베이킹 해보세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갓 구운 빵은 최고야.”

아내가 막 오븐에서 꺼낸 식빵 한 귀퉁이를 뜯어먹으면서 말한다. 은근 어깨가 으쓱해진다. 아빠 빵집이 있으니 앞으로 동네 빵집에 갈 일은 없겠다고 한다. 식빵을 구울 동안 딸기잼을 만들었다. 식빵이 완성되자 딸기잼에 딸기 셰이크를 해서 내놓았다. 내 손으로 이걸 모두 만들었다니, 뿌듯했다. 그간 제과점에서 사온 빵들은 그저 혀를 위한 것이었다. 직접 만드는 일은 빵을 알고, 나를 알고, 가족과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sunkim

sunkim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빵은 내게 일상이다.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하면서 점심을 빵으로 때울 때가 많았고, 식빵은 거의 매일 집에 두고 먹는 편이다. ‘빵돌이’인 내가 홈베이킹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필연이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은 한 번쯤 직접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렇게 지난 9월 13일 인생 첫 식빵 만들기에 도전했다. 예전에 한 번 시도했던 치아바타에도 손댔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이스트를 넣고 발효하면 원래 반죽의 2~3배로 부푼다는데 내 반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구우면 달라질까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식빵도 치아바타도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아이들이 호기심에 몇조각 떼어먹은 뒤 첫 작품은 성공할 경우와의 비교를 위해 일주일 동안 ‘박제’됐다. 실력 대신 장비나 재료 탓을 하는 건 본능인 듯하다. “오븐이 구닥다리라 그래”라며 괜한 오븐 탓을 하다 강력분만 써야 하는데 괜히 호밀가루를 넣었나. 비건 식빵을 만든다며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서 그랬나 고민에 빠졌다.

3년 묵은 이스트를 쓴 결과

알고 보니 반죽이 부풀어 오르지 않은 진짜 이유는 이스트 때문이었다. 유통기한을 3년이나 넘긴 이스트는 쉰내만 풍길 뿐 이미 발효력을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일주일 후 새로 이스트를 사서 시도하니 대번에 차이가 났다. 볼에 넣은 반죽이 비닐랩을 뚫고 흘러넘칠 정도로 빵빵하게 부풀었다. 풍성하게 부푼 반죽을 보자 9부 능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다. 이젠 ‘벽돌 식빵’의 굴욕은 겪지 않을 것이다. 안이 익지 않을까 걱정돼 조금 오래 구웠더니 위가 조금 탔지만, 맛은 제대로 식빵 맛이었다.

여세를 몰아 추석 연휴 동안 식빵과 치아바타, 스콘, 피자빵 등 4종 세트에 도전했다. 식빵과 치아바타, 피자빵에 쓸 강력분과 스콘에 사용할 박력분, 버터와 호두, 건포도, 냉동 딸기, 바닐라 오일, 건조 크랜베리 등 재료를 온라인 마켓에서 주문했다. 마트도 둘러봤지만 우리 동네에선 강력분 찾기가 어려웠다. 밀가루체와 주방용 저울도 샀다. 주방용 저울은 용기의 무게만큼을 빼고 재료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다. 1g 단위로 변하는데 조금씩 부으면 측정을 제대로 못 하는 느낌이다.

식탁에 재료를 다 올려놓으니 비좁다. 치아바타는 발효에 걸리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 까다로웠다. 식빵은 재료 준비부터 완성까지 3시간이 걸렸고, 발효 과정이 없는 스콘은 더 짧아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식빵은 밀가루 포장지에 있는 제조법을 따랐지만 나름의 응용도 했다. 강력분 3컵(360g)을 볼에 쏟은 후 그 위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 1컵(200㏄)과 물(40㏄), 설탕과 드라이이스트를 넣어 섞어준다. 가루가 대충 보이지 않을 때쯤 소금을 조금씩 넣어가면서 반죽했다. 드라이이스트와 소금이 직접 만나면 발효가 잘 안 된다는 말에 나름 변화를 줬다.

빵 반죽은 특히 아이들이 재미있어한다. 반죽이 마치 찰흙 놀이와 같지 않을까. 아이가 반죽을 하면서 말한다. “그런데 이게 맛이 있을까.” 아무래도 두 번의 실패가 걱정을 안긴 것 같다. 식빵은 맛있었는데 무염버터가 아닌 가염버터를 써서인지 살짝 짠맛이 났다.

레시피대로 하면 실패 없어

스콘을 할 땐 밀가루를 체에 내렸다. 아이들이 “더 빨리해봐. 아빠 손이 없어지는 거 같아”라고 말한다. 박력분에 설탕, 소금, 버터 조각을 넣고 비벼서 섞어준다. 그 뒤 우유와 계란을 섞은 물을 부어 반죽한다. 반죽이 과하면 딱딱해지기 때문에 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 한다. 플레인 스콘과 호두·아몬드 스콘, 크랜베리 스콘 3가지 종류를 만들기로 했다. 호두의 떫은맛을 없애려고 뜨거운 물에 삶은 후 오븐에 넣어 살짝 구웠다. 맛이 더 고소해지는데 묻어 있는 가루가 떨어져 보기에도 깔끔하다.

식빵 반죽을 제대로 했다면 1에서 2처럼 부푼다. 반죽을 세 덩이로 나눠 모양을 만들고 있다.(3~5) 식빵틀에 넣고 틀 위로 1~2㎝ 올라오면(6) 오븐에 넣어 구우면 된다. 완성된 식빵과 스콘, 피자(7~9)

식빵 반죽을 제대로 했다면 1에서 2처럼 부푼다. 반죽을 세 덩이로 나눠 모양을 만들고 있다.(3~5) 식빵틀에 넣고 틀 위로 1~2㎝ 올라오면(6) 오븐에 넣어 구우면 된다. 완성된 식빵과 스콘, 피자(7~9)

피자 도우를 만드는 것은 더없이 간단했다. 강력분, 소금, 설탕, 이스트에 올리브유를 부어가면서 반죽한 후 20분 정도 쉬게 놓는다. 그 후 밀대로 밀어 모양을 만든 뒤 40분 정도 발효시킨다. 기다리는 동안에 피자에 올릴 토핑을 준비한다. 반죽 위에 파스타에 넣는 토마토 페이스트를 바르고, 얇게 저민 마늘과 양파, 감자, 올리브를 올린다. 삶은 고구마도 으깨서 발랐다. 마지막으로 치즈를 뿌리면 된다. 식빵을 사서 피자를 만든 적은 있지만, 빵까지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빵이 생각보다 잘 되고, 바삭한 맛이 난다. 햄이나 고기류 없이 채소 위주의 재료로 담백한 나만의 피자를 만들 수 있다.

치아바타는 그럭저럭 흉내 내기에 그쳤지만, 나머진 정말 잘 됐다. 빵집 제품보다 맛있다는 것이 가족의 (응원 섞인) 평가이다. 좋은 재료로 레시피만 잘 따르면, 실패하기가 오히려 어렵다. 단 개량은 필수다. 실력이 늘어도 눈대중으로 하긴 어려울 듯하다. 더 좋은 ‘장비’에 대한 욕심도 생긴다. 식빵을 예쁘게 자르려면 톱날 모양으로 날이 난 ‘빵칼’이 있어야 한다. 일반 주방용 칼로 하니 빵이 눌린다. 검색해보니 만원 안쪽인데 얼마나 자주 쓸까 싶어 일단은 참았다. 캔우드니 키친에이드이니 좋다는 홈 반죽기에도 눈길이 간다. 오븐은 또 어떤가. 더 좋은 오븐을 사면 더 맛있게, 더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시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처럼 무료함을 벗어날 소일거리로 홈베이킹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실제 미국에선 홈베이킹의 인기로 제빵 재료 업체가 공급이 빠듯할 정도이고, 일본에선 크리스마스 때보다 버터가 더 많이 팔린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버터 등 제빵 재료와 제빵 기기의 매출이 증가했다. 옥션의 경우 올해 1~9월 사이 주방용 저울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4%, 계량스푼은 18%, 베이킹팬은 42% 판매가 늘었다. 주요 재료인 밀가루는 46% 판매가 증가했다. 옥션 관계자는 “각종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레시피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크루아상이나 와플, 스콘같이 전문점에서 즐기던 메뉴도 직접 만들어 먹는 추세”라며 “홈베이킹을 위한 식재료는 물론, 초급자용부터 전문가용 도구들까지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빵 만들기는 치유이자 놀이

홈베이킹은 여러 장점이 있다. 안전한 먹거리를 내 손으로 만든다는 뿌듯함이 크다. 빵 반죽을 하면 복잡한 생각을 덜 수 있다. 달콤한 빵과 스콘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홈베이킹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다만 너무 자주 하면 식상할 수 있다. 반죽하면 주변에 붙던 아이들이 이젠 “아빠 또 빵 만들어” 하면서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 그래도 심심하면, 아이들과 추억을 쌓고 싶다면 홈베이킹을 강력히 권한다.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홈베이킹 초보를 위한 전문가 Q&A

요리는 과학이라는데 빵도 예외는 아니다. 많이 알면, 더 즐겁게 더 좋은 빵을 만들 수 있다. SPC그룹에서 운영하는 제과제빵 요리 학원인 ‘SPC컬리너리 아카데미’의 이민철 책임강사의 도움을 받아 궁금함을 풀어보았다.

-강력분으로 스콘을 만들거나 박력분으로 식빵을 만들면 어떻게 되나.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에 따라 그 용도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면, 강력분은 단백질이 가장 많고 박력분은 단백질이 적습니다. 그래서 강력분은 보통 빵을 만들 때 사용하고 박력분은 케이크나 과자를 만들 때 씁니다. 강력분으로 스콘을 만들면 부피감은 좋지만 다소 거칠고 질긴 식감이 되고, 박력분으로 식빵을 만들면 힘이 없고 부드럽지만, 팽창이 적어서 부피감이 작은 빵이 됩니다. 다목적용 맥분(밀가루)은 강력분과 박력분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보통 빵이나 케이크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발효 단계를 줄이면 어떤 일이 생기나.

“빵이 완성되는 과정 중 발효는 가장 중요한 단계에 해당합니다. 밀가루 반죽은 사람이 먹었을 때 쉽게 분해가 이뤄져야 소화가 잘 됩니다. 밀가루 분해는 수분에 의한 가수분해와 효모에 의한 발효 분해로 나뉘는데 이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빵은 내상이 조밀하지 않고 발효 풍미가 떨어지게 됩니다.”

-드라이이스트와 생이스트의 차이는 무엇인가.

막걸리로도 식빵을 만든다는데 가능할까.

“드라이이스트(건조된 효모)는 생이스트에서 수분을 뺀 이스트를 말합니다. 유통과 보관이 용이합니다. 생이스트는 주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이스트를 말하고, ‘효모’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효모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통밀이나 과일을 따뜻한 용기에 담아 두면, 자연에서 온 효모를 안착시키고 이를 일정 기간 배양할 수 있습니다. 막걸리로도 빵을 만들 수 있는데 살균을 거치지 않는 생막걸리를 사용하면 가능합니다. 우리 선조들도 전통시장에서 판매되는 술빵, 증편을 막걸리를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막걸리는 누룩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누룩도 곡류에서 얻은 효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 비건이나 채식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유와 버터 없이도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을까.

“우유와 버터 없이도 빵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빵을 만들 때 유제품 대신 식물성 오일(올리브오일, 코코넛오일 등)을 사용하면 됩니다. 물론 풍미 면에서 기존보다 다소 부족한 면이 나타날 수 있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식빵 반죽이 부풀어 오를 때 안에서 어떤 화학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금하다.

“식빵을 발효시키면 부풀어 오르는데 이는 이스트에 의한 생물학적인 반응입니다. 이스트가 빵 속에 있는 당류를 먹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발생시키는데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단백질 조직인 글루텐방에 갇히게 되어 전체적인 빵 조직을 팽창시킵니다.”

-식빵, 스콘, 치아바타, 피자빵을 만들었는데 치아바타는 좀 어려웠다.

“스콘, 피자빵, 식빵, 치아바타 순으로 어려워지는데 이는 발효시간과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발효 과정이 필요 없는 제품은 쉽게 만들 수 있고 설탕이 많이 들어 있는 식빵, 피자빵은 발효시간이 짧고 설탕이 들어있지 않은 치아바타는 발효시간이 상대적으로 깁니다. 이런 이유로 치아바타는 상대적으로 다른 제품에 비해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식빵 만들 때 강력분에 통밀가루를 넣었는데 쫄깃한 맛이 덜한 느낌이었다.

“통밀가루는 밀가루 껍질을 같이 갈아서 만든 밀가루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덜 부드럽고 껍질로 인해서 밀가루 글루텐이 쉽게 손상이 되어 가스를 가둘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빵의 부피감이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양학적으로는 더욱 가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홈베이킹을 할 때 정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빵, 쿠키나 케이크는 달콤하고 포만감을 주는 식품입니다. 이러한 만족감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특히 직접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만드는 제품은 더욱 애착이 생기고 작지만, 일정한 성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