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고리부터 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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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그 나라의 지방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나라나 수도는 웅장하고 거대합니다. 차이는 지방입니다. 지방 중에서도 농촌이 잘산다면 더 이상 다른 지표는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 나라는 부자나라가 분명합니다. 덴마크, 스웨덴, 미국, 독일이 딱 그러합니다.

[편집실에서]약한 고리부터 끊어집니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산다지만 지방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추석 연휴에 명절 대이동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도 아직은 어색하지 않은 게 그 때문입니다. 명절에 고향에 간 ‘지방 출신 수도권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곳은 참 안 변한다. 20~30년째 그대로 인 고향은 반갑기도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걱정도 동시에 듭니다. 인구의 절반, 국토의 3분 2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는 ‘미니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체의 능력은 가장 약한 부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입니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튼튼한 고리가 아니라 가장 약한 고리에서 결정됩니다. 방죽은 가장 약한 부분에서 터집니다. 복서들은 상대의 가장 약한 부분에 펀치를 먹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위기는 가장 약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지방은 우리나라의 약한 고리가 되고 있습니다. 지방발전은 지방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수도권과 지방 간 과도한 격차가 국가공동체를 흔든 사례가 있습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입니다. 런던은 갈수록 부자가 되는데 지방은 갈수록 가난해진다는 불만은 유럽연합 탈퇴라는 반작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방의 낙담이 커지면 우리라고 지방의 반란이 없으리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은 이미 많은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서울의 집값 상승, 의사 파업의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수도권 집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방에서 투자할 곳을 잃은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집을 사고, 의사들이 열악한 지방 근무를 기피하면서 우리 사회는 쓰지 않아도 될 사회적 비용을 쓰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올 추석은 고향에 갈 수 없는 ‘랜선 명절’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호 주간경향은 고향에 갔더라면 한 번씩 생각해 봤을 문제를 담담히 다뤄봤습니다. 대학 통폐합, 공공기관 이전, 지방 통합, 지방언론, 지방정치 등 들여다봐야 할 곳이 많더군요. 모든 문제를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가급적 많은 영역에서 들여다보려 노력했습니다.

수도권의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압구정요” “분당요”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이면 수도권 출신들로 수도권이 채워지겠지요. 그때는 이런 문제 제기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 문제를 바로 잡을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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