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작은 학교라 등교수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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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39명뿐인 경기 화성 마산초의 코로나 시대를 나는 법

교실 안에 새콤한 레몬향이 퍼졌다. 올드팝 ‘레몬트리’가 흘러나왔다. 칠판에는 ‘코로나 극복 프로젝트’라고 쓰여 있었다.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후배들과 나눠 먹는 것이 목표다. 레몬에 들어 있는 비타민C가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주에 1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남은 레몬을 마저 쓰기로 했다. 학생들은 레몬착즙기 두 대를 이용해 레몬즙을 짰다. 관건은 사이다와 레몬즙을 섞는 비율이다.

“우린 작은 학교라 등교수업해요”

“지난번에 8 대 2 너무 시큼하지 않았어? 9 대 1로 할까?”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선생님 또 수학한다.” 아이들이 레몬즙 비율을 따지는 교사를 향해 앓는 소리를 낸다. 지난 9월 21일 경기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산초 6학년의 1교시 실과시간 풍경이다. 이날은 수도권 학교들이 전면 원격수업을 끝내고 등교를 시작한 날이다. 하지만 마산초의 학생들은 이미 2학기 시작 때부터 등교했다.

마산초는 전교생이 39명뿐인 작은 학교다. 6학년은 10명, 바로 옆 교실에 있는 5학년은 3명 등 학년마다 학생수는 제각각이다. 학교 주변에는 포도밭이 가득하다. 전교생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 농산어촌 학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 등교할 수 있었다. 학생수가 적어 물리적 거리 두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학교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작은 학교라서 할 수 있는 것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 시끌벅적한 건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하나둘 6학년 교실을 찾았다. “자자, 1명씩 떨어져서 받아갑시다. 거리 두기 잊지 말고.” 1명씩 멀찍이 떨어져 컵에 레모네이드를 받아갔다. 교실 앞쪽에는 견과류를 1봉지씩 나눠주는 코너도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후배들에게 와플을 구워줬다고 한다. 시골학교이다 보니 근처 매점도 없고 아침식사를 하지 못해 배고파하는 아이들이 많아 ‘간식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지금은 음식을 조리해 먹기 어렵다 보니 음료라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팬데믹 시대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직접 바느질해 마스크(실과)를 만들었고, 환경보호 캠페인(사회)도 진행해볼 계획이다. 거리 두기 실천을 미술로 표현하기(미술), 친환경 에너지 물품 만들기(과학), 집콕 운동하기(체육) 등도 예정돼 있다.

3교시 국어시간.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본 소감문을 쓰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재미있었던 점, 힘들었던 점, 보완하면 좋을 점 등 세 가지를 써내려갔다. “4번째는 수학문제 낸다!” 담임교사의 말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레몬 80개를 짰어. 1개당 즙이 10ml씩 나온다고 하고, 사이다 1.5ℓ짜리 12병을 썼죠. 전교생 40명이 먹었다고 하면 한 사람당 얼마를 먹었을까?” 프로젝트성 수업의 장점은 교과를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 지식과 생활이 아우러진다.

마산초 6학년 학생들. /노도현기자

마산초 6학년 학생들. /노도현기자

지난봄 마산초도 온라인수업을 진행했다. 대다수 학교에서 녹화된 동영상, 유튜브 링크를 통해 수업할 때 쌍방향 수업을 했다. 일단 학생수가 적고, 2년간 디지털교과서 선도학교로 지정돼 전교생이 태블릿PC를 1대씩 갖고 있던 게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아무리 쌍방향 수업이라도 대면 수업에 비할 게 못 됐다. 학교라는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깨달았다.

8월은 포도농사를 짓는 학부모 대다수가 가장 바쁜 시기다. 지난 8월 수도권 방역단계가 2.5단계로 높아지면서 온라인수업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등교수업을 결정했다.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모든 구성원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전제로 코로나19 이전과 차이 없는 학사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마산초 복도에 붙어 있는 ‘코로나 극복 프로젝트’ 안내문 / 노도현 기자

마산초 복도에 붙어 있는 ‘코로나 극복 프로젝트’ 안내문 / 노도현 기자

현재 6학년인 막내까지 4명의 자녀를 모두 마산초에 보냈다는 학부모 정선주씨는 말한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적어서 안타까웠는데 서로 돈독하게 지내는 게 보기 좋고, 다른 학교보다 떨어진다는 점은 못 느껴요. 농사짓고 시부모 모시고 살다 보니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줘서 감사하죠. 아이들이 원격수업 받으면서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을 거예요.” 학부모 임은주씨는 “선생님들의 중요성도 알았다”고 했다. “아무리 엄마가 챙겨준다고 해도 선생님이 한마디 하는 것과는 무게가 다르더라고요. 아이들이 다른 학교 친구들한테도 ‘우리는 학교 간다’고 자랑했다고 해요.”

작은 학교는 다양한 교육실험을 할 수 있는 무대다. 학습격차를 줄이기 위해 각종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해마다 학생수가 줄고 있다. 종종 ‘통폐합’ 얘기가 돈다. 이경용 교장은 “학교가 없다면 귀촌하려던 사람도 오지 않는다. 학교가 지역사회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는 유지가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이 많은 학교, 못 잊을 학교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등교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하로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학급당 학생수는 초등 22.2명, 중등 25.1명, 고등 24.5명이다. 이 교장은 “한 반이 30명 내외인 곳에선 도저히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게 가장 시급한 게 아닐까 한다”라고 했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과제를 내고 채점하는 게 교육은 아니다. 코로나19 위기는 학교에서의 전인적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6학년 담임 김진환 교사는 “미래교육은 작은 학교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학생수는 적지만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학생들은 전남 여수·순천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교사는 차량과 숙박시설만 예약했다. 학생들이 세부일정을 짰다. 그들은 드라마 세트장에 가고 레일바이크를 타는 추억을 스스로 만들었다. 김 교사는 “한 반에 30명인 학급을 담당할 땐 아이들을 일일이 봐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이곳에선 아이들 이름을 많이 불러줄 수 있고, 일일이 피드백해줄 수 있고, 변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어 교사로서도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시대에 학생수 감축과 돌봄문제, 교육과정의 재구조화 등 학교가 논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했다.

졸업을 몇달 앞둔 6학년들에게 작은 학교는 어떻게 남을까. 신가영양은 “정이 제일 많았던 학교”로 기억할 것이라 했다. 병설유치원까지 포함해 8~9년을 이곳에서 보낸 조환희양은 “평생 못 잊을 학교”라고 했다. 김유성군은 “우리가 키운 상추를 뜯어 급식실에 갖다주면 반찬이 됐다. ‘우리 반찬은 우리가 만든다’는 점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웃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위기라지만, 작은 학교 아이들은 배움과 가까이 있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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