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법안들, 지금 어떻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추미애 논란 등 각종 정쟁에 밀려… 초선 의원들 “꼭 통과시키겠다” 의욕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북구갑)의 1호 법안은 ‘경비노동자 보호법(공동주택관리법 일부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9월 11일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경비노동자가 경비 외 다른 업무도 할 수 있도록 기존의 업무 범위를 현실화하고, 경비노동자에게 부당한 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폭언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유발 행위로부터 경비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9월 16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반도체 노동자 복장을 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9월 16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반도체 노동자 복장을 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법안은 지난 8월 5일 발의됐다. 다른 1호 법안과 달리 국회 개원 이후 시간이 꽤 흐른 후에 발의된 것이다. 9월 9일 국토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발의 법안의 핵심 내용이 대안으로 반영된 후, 상임위를 통과했다.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만을 앞두고 있다. 천 의원은 “4월 총선에서 당선된 후 바로 이 법안을 준비했다”면서 “이해 관계자들의 모임인 경비노동자 단체, 입주자대표연합회, 주택관리사협회와 숙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경비노동자 보호법’ ‘구하라법’ 주목

지난 5월 천 의원의 지역구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천 의원은 “지역주민에게서 ‘이 경비원이 좋은 분이었는데 안타깝다’라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면서 “경비원 형님이 저의 손을 잡고 동생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초선인 천 의원이 ‘경비노동자 보호법’을 1호 법안으로 정한 이유다.

1호 법안이라고 해서 꽃길만 놓인 것이 아니다. 본회의 통과까지 험난한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천 의원은 “지난 5월 경비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 관련 당사자들이 문제 해결에 나섰기 때문에 관련 부처인 국토부나 노동부에서도 법안 개정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시의성과 이슈 제기, 공감대 형성이 법안의 상임위 통과에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천 의원이 국토위 법안소위 위원으로 직접 참여해 법안 개정에 나선 것도 1호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는 데 한몫했다. 천 의원은 “법안 발의는 늦었지만 공감대 형성과 상임위 통과는 빨리 이뤄질 수 있었다”면서 “이번 정기 국회에서 본회의에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호 법안 중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또 하나의 법안은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구하라법(민법 일부 개정안)’이다. 경비원 폭행 사건처럼 연예인 고(故) 구하라의 유산 상속 문제도 올해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구하라의 사망 후 오래전 헤어졌던 친모가 나타나 재산 상속을 요구한 일이 발생했다. ‘구하라법’은 상속 시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당초 20대 국회에서 서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의 법안제1소위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서 의원은 “태완이법(살인사건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개정 때에도 법조인 출신 일부 의원들이 법적인 안정성을 내세워 반대했지만 결국 여론에 못 이겨 통과됐다”면서 “이번 국회에서는 1호 법안을 꼭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고와 세월호 사고 이후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들의 상속 여부가 논란이 됐다. 이런 논란을 지켜본 서 의원은 지난해 11월 민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구하라가 지난해 11월 사망했고, 이후 상속 논란이 일었다. 서 의원은 “태완이법을 만들 때처럼 가슴이 아팠다”면서 “구하라 측 변호사가 개정안 발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구하라 유족과 연결이 됐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1호 법안으로 이번에 꼭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구하라 유족에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1호 법안’은 의원들에게 있어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이 용어가 부분적으로 사용됐지만, 21대 국회에서는 특히 많은 초선 의원들이 1호 법안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 법안만큼은 꼭 통과시키겠다는 다짐과 약속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서영교 의원은 “의원들이 1호 법안으로 정했을 때는 의원 개인적으로는 입법에 대한 절실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의원들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1호 법안의 상징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호 법안 가운데 국회 개혁을 내세운 법안이 눈에 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4연임 금지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했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불출석 일시에 비례해 세비를 감액하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여야 의원들이 9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여야 의원들이 9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지역 현안을 1호 법안으로 삼은 지역구 의원들도 있다.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목포대 의과대학 설립 관련 법안을 1호 법안으로 정했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인천고등법원 설치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장철민 의원은 ‘대전의료원 등 지방의료원 감염병 예방 기능 강화 법안’과 ‘혁신도시 지역 공헌 확대 법안’을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했다. 지역에서 이슈가 된 역사 관련 법안이 1호 법안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양향자 민주당 의원은 역사왜곡금지법을, 이개호 의원은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했다.

민주당 1호 ‘일하는 국회법’도 뒷전

21대 국회에서는 무엇보다 각 정당의 당론 1호 법안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여당인 민주당이 ‘일하는 국회법’을 1호 법안으로 삼으면서, 각 정당의 1호 법안이 덩달아 부각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당론 1호 법안으로 ‘코로나19 위기탈출 민생지원 패키지법’을, 정의당에서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열린민주당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가장 먼저 본회의를 통과한 정당의 1호 법안은 일명 ‘가족돌봄휴가 연장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다. 국민의힘 당론 1호 법안인 ‘코로나19 위기탈출 민생지원 패키지법’ 중 하나였다. 기존 10일이었던 가족돌봄휴가를 연간 10일 연장하고, 한부모 가족 등 취약계층은 최대 15일까지 연장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과 장철민 민주당 의원 등 8명의 의원이 각각 발의한 8개 법안이 대안 반영으로 폐기됐고, 환경노동위원장 발의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른 정당의 1호 법안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각 당에서 1호 법안으로 정했지만 보수 야당에서 신중을 기하거나 반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이다. ‘일하는 국회법’은 지난 7월 김태년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해 국회 운영위에 제출됐지만 아직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강은미 원내대표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발의했지만 대기업의 반대 등으로 통과가 무산됐다. 정의당은 9월 16일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이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하는 등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9월 정기 국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특혜성 휴가 연장 의혹에 휘말리면서 각 당의 당론 1호 법안 역시 다른 정책법안처럼 표류하고 있다. 특히 소수정당의 경우 야심차게 내놓은 당론 1호 법안은 걸림돌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당론 1호 법안은 각 당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정당 차원에서 이 법안만큼은 21대 국회에서 꼭 통과시키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