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원으로 떠나는 ‘가상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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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해외는 물론 국내여행조차 쉽게 떠나지 못할 정도로 발이 묶였다. 하지만 인류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최근 주목받는 대안 중 하나는 ‘가상여행’이다. 지난 7월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는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항공권을 들고 몰려들었다. 실제로 발권도 하고 여객기에 탑승까지 했다. 여행객들은 공항에서 이륙한 여객기가 대만 동부 해안을 지나 남중국해 상공을 거쳐 다시 출발한 공항으로 돌아오기까지 기내에서 여행 기분을 만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서 비행기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보라보라섬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모습을 그래픽으로 구현한 장면 /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서 비행기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보라보라섬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모습을 그래픽으로 구현한 장면 / 마이크로소프트

비슷한 여행상품이 일본에서도 8월부터 인기를 끌었다. 전일본공수(ANA) 항공사는 도쿄 나리타공항을 출발해 미국 하와이로 향하는 항공편을 운항했다. 하지만 실제 운항경로는 역시 나리타발 나리타행 약 100㎞ 구간에 불과하다. 여름휴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여행객들의 복장도, 해당 구간에 투입되는 여객기 기종도 모두 실제 여행처럼 보이지만 비행은 1시간 30분 남짓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데서 끝난다. 일견 허무해 보이는 이 여행상품에도 해외여행에 목마른 코로나19 시대 여행객들이 몰려 발권 경쟁률은 최고 150 대 1을 넘어서기도 했다.

코로나 시대 여행 욕구 대리 충족

극히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선언이 나오긴 해도 여전히 다른 나라로 떠나는 자유로운 여행이 언제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은 이런 욕구도 대신 채워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을 이용해 세계 곳곳의 명소와 유명 관광지 상공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극도로 사실적인 그래픽에 실시간으로 현지 날씨를 반영한 모습까지 비행게임으로 들어가 조종석에 앉으면 실제 여행을 떠나도 직접 즐기기는 어려웠던 관광명소의 상공을 떠다니며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8월 발매된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2020’은 기존 항공 마니아층을 넘어 간편하게 세계 전역을 둘러보고 싶어하는 일반 이용자들로부터도 관심을 모으는 대표적인 게임이다. 원래는 게임마니아 중에서도 특히 실제 비행기 조종에 가까운 경험에 열광하는 ‘항공덕후’들에게서 인기를 끌던 게임 시리즈였으나 14년 만에 발매된 이번 신작이 실제 풍경만큼이나 세밀하고 정교한 그래픽을 선보이며 가상으로나마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수요를 흡수한 것이다. 프로펠러가 달린 경비행기부터 제트엔진이 달린 대형 여객기까지 기종을 골라 콕핏(조종석)에 앉으면 공항 활주로를 달려 이륙한 뒤 마음먹은 곳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비록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풍경이라도 현실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상공의 탁 트인 시각이 잠시나마 ‘집콕’생활 속 코로나 블루를 잊게 해준다.

더 많은 종류의 기종과 출발 공항이 필요하지 않은 일반 이용자라면 국내 기준 6만원만 내면 스탠다드 에디션을 구매할 수 있다. 더 비싼 에디션은 이용할 수 있는 기종과 공항수가 더 많아진다. 대신 실제에 가까운 풍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게임 설정에서 해상도를 ‘높음’ 또는 ‘매우 높음’으로 지정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그래픽카드나 CPU, RAM 등이 일정 사양 이상이면 더 원활한 감상이 가능하다. 또 조종간 역할을 할 별도의 조이스틱이 없다면 마우스로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약간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 ‘항덕(항공기 분야에 큰 흥미와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더 눈여겨보는 것은 세계 각지의 유명 공항이나 기종별 특성을 얼마나 더 사실적으로 구현했나 하는 것인데, 처음 입문한 이용자라면 난이도 같은 다른 설정은 작동이 편한 수준으로 최대한 낮추고 그래픽 수준만 높여놔도 된다.” 항덕들의 최종단계인 실제 비행면장 취득을 노리고 있는 동호인 방영준씨(41)의 설명이다. 비행시뮬레이션 게임 자체가 방씨 같은 동호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려는 데서 출발했고,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여러 종류의 게임이 출시되어왔으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신작은 특히 그래픽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호주의 에어즈록,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 등을 공중에서 돌아보면 사진으로는 느끼기 힘든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또 실시간 기상정보를 반영한 덕에 최근 한반도로 연달아 접근한 태풍의 눈 속에서 가상 비행을 했던 이용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인천시 ‘명소 가상여행’ 콘텐츠 준비

게임을 이용한 가상여행은 비행시뮬레이션에만 그치지 않는다. 반대로 현실 같은 그래픽 대신 이용자가 게임 공간을 탐험하고 조작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 여행 욕구를 대리 충족시켜주는 경우도 있다. 인천광역시에서는 레고와 비슷한 다양한 블록 모양의 도구로 가상세계를 건설하는 게임인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인천의 명소를 가상여행할 수 있게 하는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온라인으로 참여한 시민이 역사 속 의미가 깊은 공간이나 현재의 랜드마크를 건설하고 추억 여행을 즐기도록 하는 내용이다.

백범 김구가 두 번이나 투옥됐던 인천 중구 옛 도심의 인천감리서를 게임상에 만들어 백범이 탈출을 시도하는 게임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백범은 청년 시절 명성황후 시해에 분개해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1896년 인천감리서에서 처음 복역하다 2년 뒤 탈옥한 바 있다. 이후 신민회 사건으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가 1914년 인천감리서로 이감돼 인천항 건설 노역에 동원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게임에선 백범이 인천감리서에서 답동성당과 해광사를 거쳐 나루터까지 일제 헌병들의 추적을 피해 달아난 뒤 배를 타고 탈출한 실제 탈옥한 경로를 재현한다.

그 외에도 인천국제공항, 강화 고인돌, 월미도, 송도국제도시 등 인천 시내 명소들을 가상 건설하는 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9월 26일 공개되는 이 콘텐츠를 통해 외출이 쉽지 않은 이용자들도 현실을 닮은 가상세계를 만들고 여행하는 ‘랜선여행’을 할 수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코로나19 시대에 적합한 가상여행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인천을 조사하면서 친숙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천시에서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했다면 한국관광공사는 전국의 관광명소들을 마인크래프트 외에도 ‘심즈’나 ‘게리모드’ 같은 더 많은 종류의 가상현실 게임을 동원해 가상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콘텐츠를 공모해 공개했다. 서울 한강의 세빛섬을 비롯해 N서울타워, 제주 섭지코지, 경북 경주 동궁과 월지, 경기 수원 팔달문 등 건축미가 돋보이는 국내 명소들을 구현했다. 게임을 활용한 가상여행뿐 아니라 드론을 활용한 여행지 상공 영상과 360도 가상현실(VR) 여행 같은 콘텐츠도 점차 늘리고 있다. 김경수 한국관광공사 국내디지털마케팅팀장은 “랜선여행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많은 이용자가 잠시나마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게임 형식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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