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해 여름, 7번 국도를 따라 달렸습니다. 부산에서 시작한 여행은 포항을 찍고 강릉에서 끝났습니다. 돌멍게를 안주 삼아 지겹도록 바다를 본 기억이 납니다. 재작년 여름도 떠올려봅니다. 록페스티벌에서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방방 뛰었습니다. 땀에 젖어 맥주를 몇잔이나 들이켰는지 모릅니다. 코로나19가 뒤덮은 요즘은 상상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 지 8개월이 넘었습니다. 올해 초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차례 겪은 대유행의 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주간지는 무얼 다룰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구·경북에서 대유행이 수그러들 때 지금이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한 적기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이 코로나19 대응 모범국으로 떠오른 것에 자만하지 말고 미비한 점을 하나하나 점검해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1차 대유행 이후 우리 사회의 대응 능력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크고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코로나19 중환자가 급증하면서 병상 확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전국의 병상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제안은 좀처럼 통하지 않았습니다. 메르스 사태를 겪고 나서도 나오지 않던 장애인 감염병 매뉴얼이 나왔지만, 당사자들은 “문서만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본 것은, 지금이라도 더 큰 유행을 이겨내기 위해 시스템을 바로잡자는 의미였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대응을 해야 희생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의료진과 정부 사이 불신이 깊습니다. 멀쩡한데 확진 당했다는 둥, 불순분자들의 바이러스 테러라는 둥 ‘가짜뉴스 감염’은 또 어떤가요. 방역에 걸림돌일 뿐입니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커다란 파도는 올겨울 찾아올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날이 추워지면 실내활동이 늘어나는 데다 독감과 결합하면 더 큰 집단감염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일시적 재난에 대응하는 수준이 아닌 바이러스와 함께 가는 일상과 방역의 균형을 이뤄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연말이면 ‘올해의 OO’ 기획을 내보냅니다. 올해는 뭐가 됐든 ‘코로나19’가 떼놓은 당상인 듯합니다. 연말에는 좀 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스크 해방, 자유로운 여행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음모론을 펼치며 방역지침을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거나, 병상이 모자라 애를 먹는다는 지금의 뉴스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