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법에도 눈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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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 라 과르디아 판사 이야기가 오르내린다.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급증했던 1935년 겨울, 그는 즉결사건을 다루는 뉴욕 야간법정의 1일 판사로 일하고 있었다. 굶주리는 딸과 손자에게 줄 빵을 훔친 할머니가 법정에 섰다. 판사는 아무리 딱해도 절도죄는 나쁘다며 10달러 벌금형을 선고했다. 선처를 기대했던 방청석이 술렁거리자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이 할머니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판결을 맡은 저에게도 10달러 벌금을 선고합니다. 여러분도 가능하다면 50센트씩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벌금 10달러를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쥐고 법정을 떠나는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법정은 욕망과 욕심이 부딪치고 싸우는 경기장이지만, 눈물과 한숨이 끊이지 않는 통속드라마이기도 하다. 형사법정에는 죄를 뉘우치는 피고인의 눈물이 있고, 하루빨리 석방되길 바라는 가족의 한숨도 있다. 다른 쪽에는 그 죄로 상처받은 피해자의 피눈물이 있고, 판사 딸이 피해자라면 그런 형을 내렸겠느냐는 가족의 탄식도 있다. 민사법정에서 남을 믿었거나 법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이 한숨을 쉬고, 행정법정에서 과로로 쓰러졌는데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가 눈물을 흘린다. 이혼법정에서 이제 홀로 살아야 하는 중년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소년법정에는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애간장이 녹는 엄마의 눈물로 가득하다. 오늘도 법정에 온 사람들은 “법에도 눈물이 있지 않느냐”고 하소연하며, 판사가 들어주고 공감하며 닦아주길 기대한다.

눈물·한숨이 끊이지 않는 법정 드라마

1956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육군 특무대장 김창룡 소장이 출근길에 피살됐다.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군의 장래가 없다고 생각해 일을 벌인 허태영 대령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당시 김홍섭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교도소로 찾아갔다. “자네의 순수한 마음은 이해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천주님께 용서를 빌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실 것이네. 자네가 잘못을 인정한 순간부터 그분이 용서한 것이나 다름없네.”

여러 번 만나면서 허태영은 김홍섭을 대부로 맞아 영세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사형이 집행되는 마지막 순간 허태영은 김홍섭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 후 김홍섭은 사형수들을 위해 기도하고 면회를 다니고 시신까지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김홍섭을 ‘사도법관’, ‘사형수의 아버지’로 불렀다.

20여년간 지방 국세청에 근무하는 40대 남성이 밤에 22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새로 편성된 팀의 팀장이 되었지만, 업무는 과중하고 팀원이 보충되지 않아서 늘 초과근무를 했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승진에서 제외되자, 그는 처와 자녀를 남긴 채 투신자살했다. 경찰 조사와 국세청 조사에 따라 공무원연금공단은 망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과로나 스트레스에 빠진 것은 아니라며 유족보상금을 주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장을 맡은 필자는 정신과 교수에게 우리 사법 사상 처음으로 ‘심리적 부검’을 의뢰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찰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소속기관의 조사만으로는 제대로 밝히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리적 부검은 전문의가 망인의 가족과 직장 동료들을 면접하고 주변 상황을 심층적으로 조사해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는 방법이다. 3개월 동안 심층적으로 조사한 전문의가 감정서를 제출했고, 재판부는 법정에서 그 교수의 말을 직접 들은 후 업무와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30대 의사가 중매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여자 아버지에게 많은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장인은 현금이 없으니 나중에 땅을 팔아 10억원쯤 주겠다는 각서에 서명하고 건네주었다. 의사 사위는 첫날 밤부터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고, 수년간 따로 살았으며 다른 여자를 만났다. 이혼소송을 제기했으나 파탄에 책임이 있다고 패소하자, 이번에는 사망한 장인의 재산을 상속받은 처에게 ‘지참금 청구소송’을 냈다. 필자는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원고의 행위로 피고는 대등한 인격체로 인정받고, 한 남자의 여자로서 사랑받고자 하는 기대와 자존심을 잃게 되면서 심한 좌절감과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윤리와 상식에 비추어 남편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지 않은 원고는 처가로부터 지참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된 후에도 지참금을 달라는 것은 부부로 만나고 헤어지는 데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이 법원은 염치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법 사상 최초의 ‘심리적 부검’

거동이 불편한 80대 할머니가 ‘방문목욕’ 도움을 받았다. 방문목욕은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로, 요양보호사가 직접 집을 방문해 목욕을 도와준다. 요양보호사 2명이 원칙이지만, 수급자가 성별이 같은 1명에게만 받길 원하면 그것도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할머니가 여성에게만 도움받겠다는 말을 명확히 안 했으므로 급여비용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사람이 활동하는 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수치심을 느끼고, 성적인 신체기관을 숨기려는 욕구에서도 수치심이 일어난다. 사람은 수치심을 밖으로 표현하기를 꺼리는 본성이 있다. 몸 씻기 과정에서 가누기 힘든 할머니가 남성 요양보호자가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감정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낀 사람이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수치심을 안겨준다. 이것은 개인에게 ‘나는 약하고 결함을 지닌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강요하고 고백하게 하는 것이어서 수치심의 본질에 반한다. 법 제도 운용과 관련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판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상상하고 살펴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가수 양희은은 “슬픔이 슬픔을, 눈물이 눈물을, 아픔이 아픔을 안아줄 수 있죠”라고 노래했다. <심판>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법학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판사는 왜 가슴이 따뜻하지 못할까? 로마의 어느 시인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거든 네가 먼저 울어라”라고 읊었다. 이제 판사들은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법정에서 만날 사람들을 위해 법정 밖으로 세상 속으로 뛰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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