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식의 눈

조국대전 1년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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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조국사태가 벌어지고 새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들에게는 정유라처럼 말을 사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적법하게 사다리를 걷어찰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데’라고 으스대지 않아도 누군가는 로열패밀리를 알아본다. 어떤 교수는 높은 양반의 딸을 유난히 높게 평가해 다른 학생들은 한 번씩 받은 장학금을 6번 연속 지급했고, 어떤 교수는 17세 학생을 유난히 높게 평가해 이례적으로 논문 제1저자로 등재했다. 이 과정은 모두 적법하게 진행됐다.

[정주식의 눈]조국대전 1년이 남긴 것

생생하게 드러난 특권층의 삶에 청년들은 박탈감을 호소했다. 불공정한 게임의 규칙에 분노했고 정의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분노가 세상을 좀 더 정의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누구도 정의와 평등에 관해 묻지 않는다. 대신 너는 어느 편이냐 묻는다. 조국사태 1년이 남긴 것은 부족화된 정치와 앙심에 찬 지식인들 그리고 미래세대의 좌절이다.

조국사태 초반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그게 뭐가 문제야?’라며 의아해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그 정도는 넘어가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한 편에는 새 시대의 법무부 장관에게 그런 구시대적 인물을 앉혀선 안 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첫째를 과거세력, 둘째를 현재세력, 셋째를 미래세력이라고 본다.

사실은 화가 나지 않았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보수 야당은 조국 일가가 드러낸 사회구조적 모순에 눈감는 대신 그들을 파렴치범으로 규정하는 정치공세에 집중했다. 반면 인사청문회 당시 민주당 측 청문위원들은 청년들의 박탈감을 이해해야 한다며 염치를 보였고, 조국 본인도 그러겠다고 말했다. 과거세대는 단절됐고, 현재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에는 공존의 가능성이 보였다.

검찰의 돌발적인 개입은 이 구도를 다시 납작하게 만들었다.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조국을 둘러싸고 벌어지던 모든 토론은 불법이냐 아니냐의 법리 공방에 빨려 들어갔다. 조국의 지지자들은 교조화됐고, 반대자들은 앙심에 찼다. 세상에는 조국과 그의 임명자만 도려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과 조국을 지키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둘의 공통점은 조국을 특별한 지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은 조국을 순교자의 지위에 올려놓았고, 반대자들은 조국 일가를 특별히 파렴치한 범죄집단으로 몰아세웠다. 그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받는 사이 구조적 불평등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소거됐다.

겉으로 드러난 고름 하나를 짜내느냐 마느냐를 놓고 전쟁이 벌어진 사이 병의 근원에 대한 고민은 사라졌다. 극복해야 할 것은 조국이라는 개인이 아닌 그 일가의 삶을 통해 드러난 사회구조적 모순이었다는 사실이 잊힌 것이다. 온 사회를 뒤흔든 ‘조국대전’이 남긴 것이 고작 조국이라는 이름의 껍데기뿐이라는 사실은 참혹하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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