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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의 코로나, 코앞으로 다가온 2차 대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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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오답노트가 쓰였다. 올해 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구·경북은 의료붕괴 문턱까지 갔다 왔다. 병상이 남아돌았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한 이들의 소식이 들렸다.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을 아울러 병상과 인력을 동원하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당시의 상황을 복습하는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가 열렸다. 전문가들은 2차 대유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태원발 감염 확산 등 크고 작은 고비가 이어졌지만 일일 확진자 20~50명 선으로 방어했다.

8월 23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8월 23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2차 대유행 경고는 과장이 아니었다. 바이러스는 투명성·개방성에 기반을 둬 세계의 모범으로 손꼽힌 ‘K방역’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8월 14일(103명)부터 신규 확진자가 계속 세 자릿수를 기록했고, 8월 27일에는 441명이 나왔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400명대로 늘어난 건 3월 7일(483명) 이후 5개월 만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1차 대유행 이후 코로나19 대응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시급한 ‘컨트롤타워’

코로나19 대응의 최종 목표는 사망자와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병상 확보가 시급하다. 대구·경북의 초기 확진자 급증은 20대가 절반을 차지했다. 반면 최근 감염자는 40%가 60세 이상 고령자다. 중환자 진료가 얼마나 제대로 되느냐에 따라 사망률이 결정되는데 정작 병상 확보에도 애를 먹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집계한 ‘중증환자 치료병상’ 수를 보면, 서울지역은 8월 25일 당장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병상이 50개였으나 이튿날 11개로 39개나 줄었다. 중환자가 급격히 늘어서가 아니라 집계를 잘못한 탓이다. 윤태호 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8월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부 가용병상과 실제 보고된 병상 간의 차이를 현장점검을 통해 확인했다”며 “일부 병원에서 ‘즉시 가용’ 병상을 실제보다 많이 보고한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정부는 다음 달 중순까지 중환자용 병상 76개를 더 만들겠다고 밝혔다. 수도권 내 전담병원 재지정 등을 통해 총 781병상을 추가로 확보할 방침이다. 방역 당국은 앞서 코로나19 환자가 감소하자 일부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정 해제하며 병상을 줄여왔다. 1주일 전 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돼 병상을 원상 복구했더니 또다시 코로나19 전담 병상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줄곧 중환자 병상 부족 문제를 제기해왔다. 의사·간호사 인력까지 감안해 당장 입원 가능한 병상만 집계하는 학회와 달리 중수본은 실제 진료현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환자의학회는 8월 25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대구·경북지역의 유사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난 6개월간 2차 대유행을 예측하면서도 코로나19 대응의 성패를 가름하는 진료체계 구축은 답보 상태에 있다”며 “중환자 병상의 숫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중환자 진료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8월 21일 국립중앙의료원에 ‘코로나19 공동대응상황실’을 본격 가동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가 연합했다. 중수본은 공동대응상황실에 수도권 환자의 중증도 분류와 병상 배정, 병원을 옮기는 전원 조정 권한을 부여했다. 공동대응상황실은 중환자 병상을 사용하는 환자 중 중환자가 아닌 이들의 전원을 유도해 병상을 확보하고 있다. 1차 대유행 때처럼 경증 환자들이 먼저 입원해 있는 바람에 중환자 병상이 모자라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호흡곤란과 의식변화 두 가지를 중요한 입원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2차 대유행이 수도권에서만 터지리라는 법은 없다. 전국을 아우르고 민간병원과도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컨트럴타워와 권역별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수도권과 광주·전남, 대구·경북에서 한꺼번에 유행이 일어나면 국립중앙의료원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이 권역 단위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복지부는 병원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병원별로 한두 병상씩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해선 환자가 다수 발생하면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국회가 폐쇄된 8월 27일 방역 관계자들이 국회의사당 본회장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 국회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국회가 폐쇄된 8월 27일 방역 관계자들이 국회의사당 본회장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 국회 제공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도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하는 시스템을 돌리고 의료장비, 인력, 병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신속하게 부족할 부분을 메울 컨트롤타워가 꼭 필요하다”며 “서울·경기지역 공공병원 컨트롤타워만으로는 지금의 확산 속도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매뉴얼은 나왔지만

중환자의학회에 따르면 중환자 병상 20개를 운영하려면 의사가 최소 16명, 간호사는 10배인 160명이 있어야 한다.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장치) 등을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인력이어야 한다. 서울 공공병원의 한 간호사는 “확진자가 급증하기 전 미리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자가 급격히 늘어 엊그제까지 일반 환자를 받던 병동을 순식간에 공사해 격리병동으로 연다. 그 병동 담당 간호사가 레벨D 방호복 입는 것만 대충 배우고, 다른 격리병동에서 하루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그다음 날부터 확진환자를 본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코로나19 대응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덕분에’라는 말보다는 고생한 것에 대한 확실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의사인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의사·간호사 인력이 대구·경북으로 향했듯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할 수 있나. 한번 한 걸로 족하다”며 “의병으로 전쟁 막았다고 계속 의병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너무 안이하다”고 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이를 견디는 신체·사회경제적 면역력은 각자 다르다. 장애인과 노인, 가난한 사람 등 취약계층이 더 고통받는다. 1차 대유행 이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감염병 대응 매뉴얼’이 나온 것이다. 2016년 메르스 사태 이후 장애인단체는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로 소송까지 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들은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20쪽짜리 매뉴얼을 손에 쥐었다.

매뉴얼은 감염병 정보 접근성 제고, 이동서비스 지원, 감염 예방 및 필수 의료지원, 돌봄 공백 방지, 장애인시설 서비스 운영 등 5가지 영역으로 구성됐다. 문제는 정부가 정부기관과 지자체에 ‘권고’만 한다는 점이다. 책임주체와 예산에 대한 내용은 매뉴얼에 없다. 1주일에 세 번 투석을 받아야 하는 신장장애인의 사례를 보자. 신장장애인에게 투석은 생명과 직결된다. 하루건너 투석할 때마다 몸무게가 3kg 정도가 빠진다. 그만큼 몸 안에 소변이 쌓이는 것이다. 매뉴얼에는 “신장장애인은 진료병원 진료 일시중단 또는 코로나19 확진 시 혈액 투석 가능 병상 파악 및 안전한 의료지원 연계”라고 나와 있다.

이영정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은 “매뉴얼이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월 일본에서 귀국해 2주간 자가격리를 한 신장장애인의 사례를 들었다. “귀국 전 입원해 투석을 받을 병원을 섭외했다. 귀국했더니 병원에서 병원 내 감염 위험을 이유로 입원을 취소했다. 저희는 매뉴얼이 만들어졌으니 보건소에 연락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보건소에서는 지침을 모른다고 했고, 시청에 연락하니 코로나19 관련 모든 책임은 보건소에 있다고 했다. 매뉴얼이 구청까지만 내려갔다고 한다. 결국 보건소에서 병원을 찾아주긴 했지만 비슷한 일이 생기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마스크를 쓴 LG트윈스 마스코트들이 6월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응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LG트윈스 마스코트들이 6월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응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기존에 없던 문서가 생겼을 뿐 시스템이 생겨나진 않았다”고 했다. 전 국장은 “대구 같은 경우 저희가 ‘정부가 형식적으로 지자체에 권고했으니 대구시가 대구시의 것(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구는 (1차 대유행 때부터) 장애인단체와 대구시가 투닥거려 왔던 것들이 있다 보니 (지자체 매뉴얼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대구와 같은 경험을 갖지 않은 지자체는 한 발 뒤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하면 된다

거리 두기 단계가 올라갈수록 가장 우려되는 것 중 하나가 ‘돌봄 공백’이다. 코로나19 확산 초반 대구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중증장애인이 생쌀을 긴급구호물품으로 받았다. 장애인단체 활동가가 방호복을 입고 자가격리에 들어간 장애인을 돌보는 일도 있었다. 대구사회서비스원에서 3월 2일 긴급돌봄을 시작하면서 차츰 공백에서 벗어났다.

사회서비스원은 민간이 제공하고 있는 각종 돌봄 서비스를 공공이 직접 제공하고 민간기관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올해까지 11개 시·도에 설치되며 2022년 17개 시·도 전역으로 확대된다. 대구의 사례는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사회복지 서비스도 공공 인프라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근 정부는 사회서비스원에서 긴급돌봄 지원체계를 가동하는 동시에 사회서비스중앙지원단에 긴급돌봄 지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는 계획을 추가로 내놨다. 장기적으로는 복지관 중심의 집단 프로그램을 넘어 개인별 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 상병수당 등 사회안전망 도입을 위한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실제 시행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많은 학부모가 1년에 최장 10일까지 쓸 수 있는 무급휴가인 가족 돌봄 휴가를 1학기에 소진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8월 19일 성명에서 “이번에도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위기를 막기 어렵다”며 “방역 제1지침 개인방역 제1지침 ’아프면 3~4일 쉬기’가 가능하도록 7일 내 단기 유병가를 즉시 시행하고, 돌봄 공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충분한 가족 돌봄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가족 돌봄 휴가 사용 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 통과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년 동안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일시적 재난에 대응하는 수준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일상이 공존할 수 있는 체계를 잡아가야 한다는 소리다. 오명돈 국립중앙의료원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장은 8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마스크의 확산 예방 효과보다 더 좋은 백신이 나오리라는 것도 보장하기 어렵다”며 “(백신이) 어느 정도 확산과 질병 중증도를 덜어주긴 하겠지만 오히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일상과 방역의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백신을 기다리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역지침을 지키는 것뿐이다. 코로나19는 종교도 정파도 가리지 않는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가장 기본만 기억하면 된다.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다.

<노도현·주영재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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