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의 기본소득론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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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지급안 제시… 민주당의 대안에 주목

미래통합당이 새 정강정책 1호로 ‘기본소득’을 내놓았다. 윤희숙 통합당 경제혁신위원장은 지난 8월 20일 당 혁신위가 주최한 혁신어젠다 포럼에서 “중복된 현금지원제도를 통폐합해 사각지대를 메우고 빈곤층 소득 지원을 늘려 ‘빈곤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직후 ‘한국형 기본소득’ 화두를 던진 지 약 석 달 만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통합당 경제혁신위가 공개한 기본소득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상대적 빈곤선(중위소득의 5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선(1인 가구 월 88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메워주는 방안이다. 1인 가구 월소득이 50만원이라면 38만원을 정부가 보태는 식이다.

혁신위는 이 제도로 약 328만여가구(약 610만명)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필요한 재원은 연 21조원가량으로 추계했다. 기초생활수급제, 기초연금,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등 현금지원복지를 통폐합하면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합당의 기본소득 안을 두고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해온 진영에서는 환영과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지난 8월 13일 “제1야당이 기본소득을 약속한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통합당 혁신위의 안이 공개된 이후엔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신지혜 대표는 지난 8월 25일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자산조사에 따른 선별지급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맞지 않고, 복지예산을 확대하지 않고 기존 복지제도를 통폐합하는 것으로는 빈곤을 없앨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 대표는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노동의무나 자산심사 없이 정기적으로 주는 현금이다. 소득과 자산을 심사하겠다는 미래통합당 안은 아예 기본소득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복지 수혜자 간 경쟁만 초래할 수도

통합당의 안은 기존 복지 혜택 통합보다 토지와 지식, 빅데이터 등 공유부에 기반을 둔 재원 마련을 주장해온 기존의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경제·사회복지 전문가들은 통합당의 안을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했다. 백승호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민간 정책연구소 ‘LAB2050’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통합당의 ‘한국형 기본소득’은 기본소득 정의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 조건의 하나인 자산조사가 들어가서 기본소득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생계비 지원을 받는 인원을 전체 인구의 3%(약 126만명)에서 11%까지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세은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상급식 논쟁 이후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와 관련한 논쟁이 한차례 발전한 면이 있는데 통합당의 제안은 그와 비슷한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전체적으로 복지 재원의 크기를 늘리지 않고 재설계만 한다면 복지 대상자 간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예술인처럼 새롭게 복지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기존 복지 시스템에서 보다 더 열악해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이다.

가령 기초생활수급자는 생계급여는 받지 못해도 주거급여와 교육급여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서울 거주 1인 가구 기준 주거급여를 받는 사람은 최대 104만원의 소득을 얻을 수 있지만 88만원으로 맞추는 통합당 안이 실행되면 오히려 소득이 준다. 연 최대 150만원(단독가구)인 근로장려금이 기본소득으로 통합되면 저소득 노동자들이 받는 혜택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수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보장을 어떻게 설계할지, 보수의 철학에 기초한 제안을 내놨다”며 “통합당이 보수로서의 제자리를 찾았다”고 평가했다. 일정 수준 이하로 소득이 떨어진 사람을 선별해 최소 소득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보수주의자 관점에서의 복지 설계라는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주장한 전국민기본소득에 부정적인 더불어민주당 주류로서는 통합당과 차별점을 부각해야 하는 과제가 생긴다. 윤 교수는 집권당의 복지에 대한 철학이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 교수는 “하위 50% 이하를 대상으로 선별지원하면 통합당과 사실상 차이가 없을 것이고, 소득 감소자에게 보편지원하면서 사후에 회수하는 방안이면 그래도 통합당과는 복지에 대한 상을 달리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8만원 맞춰주는 방식은 노동의욕만 꺾어

기본소득 연구의 권위자인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는 통합당 안이 기초생활보장제도 상의 생계급여의 한계를 그대로 갖고 있는 제도라고 평했다. 강 교수는 “작은 가게라도 열어서 한 달에 50만원의 사업소득이 생기면 33만원을 받고, 소득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88만원을 받는다”면서 “시장소득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구 3%에 (생계급여를) 줄 순 있지만 중위소득 50% 이하로 확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을 하나 안 하나 똑같이 (기본소득을) 주면 오히려 시장소득 활동을 장려하게 된다”면서 “원래의 기본소득 같은 형태를 다시 고민하지 않으면 실제 경제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부상하면서 연구자를 중심으로 기본소득의 단계적 도입을 위한 방안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아동, 노인, 청년 등 특정 인구학적 범주에서부터 기본소득을 실현해 점차 전체 인구로 확대하는 보편성 확대 전략과 낮은 금액의 기본소득에서 시작해 기본소득의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충분성 확대 전략이 논의되고 있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 지급에 대한 반발 여론을 우회하는 전략으로 ‘참여소득’의 단계를 거치는 무조건성 확대 전략도 있다. 백승호 교수와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제안한 방식이다. 돌봄과 자원봉사 등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을 한 경우 보상을 하면 조건 없이 주는 것보다 정치적 실현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주체를 두고, 활동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윤홍식 교수는 “학술적으로 논의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유익한 활동을 규정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노인, 청년, 아동 등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라 지급을 확대하는 전환적 기본소득이 더 타당하다”고 말했다. 강남훈 교수는 “돌봄은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일이라 아무에게나 자격을 줄 수 없다”면서 “다만 참여소득을 준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그 중요성이 커지고 고용인원도 많은 농업 분야에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일 년에 60만원 정도인 농민기본소득을 전국민기본소득이 도입된 이후 ‘농업참여소득’으로 바꿔 추가로 지급하는 방안이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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