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과거와 결별하는 베를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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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국제영화제가 2021년 시상식부터 성별에 따라 연기상을 나눠 시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는 첫 시도다. 영화계가 전 세계적인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를 촉발시켰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라 할 만하다. 영화제는 이외에도 나치 부역자의 이름을 딴 상을 폐지하기로 하는 등 잘못된 과거와 결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베를린영화제 현장요원들이 지난 2월 18일(현지시간) 배우와 감독들이 시상식장으로 들어서는 길에 레드카펫을 설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베를린영화제 현장요원들이 지난 2월 18일(현지시간) 배우와 감독들이 시상식장으로 들어서는 길에 레드카펫을 설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베를린영화제는 8월 2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내년부터 최고 연기자상인 은곰상을 남녀 구분 없이 하나로 통합해 수여하겠다고 전했다. 남우·여우 조연상도 최우수 조연상으로 통합된다. 영화제 첫 여성 집행위원장인 마리에트 리센벡은 “영화산업계에서 성인지 의식을 높이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독에서 1951년부터 시작된 베를린영화제는 프랑스 칸,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배우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2017년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베를린영화제는 이전부터 다른 영화제에 비해 여성들의 성과를 많이 인정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 2월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18개 중 6개가 여성 감독 연출작이었다. 직전 영화제 때보다 비중이 줄어 비판받았지만, 지난해 경쟁 영화제인 칸·베니스 영화제 출품작 중 여성 감독 작품이 각각 단 2개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여전히 많다.

베를린영화제는 다른 어떤 영화제보다 여성에게 최고상을 많이 줬다. 현재까지 총 6명의 여성 감독이 최우수작품상이자 최고상인 금곰상을 수상했다. 특히 이중 2명은 최근 3년 사이 수상한 것이다. 베니스영화제는 총 4명의 여성 감독에게 최고상 황금사자상을 줬으며, 가장 최근 수상은 2010년이다. 칸 영화제는 단 한 명의 여성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줬고, 이마저도 27년 전 일이다. 베를린영화제는 작년부터 수상작 선정위원의 여성 비중 통계를 발표하며 여성 감독 작품을 홀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더욱 분명히 드러냈다. 이 같은 노력에 자극받은 베니스영화제는 올해 경쟁부문 초청작 중 44%인 8개를 여성 감독 작품으로 꾸리는 파격을 선보였다.

베를린영화제는 영화제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알프레드 바우어의 이름을 따 지은 특별상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바우어의 나치 부역 전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우어는 나치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만든 선동조직의 고위 간부를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일간 디 자이트가 입수한 나치 문건에 따르면 바우어는 “열정적이며 정치적인 태도가 흠잡을 데 없는 인물”로 묘사됐다.

알프레드 바우어는 독일 표현주의 기법을 도입한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이름을 딴 알프레드 바우어상은 표현기법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 작품에 주는 특별상이다. 영화제 8대 본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제 집행위는 바우어의 나치 전력이 보도된 이후 처음 열린 올해 영화제 수상을 중단했다. 내년 영화제에서부터는 은곰상 심사위원상으로 바꿔 시상한다는 계획이다.

<박효재 산업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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