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재해는 왜 같은 곳에서 반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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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주민들 “서울 동네가 3년 연속 물에 잠겼다면 가만 두고 봤겠느냐”

경북 영덕군 강구면은 3년 연속 물난리를 겪은 상습 재해지역이다. 2018년 태풍 ‘콩레이’, 2019년 태풍 ‘미탁’ 그리고 지난 7월 24일 새벽 장맛비(258㎜)에 마을이 물에 잠겼다. 세 차례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분노했다. 앞선 수해는 태풍으로 인한 ‘천재지변’으로 간주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258㎜ 비에 90가구가 잠긴 것은 ‘인재’라고 판단했다. 지난 태풍 이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설치했던 배수펌프마저 물에 잠겼다. 침수피해대책위원회를 꾸린 주민들은 관할 지자체의 안이한 대처에 분노한다. 강구면 오포2리 주민 최정외씨(76)는 “서울에 있는 동네가 3년 연속 물에 잠겼다면 가만 두고 봤겠느냐”며 “해마다 이러니 주민들은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 상인들이 침수 피해를 당한 상점을 정리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 상인들이 침수 피해를 당한 상점을 정리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 지역 재해, 곧바로 대책 수립

자연재해일지라도 주민들은 정부에 피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법원도 재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다. 선례가 있다. 1984년 8월 서울 대홍수로 한강 유수지 수문이 붕괴됐다. 망원동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수천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망원동 주민 3700명은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53억여원을 배상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서울시가 설치·관리하는 공공물의 하자 때문에 수해가 발생했다”며 “손해배상 할 책임이 있다”며 판시했다. 2011년 발생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법원은 서초구가 제때 경보를 발령하지 않아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렇다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을 효과적인 재해 대책으로 볼 수는 없다. 소송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난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가 와해 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재해지역에 필요한 것은 항구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다. 예컨대 물난리 이후 서울 망원동 지역에는 침수방지시설과 이중수문이 설치됐고, 서울시는 추가 침수방지대책을 세웠다. 산사태를 겪은 서초구 우면산 일대에도 곧바로 산사태 방지시설이 들어섰다. 그런데 지역은 다르다. 같은 곳에서 같은 재해가 반복된다.

자연재해 발생 빈도가 높은 곳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산간 도서 지역이다. 주로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화가 이뤄지지 않은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들이다. 이 같은 군 단위 지자체는 대도시에 비해 재난 대응 설비가 미흡해 자연재해에 치명적이다. 재해에 취약한 고령층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인명 피해 우려도 높다.

그런데 지자체는 스스로 재해에 대응하지 못한다. 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대규모 사업비가 필요한데 지자체 재정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 기준 군 단위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17.3%다. 이번 장맛비에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의 재정자립도는 7.31%, 경북 영덕군은 8.79%에 불과하다.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지정돼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방치한다. 전국 시도별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 관리 현황(2017년 기준)에 따르면 미정비개선지구가 많은 지역은 경북과 전남으로 각각 127, 126곳으로 나타났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 오포2리 주민들이 침수 피해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 오포2리 주민들이 침수 피해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중앙정부 보조금으로 재해 관리를 한다. 그런데 각 지자체는 중앙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 확보 여부도 불투명하다. 재해예방사업 예산의 지역별 배분을 위해 마련한 기준과 근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지역성을 고려한 시·도별 재해예방사업비 배분기준에 대한 연구·한국방재학회) 지자체가 재해예방사업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다.

사실상 재해지역 주민들이 기댈 수 있는 재해 대책은 중앙정부가 지정하는 특별재난지역 지정뿐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재해 구호와 복구에 필요한 행정, 재정, 금융, 세제 등의 특별 지원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각종 피해 복구비의 50%를 국비로 지원받는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 입장에서도 특별재난지역 지정은 돈 안 쓰고 생색낼 수 있는 유일한 재해 대책이다.

지자체 재정으로는 재해 감당 못 해

하지만 특별재난지역 지정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통한 지원은 공공시설물에 한해 이뤄진다. 민간 차원의 주민 지원은 농협을 통한 저금리 융자나 수도·전기 요금 감면 정도다. 특별재난지역은 주민의 삶을 재해 이전으로 되돌리지 못한다. 재해 예방 효과가 없는 사후 대책에 불과하다. 올해 장맛비로 침수피해를 입은 영덕군은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연 강수량을 비롯한 기후요인을 제외하고 자연재해 피해 규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오르면 피해가 감소한다. 예컨대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1% 올라갈 때 자연재해 총피해액은 총 3.0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패널모형을 이용한 자연재해 피해의 결정요인에 관한 고찰·한국방재학회) 다시 말해 지역 사회의 소득과 부의 수준이 높으면 자연재해 발생 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있기 전에 독자적인 대응이 가능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이 중앙에 종속된 현 구조에서는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개선할 방법이 요원하다. 중앙정부가 누리사업 등 복지사업을 지자체로 넘기는 한편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이양하지 않으면서 지역의 재정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을 100대 국정과제로 정하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2022년까지 7 대 3까지 높이겠다는 내용을 담은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내놨지만 추진실적은 지지부진하다.

재해 예방과 사후 대책이 미흡한 상황에서 지역에서 발생하는 재해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이 몫이다. 수도권 밖에서 발생한 재해는 그들만의 재해로 축소된다. 언론과 미디어의 관심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장(이재민 사랑본부 공동대표)은 “하천과 제방, 저수지와 같은 위험시설이 공존하는 지방에 비해 도시는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라며 “위기관리와 안전분야에서도 균형발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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