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는 왜 전광훈 목사를 제어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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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구약성서> 출애굽기 32장 24절)

서울의 한 개신교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한모 목사(43)는 “한국 교회의 ‘금송아지’는 바로 목사”라고 말했다. 최근 전광훈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 개신교 교인들을 중심으로 급격한 코로나19 확산세가 나오고 있는 배경을 설명하던 중 나온 얘기다. ‘금송아지’는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교는 물론이고 유대교 등에서도 유일신에 대비되는 전형적인 ‘우상숭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 목사는 국내에서 다름 아닌 목사들이 바로 이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로 들어가는 길목에 출입 통제를 알리는 현수막 위로 사랑제일교회 첨탑이 보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로 들어가는 길목에 출입 통제를 알리는 현수막 위로 사랑제일교회 첨탑이 보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파문과 난립으로 점철된 ‘개(個)교회주의’

해당 구절이 나오는 출애굽기는 홍해를 가른 모세가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정착할 땅을 얻지 못해 광야를 전전하던 히브리인들은 모세가 신의 계명을 받으러 산 위에 올라간 뒤 도무지 내려올 기색이 없자 신으로 삼을 만한 대상을 찾자고 나선다. 모세 다음가는 지도자였던 아론이 금붙이를 모아 녹여 송아지 모양 거푸집에 부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금송아지 상이 신상으로 숭배된 것이다. 하지만 모세가 산에서 돌아와 왜 우상을 만들었느냐고 추궁하자 아론은 금을 녹이니 저절로 송아지 모양이 나온 것이라고 변명했다. 보통 교회 설교에서는 돈이나 물질을 우상으로 섬겨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할 때 거론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한 목사 외에도 목사 개인이 숭배에 가까운 대우를 받는 현실을 지적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적지 않다.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 역시 과거 “속옷을 내리라고 해도 그대로 따라야 자신의 신도”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로 독선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다. 신의 뜻을 전달하는 수준으로 목사의 신앙적 입지를 높인 나머지, 목사의 말이라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인식이 해당 교회 교인들 사이에 자리 잡았고, 이러한 문제가 최근 대유행 조짐을 보이는 코로나19 확산 사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교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런 목사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모든 교인이 사제’라는 뜻의 ‘만인사제설’이 힘을 발휘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 반발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종교개혁가 장 칼뱅을 따르는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나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등은 기존 성직제도를 완강히 부정했다. 주교·사제·부제의 이른바 ‘3성직’을 중심으로 한 성직제도는 가톨릭 외에도 동방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 등에 그대로 남아 있는 반면 일부 개신교 교파에서는 부정하는 제도다. 목사와 신부 간의 역할이 전적으로 다르다기보다는 성직제도의 핵심인 계급구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차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하고 있는 장로교회를 비롯해 오순절교회나 침례교회 등은 만인사제설에 충실한 교회다. 그래서 목사는 예배를 집전하고 설교를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평신도보다 지위에서 차이가 없다. 반대로 주교부터 사제, 부제로 이어지는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는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예수의 12제자로부터 이어져 전승되어온 성직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가톨릭이나 정교회 등에서 성직자가 됐다가 파문이 될 수는 있지만 파문된 성직자가 독자적인 교회를 세워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일부 교파는 정반대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각 교회의 독립을 우선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상위기관인 교단이나 노회의 영향력이 약해 개별 교회가 저마다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다. 전광훈 목사가 이전에 소속됐던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에서 제명 처분을 받고도 버젓이 활동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가능했다. 제명 처분 전 독자적인 교단을 세운 전 목사가 사실상 사랑제일교회 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만 계속 유지한다면 이를 제어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인기와 지지만 있으면 뭘 해도 좋다’

전 목사가 속했던 예장 백석대신 교단 소속인 A목사는 “백석대신 교단도 뿌리가 다른 교단끼리 통합하다 다시 갈라지는 등의 내홍을 거쳐 나온 교단이어서 인지도도 높고 인맥도 넓은 전 목사에게 감히 뭐라고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결국 모든 교인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개혁적인 사상에 따라 성직제도라는 전통을 거부한 결과가 교회 공동체 내부의 간섭까지 거부하는 ‘개(個)교회주의’ 문화와 만나면서 부작용을 낳은 셈이다. ‘인기와 지지만 있으면 뭘 해도 좋다’는 목사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일선의 목사들은 이렇게 목사 개인숭배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모든 교회에 퍼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도 개신교의 일파인 루터교회를 국교로 삼아 국교회 체제를 갖춘 스웨덴·덴마크 등의 북유럽 국가나 국가가 종교세를 거둬 개신교·천주교 등에 분배하는 독일 등에선 목사 개인의 지위를 강조하는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 보수 교단 신학대학의 B교수는 “결국 교회도 돈의 힘으로 굴러가는 곳이라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며 “목사 각자가 성도들을 모은 결과에 따라 사례(보수)는 물론 신분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한국 교회에서 대형교회 목사는 사업장 사장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한탄했다.

유럽의 개신교 교단과는 달리 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직접 받은 한국 교회 내부의 역사도 지금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선 후기 미국에서도 장로교와 감리교 등 서로 다른 교단에서 선교사들이 파견됐고, 여기에 캐나다와 호주 등에서도 선교사가 왔기 때문에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은 충돌을 막기 위해 조선 팔도를 분할해 전담 선교하는 ‘선교지 분할 협정’을 맺었다. 캐나다연합교회가 함경도를, 미국 북장로교가 평안도·황해도 등 서북지역을, 미국 북감리교는 서울·경기와 충청도 일부를 맡는 등의 협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조선인 목사가 배출되며 현지화가 이뤄지면서 이 협정은 의미를 잃게 됐지만 교단 간의 경쟁이 지역색과 얽히고, 개별 교회 간의 경쟁까지 부추겨지는 문화가 이후로도 장기간 자리 잡고 말았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교회를 배타적으로 바라보게 된 문화가 정치적 지향이 다른 세속권력을 대할 때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점은 최근 코로나19 확산 사태에서 유독 개신교 교회들이 당국의 방역조치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상황과 연결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덜하고 타 종교나 교단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교단 협의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에서 ‘반성한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교회협은 지난 8월 17일 낸 입장문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의 중심에 교회가 있음을 참담한 심정으로 인정하며,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그동안 한국 교회가 방역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집단적인 자기 중심성을 드러낸 바 있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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