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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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온통 잿빛입니다. 쉼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진이 빠질 정도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빼곡히 들어찬 먹구름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이미 50일을 넘겼습니다. 관측 사상 가장 긴 장마라고 합니다. 기상청의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게릴라성 폭우가 출몰합니다. 갠 듯하다가 다시 쏟아지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것 같더니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퍼붓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이 아직 멈추지 않았는데 비까지 들이치는 걸 보면 “징하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사상 유례없는 장마철 폭우로 홍수가 잇따르자 그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과 해석이 분분합니다.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북극과 동부 시베리아 지역이 고온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기상이변을 넘어 ‘기후위기가 도래했다’는 암울한 진단까지 나옵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물난리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으려는 주장들이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보수 야당의 전·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오는 ‘4대강 사업 덕분에 홍수피해가 줄었다’는 주장과 ‘태양광 패널이 산사태의 주범’이란 얘기입니다.

이명박 정권 실세였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TV에 나와 “4대강의 16개 보가 없었더라면 국토의 절반이 물에 잠겼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정진석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4대강 사업 끝낸 후 지류 지천으로 사업을 확대했더라면, 지금의 물난리 좀 더 잘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고 적었습니다. 모두 이치에 맞지 않은 주장입니다. 2018년 감사원 감사결과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도 감사원은 ‘추가 준설이 없어도 홍수 대처가 가능하다’는 감사결과를 내놨습니다. 지난 8월 12일엔 환경부까지 나서 “4대강 보는 홍수 예방 효과가 없다”고 단언하면서 ‘4대강 사업을 섬진강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에 물난리가 났다’는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태양광 패널’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9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사태 1079건 가운데 태양광시설에서 일어난 건 단 12곳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1%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천재지변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과거 자신들의 실정(失政)을 합리화하고 현 정부를 공격하려는 궤변에 불과한 얘기입니다.

오히려 이번 장마와 폭우는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매우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자연재해를 100% 예측하고 대비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게 최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올여름보다 더 심각한 기상이변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기후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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