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기초생활보장제도, 문턱 높고 지원 미흡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선정 기준 까다롭고 보장 수준은 낮아 실질적 빈곤 탈출 어려워

‘수급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수급자가 돼도 어렵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둘러싼 말이다. 제도의 출발은 2000년으로 거슬러간다. 올해로 시행된 지 꼭 20년이다. 이전의 생활보호제도가 일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시혜적 차원에서 운영됐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헌법에서 보장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구체적 권리의 성격으로 발전했다. 사회보험이 상해·질병·노령·실업 때문에 취약계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예방한다면 기초생활보장제는 생활이 어려운 국민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돕는 사회안전망(공공부조)이다. 생계·의료·주거·교육·자활·장제·해산 등 7가지 급여를 지급한다.

기초생활보장법은 급여 수준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도는 외형적 발전을 거듭했지만, 법에 명시된 문화적이고 건강한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까다로운 선정 기준과 낮은 보장 수준 탓이다. 선정 기준을 완화하고 보장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정부도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속도가 더디다는 비판이 만만찮다.

기준 중위소득이 왜?

지난 7월 31일 보건복지부는 2021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4인 가구 487만600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2.68% 올랐다. 고소득층의 소득이 더 정확히 반영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소득통계 기준이 바뀌면서 인상 폭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19로 마이너스 경제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했다. 1인 가구 인상률은 4.02%다. 그동안 1~2인 가구가 4인 가구보다 생계급여액이 상대적으로 적게 산출됐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다.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과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은 “경기가 나쁠수록 복지지출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공식을 정반대로 뒤집은 이번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인상률 중 기본인상률은 단 1%에 불과하고, 통계자료 변경을 반영한 변화는 1.68%다. 이것은 한해 달라지는 살림살이에 대한 반영은 단 1%, 우리 사회 실제 평균과 동떨어져 있던 기준 중위소득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는 1.68%의 인상만 반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인·빈민 관련 시민단체가 지난해 12월 19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농성 마무리 기자회견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장애인·빈민 관련 시민단체가 지난해 12월 19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농성 마무리 기자회견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시민사회가 열을 낸 이유가 뭘까. 기준 중위소득이 기초생활보장 급여 기준액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준 중위소득은 73개 복지사업의 혜택 범위를 정하는 기준선이다. ‘중위소득’은 소득이 가장 많은 가구부터 가장 적은 가구까지 줄 세운 다음, 정확히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을 뜻한다. 여기에다 여러 경제지표를 반영해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한다. 기준 중위소득이 올라야 수급자들에게 충분한 지원이 돌아가고,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기준 중위소득을 기초생활보장 급여기준을 정하는 지표로 쓴 건 2015년. 급여별로 기준을 다르게 정하는 ‘맞춤형 개별급여’가 도입되면서다. 이전까지는 소득과 재산이 보건복지부가 매년 고시하는 최저생계비 이하이면 수급자로 선정돼 모든 급여를 한 번에 받았다.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조금이라도 넘는 순간, 급여를 전혀 못 받게 되는 ‘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이었다. 현재 생계급여는 가구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30% 이하, 의료급여는 40% 이하, 주거급여는 45% 이하, 교육급여는 50% 이하면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구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35%라면 생계급여는 받지 못하지만 나머지 급여는 받을 수 있다. 소득인정액에는 근로소득에 땅이나 집, 자동차 같은 재산을 일정한 산식에 따라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도 더한다. 이때 최소한의 생활 유지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기본재산액을 뺀 나머지 재산이 소득으로 환산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기초생활수급자는 200만명에 육박했다. 1월 약 189만명에서 코로나19 이후 11만명이 늘었다. 복지부의 ‘2018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을 보면 그해 수급자 수는 174만4000여명이었다. 가구 유형은 일반가구(29.2%)와 노인가구(29.0%)가 가장 많았다. 뒤이어 장애인가구 18.1%, 모자가구 11.7%, 기타(미혼부모세대·조손세대) 8.5%, 부자가구 3.3%, 소년·소녀가장가구 0.3% 순이었다. 전체 수급자를 생애주기별로 보면 중년기(40~64세)가 34.9%로 가장 높고, 노년기(65세 이상) 32.8%, 청소년기(12~19세) 14.4% 순으로 나타났다.

기준 중위소득의 30%로 선정 기준이 가장 엄격한 생계급여를 들여다보자. 기초생활보장법은 생계급여를 ‘수급자에게 의복, 음식물 및 연료비와 그 밖에 일상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금품을 지급하여 그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기초수급자 중 만 18세 이상 만 65세 미만의 장애·질병·부상이 없는 자는 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자로 본다. 이들에겐 자활근로사업에 참여하는 등 일을 해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좀 더 단단할 순 없을까

올해 생계급여 기준선은 1인 가구 52만7158원, 4인 가구 142만4752원이다. 생계급여는 수급자의 소득이 기준 생계비에 부족한 부분만큼 채워준다는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생계급여에서 소득을 빼고 준다. 1인 가구인 수급자에게 월 30만원의 소득이 있다면 52만원에서 30만원을 뺀 22만원을 지원해주는 식이다. 어렵게 수급자로 선정돼도 이 같은 보장 수준으로는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아 실질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정부는 올해부터 25~64세 수급자의 근로소득 30%를 공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과 사는 40대 A씨는 틈틈이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일을 하고 월 80만원을 번다. 지난해에는 월 33만원의 생계급여를 받았다. 올해부터는 근로소득 30% 공제가 적용돼 49만5000원으로 늘었다. 근로소득 80만원에서 30%를 뺀 56만원만 소득으로 인정된 것이다.

기존 급여체계는 소득이 수급기준선을 넘어서면 모든 급여를 잃게 만들었다. 근로소득이 있더라도 그만큼 생계급여가 깎이니 수급자 입장에서는 일을 하나, 하지 않으나 총소득이 같았다. 일할 동기를 높이는 데 한계가 생기는 건 당연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근로소득 30% 공제가 최초로 도입돼 의미가 있긴 하지만 이것이 근로를 통한 탈빈곤을 돕는다고 얘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50만원을 받는 1인 수급자가 한 달에 8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면 (30%를 공제해도) 생계급여를 못 받게 된다. 50만원만 번다고 해도 35만원의 수급비가 삭감된다. 이런 일자리들이 안정적이지도 않다. 일을 했다가 수급을 아예 박탈당하거나 급여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두렵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근로 능력 평가와 소득인정액 제도를 통한 급여삭감이라는 형태로 ‘제도 밖으로 나가라. 이 안에 있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신호가 반복된다면 사람들은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제도가 좀 더 유연하고 수급자들을 단단하게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표지 이야기]기초생활보장제도, 문턱 높고 지원 미흡

2019년 11월 인천에서 40대 여성 B씨와 20대 자녀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생활고 때문이었다. 이들은 기초수급대상자 수준으로 가난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렸다.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부양의무자가 경제 능력이 없어야 하는데 B씨는 부양의무자인 이혼한 전 남편과 친정 부모 재산을 조사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정부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 사회안전망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는 사건은 반복되고 있다.

들어오지도 못한 사람들

부양의무자 기준은 소득·재산 기준으로 안 그래도 좁은 범위를 더욱 좁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일정한 소득과 재산이 있는 부모나 자녀, 배우자가 있으면 국가보다 가족이 먼저 부양책임을 지도록 한다.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려면 가족관계가 해체됐다는 사유서를 내야 한다. 수급신청자가 수치심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경제적 수준만 보면 공공부조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만들어낸다. 정부는 비수급 빈곤층을 2018년 기준 89만명으로 추산했다.

부양의무제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다. 현재 주요 급여 가운데 교육(2015년)과 주거(2018년) 부문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이 전면 폐지됐다. 생계급여는 지난해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가 소득 하위 70%에 속하면서 동시에 중증장애인이나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이 포함된 경우에 한해 적용이 제외됐다.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021~2023년) 초안에는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전면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 고소득·고재산자를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2차 종합계획 논의에서 핵심 쟁점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여부다. 초안에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 대신 ‘개선 추진’이라는 내용만 들어갔다.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안은 8월 10일 열리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시민사회는 “자녀와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을 가지고 공공부조의 대상을 제한하는 제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를 가족에게 떠넘기는 후진적 사회안전망 체계”라며 ‘완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