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끝나지 않은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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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사과는커녕 “소송비용 분담액 2500만원 내라”

“그 공문을 받고 며칠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울화가 터져서….”

지난 7월 중순 통화한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66·전 케이비한마음 대표)의 하소연이다.

국무조정실이 발송한 것으로 되어 있는 한 장짜리 공문엔 ‘소송비용액 확정결정에 따라 소송비용액의 상환을 요청한다’며 김씨와 김씨 가족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총 2521만921원을 납부하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기한은 8월 8일까지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비선라인에 의한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를 받은 김종익 전 케이비한마음 대표 / 경향DB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비선라인에 의한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를 받은 김종익 전 케이비한마음 대표 / 경향DB

국가권력이 감사 대상도 아닌 민간인의 주변을 뒤져 한 사람의 인생을 풍비박산 낸 사건이다. MB 정부 때 일이다. 주간경향이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 다룬 것도 2010년이다. 10년이 지났지만 김씨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며칠 지나 공문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 총리실 감사담당관실에 전화해서 물었어요. ‘이걸 안 내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물으니 판결문을 근거로 강제집행·가압류를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10년 지났지만 계속되는 사찰 피해 ‘악몽’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이 벌어진 것은 2008년이다. 당시 총리실 산하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과 정치인을 불법으로 사찰한 사실이 폭로된 것은 2년 뒤인 2010년 6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당시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MB 정부를 풍자한 동영상을 올렸던 김씨를 ‘요주의 인물’로 찍어 사찰하고, 결국 그가 재직하던 직장 대표직을 강제로 내려놓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름은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불리던 MB 정부 비선권력 주도의 불법행위였다. 박근혜에게 최순실이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의 불법적인 권력남용 배후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있었다. 2012년 박영준 전 차관, 이영호 전 비서관 등 사건관계자 등은 징역 2년~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대법원은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 판결에서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에게 4억원대의 배상을 확정했다.

그러나 그걸로 모든 게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김씨가 보내온 이후 판결문, 그리고 국무조정실 등의 말을 종합하면 형사사건은 2013년 12월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책임이 확정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현직이 아닌 불법행위 공무원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 소송과 역시 이들 공무원과 국가가 연대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김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이 아직 남아 있었다. 법원이 김씨와 가족에게 인정한 손해배상금은 1억여원이었다. 김씨의 민사손해배상 소송 및 소송비용액과 관련, 지난해 9월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소송비용을 김씨가 80%, 국가가 20%를 부담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손해배상금이 확정되었다는 이유다. 원고 측인 김씨와 김씨 가족이 피고이자 항소인인 국가의 변호사 보수와 송달료까지 포함해 전체 소송비용의 5분의 4를 부담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김씨는 항고를 포기했다. 김씨는 “인지대만 1000만원 이상 이미 나간 상태이고, 대법원으로 가더라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서 그냥 그만둔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을 대리하던 법무법인 청맥의 최강욱 대표가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들어가 있어 애써 부탁하기도 어려웠던 사정도 있었다. 김씨의 말이다. “제가 정말 화가 났던 것은 불법행위를 한 것도 국가였고, 저는 그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소송비용까지 저에게 내라고 한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측은 “자신들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고 말한다. 총리실 법무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법원에서 결정한 뒤 확정한 금액과 관련해서 김종익씨가 국가에 지급하라는 납부안내를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보냈을 뿐 우리가 자의적으로 액수를 감면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대한 법률을 보면 소송에 대한 지휘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청에 위임해 검찰청이 소송을 지휘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해당 법률에 따라 김씨와 국가 사이의 배상 관련 소송은 서울고등검찰청의 지휘를 받아 진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안내공문을 보냈지만, 실제로 총리의 지휘를 받은 것도 아니고 보고사항도 아니라는 얘기다. 총리가 조율할 수 있는 여지는 없는지 문의에 대한 답이다.

공익소송 가로막는 패소자부담주의

김종익씨는 “국가를 당사자로 한 소송이라고 하지만 총리실에서 소송비용 소송을 따로 낸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자신들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와 관련한 소송인데 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먼저 검토했어야 한다”라며 “소송은 소송대로 진행하고 나서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고 법원에서 행정적인 처리만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정말 부들부들 떨린다”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소송비용은 본안판단이 내려지면 대부분 기계적으로 나누는 식으로 결정된다”며 “애초에 국가가 잘못한 것을 밝혀달라는 공익적 성격의 소송은 패소 여부와 상관없이 소송 제기자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다. 차제에 이런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9일 양정숙 의원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공익소송 패소비용을 감면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과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소송을 남발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로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부작용에도 전혀 손질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인이나 단체가 공익목적의 소송에서 패소할 때 부담이 예상되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포기하게 되는 사례가 많다”며 “21대 국회에서 의원실을 통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종익씨는 “사건 후 현재까지 역대 총리는 물론, 그 누구도 나에게 공식 사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10년 김종익씨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며 기자가 한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국가는 나에게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였다. 그 후 정권이 두 차례 바뀌었고, 특히 촛불혁명으로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지금까지 피해는 온전히 그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돼버렸다. 김씨는 “국가권력 사찰 피해자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옳은지 국민권익위의 판단을 받거나 위헌소송을 내는 등의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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