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 읽을 수 있는 편지쓰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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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장사하느라 늘 시간에 쫓기며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하는 너에게 간식이라도 전해줄까 하는 마음에 네 가게로 향하던 길에서 우연히 가게 앞에 나와 있던 널 본 적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네 이름을 부를까 하다가 근심이 가득 찬 얼굴로 가게 바로 옆 초등학교에 코로나19로 굳게 닫힌 교문을 바라보던 그늘진 네 모습을 발견하고는 착잡한 마음이 들어 변변한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온 날이 있었어.”

우정사업본부가 2014년 개최한 ‘소울 코리아 5000만 편지쓰기’ 축제 홍보 포스터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가 2014년 개최한 ‘소울 코리아 5000만 편지쓰기’ 축제 홍보 포스터 / 우정사업본부 제공

수원에 사는 선희석씨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식당 창업에 나선 아들에게 쓴 이 편지는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초·중고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2020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일반부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없는 살림에 대출까지 받아 친구들보다 빨리 경제적 자립을 해보겠다던 작은 포부를 가지고 시작된 네 장사가 코로나19라는 생각지도 않았던 복병을 만나 고전하게 될 줄은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다니던 학교까지 접고서 장사를 해보겠다던 그때의 너를 왜 말리지 못했나 하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아빠는 요즘 들어 부쩍 잠을 설치곤 한단다.”

절절한 마음을 풀어놓은 아버지의 편지는 이렇게 끝맺는다. “새하얀 눈송이가 하염없이 쌓여가듯 나지막한 너의 심장 소리가 내 귓전에 맴돌던 그 하얀 겨울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구나. 언제나 자랑스러운 나의 아들아! 오늘도 나의 꿈 안에서, 나의 봄 안에서 가득한 너를 만나고 싶다. 용기를 잃지 말고 힘내자! 파이팅!”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모두를 위한 응원 같기도 하다.

우정사업본부는 편지 쓰는 문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1986년부터 이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입상작은 작품집으로 발간해 우체국에 배포한다. 이번 공모전에서 예선과 본선 심사를 거쳐 수상한 작품은 모두 40편이다. 이번 공모전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각계각층 이웃에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힘내라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렸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시상자들은 오프라인에서 한자리에 모일 수는 없게 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시상식을 오는 11월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공모전의 과거 수상작들을 보면 편지라는 사적인 글에 묻어나는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2년 전인 2018년 대상작은 정효진씨의 편지다. “거리를 나서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동차 소음, 매연 그리고 이제는 계절 없이 불어오는 중금속 미세먼지, 유해 성분들이 검출되는 생활용품들, 유아용품들, 음식물들 속에서 엄마가 너를 무사히 지켜내는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두렵구나.” 난임으로 8년간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 만난, 이제 1개월 된 아이에게 정씨는 이렇게 썼다. “네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하고 덜 유해하기를 엄마는 간절히 바란단다. 환경을 사랑하는 것이 곧 너를 사랑하고, 나아가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엄마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단다.”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휩쓴 지금,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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