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헌당규와 정강정책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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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 재·보궐 후보 등 최근 들어 여·야 동시에 이슈로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정신과 헌법적 법통과 4월혁명, 부마민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시민혁명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의원들이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중앙위원회에서 당헌이 개정됐다. /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의원들이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중앙위원회에서 당헌이 개정됐다. / 연합뉴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은 이렇게 시작한다. 흔히 정당의 강령(정강정책)과 당헌당규는 특정한 사안이 있을 때만 화제가 됐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서 최근 당헌당규와 정강정책이 동시에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가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정당의 강령은 사전적 의미로는 정당의 이념과 정체성, 기본적 정책과 방침 등을 요약해 열거한 것이다. 당헌은 정당에서는 헌법과 같은 존재다. 당헌 밑에는 당규가 있다.

양당에서는 최근 강령과 당헌당규집을 뒤적거리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내년 4월 재·보궐선거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민주당 당헌을 보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민주당 후보 내려면 당헌 바꿔야

민주당이 부산시장 보궐선거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를 내기 위해서는 당헌을 고쳐야 한다. 당헌 제96조 2항은 2015년 7월에 개정됐다. 그해 2월 당대표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를 구성했고, 혁신위에서 당헌 개정안을 만들었다. 제96조 2항과 비슷한 규정이 이전에 있었지만 규정을 강화했다. 공천하지 않는 사유를 “부정부패”에서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바꿨고,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를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로 명시했다. 민주당의 A의원은 “당헌에 이런 조항을 엄격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대 이준한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당시 상대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이 규정을 명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명시한 게 잘못이 아니라 중대한 잘못이 없도록 노력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병민 미래통합당 정강정책특위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6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강정책개정특위 제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병민 미래통합당 정강정책특위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6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강정책개정특위 제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기 대권주자들이 이 논란에 휘말리면서 당헌 개정 논란은 더욱 불붙었다. 김부겸 전 장관은 당원이 원하면 국민에 양해를 구하고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7월 20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규정을 바꾼다면, 당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정도의 사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무공천’으로 해석돼 논란이 됐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7월 22일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내 분위기는) 부글부글”이라고 반박했다. 이 지사는 이틀 만인 22일 소셜미디어(SNS)에 “서울·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 없다. 어떤 현상에 대한 의견을 가지는 것과 이를 관철하기 위한 주장은 다르다”고 밝혔다. 의견이었을 뿐 주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공천 여부는) 당원 의견수렴을 통해 당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해찬 대표는 굳이 지금 시기에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B의원은 “시기가 이르다고 지도부가 언급한 후 논란이 사그라들었다”면서 “전당대회를 치른 후 새로운 당 대표와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당헌 개정은 전국대의원대회 재적 대의원 과반수의 찬성 또는 중앙위원회 재적 중앙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통합당 정강정책 수정안 발표

최근 민주당은 당헌 개정을 한 바 있다. 이낙연 의원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 임기가 논란이 되면서다. 이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됐을 때 대권-당권 분리 때문에 당헌 규정상 내년 3월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때 최고위원이 물러나야 하는 규정을 고친 것이다. 민주당은 7월 16일 중앙위원회를 온라인으로 열어 최고위원 임기 2년을 보장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을 통과시켰다. 이준한 교수는 민주당의 당헌 개정 논란에 대해 “당헌은 물론 당원들에 묻는 절차에 따라 개정을 할 수는 있지만 결국 그 개정의 옳고 그름은 국민이 판단 내리게 된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은 7월 20일 정강정책 수정안을 발표했다. 통합당 정강정책개정특위는 새 정강정책의 초안에 5·18민주화운동을 포함해 정부 수립 이후 박정희·전두환 정부까지 이어진 민주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담는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2·28대구민주운동, 3·8대전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까지 언급됐다.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에는 민주화 정신을 담았으나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름을 바꾼 통합당의 정강정책에는 민주화운동 관련 대목이 빠졌다.

정강정책 특위는 첫부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은 모두의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정당이다”로 표현하게 된다. 건국절 논란도 피했다. “3·1 독립운동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명시했다. 정강정책 초안은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5·18민주화운동을 정강정책에 넣음으로써 이 문제를 두고 시빗거리를 만들 필요가 이젠 없어졌다”면서 “정강정책 수정이 플러스 효과를 가져오기는 힘들지만 마이너스 효과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통합당의 정강정책 수정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당내 의원들의 강성 발언을 보면 정강정책 수정이 통합당의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유기홍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 강령정책분과위원회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통합당은 정강정책 발표에 앞서 반성과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또 “이번 정강정책 발표가 2022년 대선을 위한 개혁 코스프레로 끝나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정책 및 입법 과제로 확실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준한 교수는 “미국의 경우 대선 때 4년마다 시대의 흐름이나 유권자의 요구를 반영해 정강정책을 바꾼다”면서 “통합당은 4월 총선 참패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정강정책을 수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에서 강령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B의원은 “민주당은 2017년 8월 전당대회 때 촛불혁명의 정신을 반영하면서 강령을 많이 수정했다”며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크게 바꾸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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